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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에 '유신헌법이 민주화운동 근거' 넣으려 했다

  • 김도훈
  • 입력 2016.12.01 11:21
  • 수정 2016.12.01 11:22
ⓒ한겨레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이 교과서에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서술까지 담으려고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10대 재벌에 관련된 내용을 교과서에 넣으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 역사교과서 원고본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관계자와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관계자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편은 지난 5월 국정 교과서 집필진이 쓴 원고본을 검토한 뒤 ‘고등학교 '한국사', 중학교 1·2 '역사' 검토보고서(내부)’를 작성했다.

이 내부 검토 보고서에는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되었다는 주장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 삭제 요망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집필진이 유신헌법을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로 미화한 데 대해 국편이 향후 ‘독재 미화’ 논란 가능성을 의식해 제동을 건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원고본-개고본(1차 수정본)-현장검토본(지난 28일 공개)-최종본 순서로 집필이 이뤄진다.

집필진은 또 ‘민주화 과정’에 대해서도 원고본에서 “기업 경영의 부담이 됐다. 공장의 해외 이전의 결과를 초래했다” 등의 부정적 서술로 일관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인 파업에 대해서도 ‘파업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도표로 그려 설명하며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했다.

친기업적 서술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8일 공개된 국정교과서에는 유일한 유한양행 설립자와 이병철 삼성회장, 정주영 현대회장 등 3명만 기술돼 있었으나, 원고본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삼호, 개풍, 화신 등 10개 그룹을 소개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편은 집필진에 “해체된 그룹의 설명을 포기하라”고 검토의견을 냈다. 이들 내용들은 모두 검토 과정을 거쳐 최종 현장검토본에서는 빠졌다.

이에 대해 국편 관계자는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내용은 집필진이 유신헌법 중에 처음으로 헌법적 요소가 들어간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썼는데 (부적절해) 빼라는 취지로 검토의견을 냈고, 집필진도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빠진 내용”이라며 “나머지 내용들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없어지고 걸러진 것인데, 그런 부분을 발췌해서 지적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원고본은 최소 421쪽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공개된 현장검토본은 연표 등을 빼고 293쪽이다. 무려 120쪽이 넘는 내용이 검토과정에서 빠지면서 최근 논란이 되는 국정교과서를 국편 직원들이 대대적으로 수정했다는 ‘국정교과서 대필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별위원회 유은혜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30일 오전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질문을 하고 있다.

특히 국편이 지난 1년동안 교과서를 개발하며 현장 검토본 이전에 만들어진 원고본과 개고본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런 의심을 부추긴다. 유은혜, 김병욱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위 소속 국회의원 5명은 이날 오전 경기 과천 국편에 긴급 현장조사를 나가 대필 의혹을 조사했다.

유은혜 의원이 현장 조사에서 “국편의 ‘대필 의혹’이 제기된 만큼 현장검토본 이전의 원고본과 개고본을 제출하라”고 말하자, 김정배 위원장 및 박덕호 편수실장은 “원고본과 개고본을 영역별로 출력해 검토하고 바로 파쇄해 책자 형태의 원고본 개고본은 남아있지 않다”고 답했다.

또 이들은 “기존 원고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작업해 이전 작성물인 원고본과 개고본은 없다”고도 말했다. 국편 직원들과 집필진 사이에 오간 이메일 등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국편은 “엄격한 보안을 위해 일괄 폐기했다”고 답했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김정배 위원장은 “책을 만들어 공개하는 게 저희의 임무이지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은 중요치 않다”고 말해 의원들로부터 “역사를 다루는 분들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날 특위 의원들은 조사 결과 “국편 직원 24명이 지난 5월·10월·11월 세 차례 내용 검토에 동원돼 단순 교정 수준을 넘는 내용 수정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외부전문가 13명이 교과서 내용검토에 참여했는데 이중 10명이 공공기관에 소속된 역사학자들이며, 학자들의 국정교과서 작업 참여를 기피하는 분위기로 인해 시대별 6개 분야 중 4개 시대에만 내용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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