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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자를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는 분들께

99%+ 남자는 그냥 보통 남자. 1% 남자는 위험한 놈. 이때 님은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내가 이상한 놈일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데 저 여자는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그 1%의 강간범/살인범처럼 보이냐?" 합니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님에게 최악의 상황은 "강간범 취급당한 기분 나쁨"입니다. 여자도 이걸 압니다. 하지만, 1%의 경우일 때, 여자가 조심하지 않은 대가는? 강간. 살인. 아니면 최소한 폭행.

  • 양파
  • 입력 2016.11.29 13:21
  • 수정 2017.11.30 14:12
ⓒGettyimage/이매진스

'덩치 크단 이유만으로 길가다 예비 강간범 취급당하니 없던 살심이 치솟는다'라던 분께.

저는 님을 모릅니다. 하지만 영국에는 살고 계시지 않겠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 블로그에 상당히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별 필터 없이 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남아공 살 때 "같은 동네 살고 있는 사람 별로 없을 테니까"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댓글님'은 아마 덩치가 큰 남자분인 것 같은데, 많이 억울한 일 당하셨는가 봅니다. 하지만요.

밤늦은 시간에 어두운 골목에서 어떤 여자가 자기를 따라오는 남자를 흘낏 보고 걸음을 종종 걷는다고 합시다. 그 남자는 위험한 상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네요.

99%+: 남자는 그냥 보통 남자.

1% : 남자는 위험한 놈.

이때 '댓글님'은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내가 이상한 놈일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데 저 여자는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그 1%의 강간범/살인범처럼 보이냐?" 합니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댓글님에게 최악의 상황은 "강간범 취급당한 기분 나쁨"입니다.

여자도 이걸 압니다. 하지만, 1%의 경우일 때, 여자가 조심하지 않은 대가는?

강간. 살인. 아니면 최소한 폭행.

그러므로 여자는 전화기를 꺼내고,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살피고, 뒤를 흘낏 흘낏 봅니다. 도망갈 길을 먼저 마련해 둡니다.

기분 나쁘세요? 네. 기분 나쁘시겠죠.

여자는요? 정말 무섭습니다. 유영철이 미친 사람처럼 생겼던가요? 아뇨,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 중에 싸이코들 많아요.

자, "그런 일이 얼마나 있다고 엄살이냐??" 하실 수 있겠는데.

혹시 블로그 하시면서 악플 받아보신 적 있으세요? 있으시겠죠. 그런데 "××년, 확 죽여버릴까 보다, 강간해버릴까 보다" 이런 협박 들어보셨나요? 전 들어봤습니다. 물론 전 남아공에 살고 있었고 악플러는 아무래도 한국이었을 테니까 아주 두렵진 않았습니다만, 여자 블로거/기자/ 그 외 공공적인 장소에 조금 세다 싶은 의견 올린 여자라면 다들 겪어봤을 걸요. 살인, 강간, 혹은 폭행의 협박 말입니다. 그게 한 번도 아니고, 그런 내용 악플 자주 받네요.

한국 남자들이 딱히 악해서 그런 걸까요? 당연히 아니죠. 얼마 전 처음으로 (영국에서도) 트위터 악플 단 사람이 처벌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여자 기자가 쓴 기사에 찾아내서 강간하겠다, 죽여버리겠다, 이런 내용이죠.

이거 흔합니다. 그리고, 여자로서 최소한 한 번 남자와 몸싸움을 해봤다면 절절히 느끼는 거지만, 남자가 작정하고 덤비면 여자의 몸으로 못 막습니다. 꼭 덩치가 커야 되는 것도 아니죠. 퇴근하는데 기다리다가 산을 확 부어버릴 수도 있고요.

여자라고 안 그런다는 건 아닌데, 확실히 남자가 그럴 확률이 훨씬 높지요?

저 윗글에서 "살심이 돋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전 그거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여자들도 압니다. 조금만 남자 기분 나쁘게 하면 회까닥 돌아서 해코지할 수 있다는 거요. 그래서 아주 싫은 남자가 추근거려도, 옆에 일행 없고 혼자라면 막 대하지 못합니다. "어두운 밤거리를 혼자 걷는 여자"의 시나리오에서도, 여자가 아니라 덩치로 밀리지 않는 남자였다면 확 뒤돌아서서 "왜 쫓아와?"라고 먼저 시비 걸 수 있겠죠. 여자는 못합니다. 몸싸움으로 거의 '백퍼' 지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도와줘야 합니다.

완전 작정한 미친 인간들 있고, 기회가 있으면 미친짓 할 수 있는 인간들이 있고, 보통은 정상적인 남자지만 댓글에서 말씀하셨다시피 "살심 돌도록 회까닥"하면 사고 칠 남자들도 있습니다. 여자 입장에선 뭐 다 무섭습니다만. 어쨌든. 안 그럴 확률이 높지만, 그리고 오해했다면 미안하지만, 오해가 아닐 경우에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자, 이런 글을 쓰면서도 저는 생각합니다. "영국 사는 사람은 아니겠지?" 댓글님은 아주 괜찮은 분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만났다면 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댓글님을 모릅니다. "이딴 식으로 기분 나쁘게 글 썼으니 죽인다"고 댓글 달 사람일 가능성도 있죠? 물론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만, 그리고 그러신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날아와서 절 찾아올 가능성은 또 더 낮지만,

- 협박성 댓글 받아봤고

- 영국에 사는 남자에게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들어봤고

- 실제로 작정하고 덤빈다면 저를 찾기는 쉽고

- 제가 미리 대비할 방법은 거의 없다

는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거 이해하시죠? 그리고 여자로서 이건 아주 자주 드는 생각이라는 것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남자 입장에서 억울하게 누명 쓰는 경우도 많다는 것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해외에서는 가정폭력의 경우는 요즘엔 거의 무기로도 쓰이지요. 남자가 목소리만 높여도 당장 경찰 부르면 바로 '깜빵' 가고, 요즘엔 그런 기록을 다 공개하자는 분위기다 보니까 여자 잘못 만났다가 인생 망치는 것 한 방, 이란 케이스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맞아죽을 확률은 그리 크진 않지요? 요즘에도 살해당하는 여자들의 상당수는 남친/남편/그 외 남자인 범인에게 거의 당합니다. 무고한 누명 생각해서 '여자들 편들지 말자'고 하기엔, 아직은 희생자가 너무 많네요. 저는 악플러들이 여자 블로그에 강간/살인 협박 댓글 달 때마다 깜빵 갈 거 각오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아래 말 험합니다. 이미 험했지만 더 험해집니다 (...)

한국 남자가 한 번 흑인에게 빡 세게 강도를 당했다고 합시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남아공에서 계속 사는데, 어쩌다가 보니 저녁에 좀 늦도록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흑인 남자들이 저쪽에서 네댓 명이 큰 소리로 놀고 있군요. 좀 피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말을 겁니다.

"어이. 야! 헬로! 칭총창! 중국 원숭이!"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하지요. 그런데 덩치 좋은 한 남자가 갑자기 내 쪽으로 달려옵니다. 그래서 순간 움찔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우와아아 하고 웃습니다.

"무섭냐? 내가 너 강도라도 할 거 같냐?"

또 무시하고 지나가려니까 그럽니다.

"야, 너 나 흑인이라고 무시하냐? 털 것도 없는데 안 건드릴 거거든? 어? 이게 사람이 말을 했는데 답을 안 해?"

성질 같아서는 총이라도 꺼내서 확 다 쏴 버리고 싶지만, 승률은 높지 않죠. 그리고 사실 무섭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 못하고 지나갑니다. 한 대 맞은 것도 아니고, 걔네들은 그냥 껄렁대며 시비 걸었겠지만, 당한 사람은 트라우마가 더 심해집니다. 그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하니까,

- 그니까 왜 남아공에 사냐

- 왜 저녁에 술은 마셔 집에 일찍 일찍 다닐 것이지

- 그니까 평소에 내가 운동 좀 하라고 했지? 덩치 있고 성깔 있어 보이면 걔네들이 시비 걸 거 같냐? 니가 비리비리하니까 만만해서 시비 걸지

분하고, 억울하고, 창피하고, 쪽팔리고, 인생에 회의 들죠.

이런 상황, 여자는 상당히 많이 겪습니다. 시비 거는 남자들은 저런 상황에서 자기 무시한다고 난리. 말 대답해주면 본격적으로 작업 걸기. 상대 안 해주면 "건드릴 생각도 안 했는데 혼자 김칫국 마시고 난리"라 욕하고, 여자 입장에서 남자가 혹시라도 한 대 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상대 해주면 "내가 진짜 지 좋아하는 줄 알고" 이런 식으로 비웃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주위에 말하면, 왜 그러니까 치마 입고 다니냐 모자란 년아, 왜 밤에 늦게 혼자 다니냐, 왜 미친 놈들 상대를 해주냐, 왜 미친 놈들 성질 건드리냐 뭐 이런 반응 받기 십상입니다.

인종차별도 당연히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 위에서 든 예에서 움찔하고 못들은 척하며 지나간 사람을 "흑인을 사람으로 안 보는 인종차별 주의자"로 몰고 가는 건 핀트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죠. 마찬가지로, 여자가 위협을 당하는 상황이 상당히 많고, 폭행과 강간, 살인 당하는 여자가 많다고 하는 말에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닌데 남자를 범죄자 취급한다"라는 대답은 그와 같이 핀트가 빗나간 말입니다. 저 상황에서 당한 사람에게 "앞으로 어두운 밤길에 흑인을 보더라도 움찔하거나 경계하지 말아라. 그건 인종차별주의자나 하는 짓이다"란 충고가 전혀 도움 안 되듯이요.

시위 나가시는 분들이 성추행 당하셨다는 이야기 들립니다. 남자를 다 범죄자 취급한다 하기 전에, 당하는 쪽은 어떨지 생각 한 번 더 생각해 주세요. 그 얘기 듣는 당신이 더 불쾌하겠어요? 시위 나가서 당하고, 당했다고 말 하는 걸로 친박 페미 취급받는 사람이 더 불쾌하겠어요?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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