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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박'과 호명의 정치학

'미스 박'이라는 호명장치가 여성혐오인가 아닌가 라는 물음 자체는 '예스와 노'만을 강요하는 매우 표피적인 것으로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음에 대한 물음'을 다시 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물어야 할 물음들은 첫째, 여성에 대한 호명과 남성에 대한 호명은 각기 '어떠한 가치관'에 의하여 형성되고, 회자되고, 재생산되는가; 둘째, 남성을 호명하는 장치는 '미스터(Mr)'밖에 없는데, 왜 여성을 호명하는 것은 두 가지, 즉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나뉘어지는가; 셋째, 어떠한 이유에서 사람들은(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이러한 사회적 호명장치에 대하여 문제제기하는가.

  • 강남순
  • 입력 2016.12.01 09:32
  • 수정 2017.12.02 14:12
ⓒTetra Images via Getty Images

1.

지난 11월 26일, 광화문 촛불시위 때 '수취인분명(미스 박)'이라는 노래를 부르고자 했던 DJ DOC의 공연히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립적 의견들이 SNS에 등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두 가지 각기 다른 이슈로 분리되어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하나는 '미스 박'이라는 호칭이 지닌 문제제기는 어떠한 배경에서 나온 것인가 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문제제기 후의 후속조치, 즉 DJ DOC의 공연을 취소하는 것과 같은 전략은 어떠한 효과나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각기 다른 문제이므로, 혼합될 때에는 문제의 핵심을 놓칠 수 있다. 나는 이 포스팅에서 첫번째 문제, 즉 '미스 박'이라는 호명이 지닌 문제에 대하여만 언급하고자 한다.

누군가를 특정한 이름으로 '호명한다'는 행위는 권력관계가 개입된다는 의미에서 언제나 '정치적'이다.

2.

누군가를 특정한 이름으로 '호명한다'는 행위는 권력관계가 개입된다는 의미에서 언제나 '정치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한 종류의 호명장치는 결코 '중립적'이 아니며, 언제나 특정한 사회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한 사람에 대한 '호명,' 즉 그 사람이 어떻게 불리워지는가는 한 사회에서의 권력을 가진 주류에 속한 사람들이 결정하게 된다. '호명을 당하는 집단'과 '호명하는 집단' 사이에 언제나 권력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소위 '사회적 소수자'들은 스스로 호명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만들어 놓은 호명장치를 통해서 사회로 '호명'이 된다.

남성을 호명하는 장치는 '미스터(Mr)'밖에 없는데, 왜 여성을 호명하는 것은 두 가지, 즉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나뉘어지는가

3.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미스 박'이라는 호명장치가 여성혐오인가 아닌가 라는 물음 자체는 '예스와 노'만을 강요하는 매우 표피적인 것으로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음에 대한 물음'을 다시 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물어야 할 물음들은 첫째, 여성에 대한 호명과 남성에 대한 호명은 각기 '어떠한 가치관'에 의하여 형성되고, 회자되고, 재생산되는가; 둘째, 남성을 호명하는 장치는 '미스터(Mr)'밖에 없는데, 왜 여성을 호명하는 것은 두 가지, 즉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나뉘어지는가; 셋째, 어떠한 이유에서 사람들은(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이러한 사회적 호명장치에 대하여 문제제기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하여 성찰하는 것은 사회적 권력관계의 측면, 가치체제와 호명장치의 상관관계, 그리고 사회변혁운동의 역사적 맥락안에서 조명되어야 하는 사실상 매우 복잡한 주제들이다.

여성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재생산' 즉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류의 종족보존에 기여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왔다.

4.

간략하게 보자면, 역사적으로 여성에 대한 호명장치를 누가 만들었는가는 자명하다. '여성이란 누구인가'를 규정해 온 것은 남성들이었다. 전통적인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각기 어떤 존재로 인식되어왔는가를 들여다 보자. 남성들은 한 인간으로서 정치, 사회, 경제, 예술, 종교등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역사를 이끌면서 인류문명을 형성해온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라고 인식되어왔다. 반면, 여성은 철저히 '사적영역'에 속한 존재로서, 그들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재생산 (reproduction)', 즉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류의 종족보존에 기여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왔다. 그래서 여성의 존재방식은 '결혼 여부'에 따라서만 규정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적 가치관에 의하여 매우 '자연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왔다. 물론 여기에서 '결혼'이란 이성애적 결혼을 의미한다.

5.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의 다양한 사회변혁운동들을 통해서, 그동안 중심부에 속한 사람들에 의하여 '규정'되기만 해 오던 사회적 소수자였던 그룹들이, '발화의 대상(spoken object)'의 위치를 거부하며, 이제 스스로 '발화의 주체(speaking subject)'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소위 '정체성의 정치학(politics of identity)'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시몽느 드 보브아는 1949년에 쓴 '제2의 성'을 통해서 "남성은 주체(the subject), 여성은 객체/타자(the other)"로서 존재해왔다는 현실을 분석한다. 그러면서, 남성은 '제1의 성'인 반면, 여성은 '제2의 성' 으로서 살아오고 있다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사회의 가치관과 그 현실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한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성차별과 가부장제적 가치체제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6.

이론과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여성의 존재규정에 대하여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 형성되어왔다. 그런데 과연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규정은 매우 다양하다. 내가 차용하는 개념은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주장(feminism is the radical notion that women are people)'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페미니스트(feminist)'란 '생물학적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관한 것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성차별과 가부장제적 가치체제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며, 남성이라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결코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나의 한국일보 칼럼,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를 참고.)

호명장치에 대한 무비판적 차용은, 호명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적 가치를 확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7.

'미스/미세스' 라는 호명장치는 이렇게 여성을 남성과의 결혼여부로서 그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가치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호명장치에 대한 무비판적 차용은, 호명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적 가치를 확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여성에 대한 호명장치에 대한 대안으로 '미즈(Ms)'라는 호명이 차용되곤 한다. 물론 이러한 대안에 대한 찬반론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남성을 '미스터'라고만 규정하면서 그 남성의 결혼여부가 그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보자면, 여성 스스로 이러한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호명장치(미스/미세스)를 거부하는 사회문화적 저항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8.

나는 이 포스팅의 서두에 밝혔지만, 어떠한 특정한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이 경우,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미스 박'이라는 호명장치가 지닌 사회정치적 함의)의 근원적 배경에 대한 비판적 조명과, 또한 그 문제제기 이후의 '전략적 행동(이 경우, 공연취소)'이 효과적 전략인가 라는 두 가지 문제는 철저히 분리되어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동일한 문제제기가 동일한 변화전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우려하는 점은, 특정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단순한 흑백논쟁으로 편가르기를 하곤 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이다. 이러한 '편가르기식' 의 문화는그 어느 편에도 도움되지 않는 파괴적 에너지를 방출할 뿐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들이 등장할 때마다, 사회문화적 문제들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학습'과 인내심있는 토론문화의 확산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에서 주변부와 중심부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게 되는 가능성이 조금씩 커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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