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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술집이 했던 역할 4가지

인기 있는 술집은 당대의 유행과 정서를 반영한 경우가 많다. 혼술족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스몰비어나 실내포차, 그리고 책방과 술집을 결합한 책맥 등이 그 예다. 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왔지만, 시대마다 이를 소비하는 공간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렇다면 과거의 술집은 어땠을까? 지금이야 술집이 '음식점'과 '여가공간'이 합쳐진 정도지만, 서양 중세시대 술집이 맡았던 역할은 단순하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맡을 수 있는 대부분의 역할을 당시 술집이 담당했다. 그 몇 가지 사례를 알아보았다. 술집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곳이었다.

1. 밀회

"태번(Tavern)은 와인 전문점으로 16-17세기에 전성기를 보낸 상류계급의 전용 선술집이었다. 영국에서 와인은 수입품이라 고가였고, 와인 선술집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피프스는 하급 귀족이었는데...빈번하게 와인 선술집, 즉 태번에 드나들었다...피프스는 태번에서 정사를 즐겼다."(책 '선술집의 모든 역사', 시모다 준 저)

술집은 '성적 일탈'의 공간으로 오랫동안 제공되어 왔다. 하층민들이 다니는 선술집은 고대부터 매춘을 겸했고, 영국 귀족들만 다닐 수 있었던 선술집인 '태번'은 매춘을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때로 불륜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영국의 하급귀족이던 피프스는 자신의 사생활을 낱낱이 일기에 적었는데, 태번에서 자주 귀부인들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개중에는 술집 의자 밑에서(!) 관계를 가진 적도 있다고 하니, 공간만 분리되어 있었을 뿐 귀족과 평민이 노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태번이 비즈니스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상거래나 변호사 업무 등의 목적이었다.

2. 동사무소

"중세와 근세의 영국 선술집은 커뮤니티 센터였다. 특히 농촌에선 절대적이었다. 선술집은 비즈니스 모임과 각종 주민 모임의 장소였다. 심지어 투표소, 연설 장소, 은행, 재판소, 극장, 음악 공연장, 우체국, 이발소, 직업소개소의 기능도 있었다. 이곳으로 정보가 모여들고 흩어졌다. 선술집은 식료품, 의류, 소금, 양초, 담배의 유통장소이기도 했고, 닭싸움, 복싱, 볼링 등 여러 가지 볼거리도 열렸다." (책 '선술집의 모든 역사', 시모다 준 저)

도시의 술집과 달리 농촌마을에 있었던 술집은 정말 오만 가지 역할을 다 하는 동사무소와 같은 존재였다. 영주가 있는 곳이 너무 멀 때는 술집에서 임시 법정이 열리기도 했고, 프랑스의 경우 임금 노동자들이 회사가 미리 맡겨놓은 급료를 받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물론 급료를 받으면서 그냥 술집을 빠져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술이 단순한 음료가 아닌 공동체를 유지하는 아교와 같은 역할을 했던 재미난 사례다.

3. 병원

"정규 의학과 약학이 자리잡은 것은 19세기의 공업화 이후인데, 그 이전에는 이러한 의료 예인의 다양한 의료 행위와 약이 민중의 질병 치료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시장과 선술집이었다. 선술집에서 의료 행위가 벌어지면, 선술집이 곧 병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농촌에도 정규 의학이 보급되었다." (책 '선술집의 모든 역사', 시모다 준 저)

한국 대중가요에서 미8군 클럽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선술집은 각종 공연을 올리는 무대의 공간이기도 했다. 특이하게 그런 공간에 가수만이 아닌 의사도 올라갔다. 물론 정식 의사가 아닌 사람이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을 홍보하기 위해 벌였던 홍보 활동이었다. 발치 등의 의료 행위를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경우가 많았고, 많은 이들은 이를 하나의 '예능' 공연처럼 소비했다고 한다. 술집이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던 시절의 특이한 이야기이다.

4. 정치적 회합

"독일에선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가 가장 유명한 선술집이었다. 이 선술집은 원래 바이에른 왕가의 양조장이었으나 19세기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히틀러가 1920년 2월에 이곳에서 2,0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연설하면서 '국민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스)'이 태동했다."(책 '선술집의 모든 역사', 시모다 준 저)

때로 술집은 치열한 정치적 토론을 벌이거나, 회합을 가지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 어두운 사례 중 하나가 히틀러와 선술집과의 관계다. 뮌헨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호프브로이하우스라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유명한 선술집에 불러모아 연설을 했고, 이는 그대로 나치스의 시작이 되었다. 역설적인 사실은 막상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이후 선술집의 정치적 기능을 철저히 억압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만을 가지도록 강제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하면 괜찮고, 다른 이가 하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이중적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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