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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무죄인가

그런 중죄인을 둘러싸고 있는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과 한광옥 비서실장을 필두로 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비겁한 처신은 꼭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의 잘못이 아무리 크다 해도 옆에서 그를 보좌해온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해왔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오태규
  • 입력 2016.12.01 06:23
  • 수정 2017.12.02 14:12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제3차 담화를 통해 국민의 봇물 같은 퇴진 요구를 국회로 슬쩍 떠넘긴 채 장기 항전 태세에 들어갔다. 자기 딴에 교묘한 책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거리의 분노는 더욱 커진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역시 세상 물정과 담쌓고 사는 '유신 공주'다운 발상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단군 이래 최악의 혼용무도한 지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버티기 작전 덕분에 국민이 얻는 망외의 소득이 솔찮다는 점이다.

우선 그 때문에 거의 역사상 처음으로 완벽한 국론통일이 이뤄졌다. 단 4%의 지도자가 이룬 신공이라 할 만하다. 앞으로 어느 누구도 이처럼 남녀노소, 지역, 직종, 학력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국민이 한목소리로 같은 요구를 하게 하는 위업을 달성하진 못 하리라. 둘째, 동물 기름을 소재로 하는 수공업적인 양초 산업이 엘이디를 활용한 첨단 전자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가 재벌 기업들의 돈을 뜯어 각 지역에 창조경제센터를 만들면서까지 공력을 들였지만 이루지 못한 창조경제의 꿈이 단박에 이뤄진 것이다. 아울러 빈사 직전의 서울 도심 뒷골목 상권이 촛불 시민 덕에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셋째, 한국의 기성세대가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의 저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일련의 촛불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청년세대의 의롭고 믿음직한 모습은 '너희는 시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먹고사는 즉자적인 문제에만 골몰하는 세대가 아니냐'는 기성세대의 통념을 멋지게 깨 주었다. 나는 미래 세대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보게 된 것이 이번 사태가 가져다준 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죄과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와 언론 보도로 충분하게 알려진 만큼 여기서 더 거론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런 중죄인을 둘러싸고 있는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과 한광옥 비서실장을 필두로 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비겁한 처신은 꼭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의 잘못이 아무리 크다 해도 옆에서 그를 보좌해온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해왔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국무위원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의 직위에 있는 자 중에서 단 한 명도 반성이나 참회의 목소리를 내놓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임명 당시는 몰랐다고 해도 검찰의 수사를 통해 죄상이 낱낱이 밝혀진 지금도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며 자리보전에만 연연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조차 민망하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신임 민정수석이 뒤늦게 사표를 냈지만 그들의 행위도 반성이나 참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무엇을 위한 사표인지 감을 잡을 수 없게 하는 그들의 모호한 태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치사하고 비겁하긴 마찬가지다.

민심에 탄핵당해 대통령이 기능부전 상태에 있으므로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이 당장 모두 사퇴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큰 몇 명은 사표를 내고, 또 다른 몇몇은 반성문이나 참회문이라도 내놔야 정상이지 않겠는가.

그 가장 앞줄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임기 내내 대통령에 충언과 고언은커녕 눈치와 아부, 심기 경호에만 진력해온 그가 지금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한국 공무원 전체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직무대행'이라는 직위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대통령의 거취와 관계없이 하루라도 빨리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야 옳다.

역사 국정교과서의 추진이 `박정희 고무찬양' 역사를 국가의 강제력을 통해 주입하려는 야만적인 정책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준식 교육부 장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체결이 국가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사진기자들의 협정 조인식 취재조차 봉쇄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 국제적인 망신이 뻔하게 예상되는 대통령의 12월 중순 도쿄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참석을 마치 국익에 큰 도움이 되는 중대 행사인양 현혹하고 있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주범으로 지목되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회의 해임결의안 통과에도 끔쩍 않고 눌러앉아 있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등.

당신들은 정말 이번 국난 사태에 무죄인가. 벌거숭이 임금의 폭정과 정녕 무관한가. 꼭 답변을 듣고 싶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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