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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을 다시 탈취당하지 않으려면

기득계층은 호시탐탐 시민혁명의 결과를 야바위할 기회를 노리고 있고, 역사는 그런 그들의 노림수는 대부분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우리 현대사에서 4월 혁명과 6월 항쟁이 각각 5‧16 쿠데타와 군사정권의 연장인 노태우정권으로 귀결된 것이 그 예이다. 이번 시민혁명이 또 다시 이런 참담한 결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은 물론이고, 그들의 국정농단을 용인‧방조하거나 그들과 결탁해 사익을 챙긴 집단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 권태선
  • 입력 2016.11.30 09:02
  • 수정 2017.12.01 14:12
ⓒ연합뉴스

대한민국 국민들은 위대했다. 5주째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함성은 갈수록 커졌지만, 행동은 여전히 절제됐다. 청와대를 에워싸고 경찰과 대치한 순간에도 그들이 든 무기는 꽃과 촛불, 그리고 기어코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겠다는 결의뿐이었다. 평화적 시위를 끝내 관철해낸 시민들에 대한 나라 안팎의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시민혁명, 명예혁명이란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기득계층의 반격에 대비해야

그러나 시민혁명을 완수하려면 아직 멀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를 뒷받침해온 기득계층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온갖 머리를 다 짜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29일 나온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그렇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 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담화는 마치 퇴진을 요구한 민심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의를 걷어차려는 꼼수를 숨기고 있다. '임기단축' '법 절차' 등의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들이 퇴진을 요구하는 까닭은 헌법에 위임된 대통령의 권한을 측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등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임기 단축이란 표현을 통해 책임 인정을 거부했다. 심지어 그는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법 절차'라는 말 역시 개헌논의를 통해 정치권을 분열시키고, 그를 핑계로 권좌를 지키겠다는 음험한 의도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친박계는 이를 사실상 하야 선언이라며 탄핵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에서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할 때는 법질서에 따른 탄핵을 하라고 종주먹을 대던 이들이, 탄핵이 막상 현실화되려고 하니 질서 있는 퇴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꼼수요 발버둥일 뿐이다. 그들은 탄핵 중단이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낯 두꺼운 주장까지 한다. 생업도 접은 채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며 추운 거리로 나선 주권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나라를 거덜 낸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중요하다고 한 것은 스스로 시대착오적 봉건주의자이고 민주주의의 적임을 실토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부역언론에 또다시 농락돼선 안 돼

그러나 새누리당 친박계만 상황을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아니다. 대통령 담화에 대한 수구언론들의 사설 속에서 그들의 진의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담화에 노림수가 있다는 의심이 있다면서도 "그러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다."며 "박 대통령이 고심 끝에 내렸을 결정이 그 취지대로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설에서는 야당이 노력하지도 않고 대통령의 임기 단축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걷어차 버리는 것은 경솔하다며 '최순실 사태에 무임승차한 야당들'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했다. 대통령의 발언 속에 이미 깔려 있는 복선에는 눈감은 채 야당의 협상 참여를 촉구하는 이 사설은, 합의가 무산될 경우, 그 책임을 야당 쪽에 묻고자 하는 또 다른 복선을 깔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무능력하고 몰상식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에는 그의 수많은 문제점에 눈감고 그를 띄웠던 수구언론들이 있었다. 지난 대선 무렵 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본 언론인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원론적 답변 이상을 내놓지 못하고, 그나마도 수첩에 의존하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엔 너무나 자질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수구언론들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의 능력에 대한 검증은커녕 그에 대해 제기되는 수많은 의혹도 외면한 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했다. 대통령이 된 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도외시하면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을 때도 비판 대신 그 장단에 맞춰 나팔을 불어댄 것도 그들이었다. 그러다 4월 총선 결과 박 대통령의 효용이 사라졌음이 확인되자, 일부 수구언론들은 친박 해체 등을 통한 정권 재창출 기획에 나섰다.

개헌 논의의 노림수를 직시해야

그들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방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 개헌이다. 물론 87년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는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돼 왔고 동의하는 국민들도 상당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에 대한 권력집중을 해소하고, 국민주권이 제대로 담보되고 대표성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개헌할 필요성은 물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탄핵 국면에 개헌을 끌어들이는 것의 위험성은 대통령이 담화에서 임기단축을 거론하며 사실상 개헌 정국으로 상황을 재편해 반전시키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력을 잃을 처지에 있는 새누리당의 김무성 전 대표가 개헌론의 선봉에 서고 있는 것 역시 그들의 개헌 주장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이유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더라도 지금은 개헌 논의에 빨려 들어갈 시점이 아니다. 당장의 국정혼란을 먼저 정리하고, 개헌 문제는 별도의 논의기구를 구성해, 다음 정권에서 차근차근 추진하는 게 맞다.

국정농단 주범과 부역자 책임 추궁 확실히

이렇듯 기득계층은 호시탐탐 시민혁명의 결과를 야바위할 기회를 노리고 있고, 역사는 그런 그들의 노림수는 대부분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우리 현대사에서 4월 혁명과 6월 항쟁이 각각 5‧16 쿠데타와 군사정권의 연장인 노태우정권으로 귀결된 것이 그 예이다. 이번 시민혁명이 또 다시 이런 참담한 결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은 물론이고, 그들의 국정농단을 용인‧방조하거나 그들과 결탁해 사익을 챙긴 집단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파렴치를 번연히 알면서도, 막기는커녕 그를 비호해온 새누리당, 그들과 결탁해 제 배를 불린 삼성 등 재벌, 진실에 눈감은 채 무능한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부역 언론과 '권력의 개' 노릇에 자족했던 검찰 등 사정기관 등이 그들이다. 우리 국민들이 역사의 고비마다 철저한 청산 대신 쉽사리 용서하고 타협하는 쪽을 선택했기에, 역사의 퇴행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지켜갈 책임자는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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