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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위대한 이들의 자서전도 굉장히 흥미롭다

자서전은 아무나 쓰지 못한다. 또한 자서전을 쓰고 난 뒤에 뒷감당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가 그런 운명에 처해있다고 한다. 출판사들도 당황스러워하고, 온라인 서평에는 비판적 내용이 올라오고 있다. 이 외에도 유명인들의 자서전이 하루 아침에 아무 소용없게 되는 것을 예전에도 보아왔다. 사실 하루하루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들의 삶이 더욱 울림이 클 수 있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자서전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터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와 그들의 노동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할까 한다.

1. 만리재 기슭 성우이용원: 이남열 전(傳)

“이남열에게 머리카락을 맡기면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빠른 속도로 유행하다 사라지는 머리 스타일을 따라 웅웅웅 또는 싹둑싹둑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형태를 만드는 게 아니다. 가위질을 하며 끊임없이 고객과 소통한다. 머리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돕는다. 잘라야 할 부분과 남아야 할 부분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찾아, 그 경계에 보이지 않게 자리한 틈을 찾아 가윗날이 살그머니 스쳤다 나온다. …. “…. 나는 고집만 피우고 살아. 남들 하는 거 안 따라가. 자살행위야. 남 하는 거 따라 하면 자살행위, 죽은 목숨이야. (남들 방식) 안 해봐. 신경도 안 써. 남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 안 해.” 자신의 노동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늘 주변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지닌 이는 주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직시한다. 이남열은 시대와 무관하게 자신의 노동 공간과 노동 방식을 지켰다.” (책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 ‘아버지’라는 이름의 노동에 대한 성찰, 오도엽 저, 이현석 사진)

이용원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 미용실이다. 그것도 프랜차이즈 미용실이 많다. 아직까지 이용원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그만의 내공이 상당히 쌓였다는 의미다. 성우이용원의 이남열씨는 다른 이들을 쉽게 쫓아가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자신의 기술을 끊임없이 연마하여 자기만의 이발의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을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가진 이를 만나는 일은 늘 즐겁다.

2. 낙산 자락 일광세탁소: 김영필 전(傳)

“고객이 “세탁한 옷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고 하면 체인점에서는 다시 본사로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다. 일광세탁소에는 세탁 체인점에서 찾을 수 없는 김영필만의 떳떳함이 있다. 일단 자신이 맡은 옷은 그 결과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새 옷처럼 만들어 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받는다. 다 같은 다림질 같아도 김영필이 다림질한 옷을 입었을 때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영필의 손을 거친 옷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잘 다려졌네!”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김영필은 평소처럼 일했을 뿐인데, 옷의 주인은 ‘다름’을 기가 막히게 눈치챈다. 이게 인간의 노동이 지닌 힘이자 가치다. …. 다림질이 대단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숙련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볼 일은 아니다. 설사 그 기술이 하찮다 쳐도 그 노동을 마주하고 완성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결과물에 담긴 가치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영필의 노동에는 혼이 담겨 있다. 성실한 신뢰가 깃들었다.”(책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 ‘아버지’라는 이름의 노동에 대한 성찰, 오도엽 저, 이현석 사진)

노동은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그 노동을 하는 인간 자체를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그가 하고 있는 일, 즉 노동으로 설명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노동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그 사회는 발전한다. 일광세탁소 김영필씨도 자신의 노동을 자랑스러워한다. 한 자리에서 50년 가까이 세탁업을 최선을 다해 한 것에 대한 뿌듯함이다. 누군가 하고 있는 일은 온전히 그를 설명해 줄 수 있다.

3. 모래내 너머 형제대장간: 류상준 전(傳)

“대장장이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류상준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노력해서 10년은 배워야” 대장장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디서든 선생을 잘 만나야 쑥쑥 올라가듯이 이 일도 선생을 잘 만나야 해. 어렸을 적에 일하면서 우리 선생님이 이렇게 이렇게 만드니까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생각)하면서 우리 선생이 없을 적에 나 혼자 두들겨서 조그맣게 만드는 거죠. 지가 배우려고 노력하고 10년 이상 있어야. 노력해야 하지, 노력 안 하면 20년 지나도 못하죠.” 노동과 예술이 언제부터 갈라졌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노동이든 예술이든 10년 이상, 그 10년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 홀로 설 수 있다. 류상준이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으면 미켈란젤로의 말이 떠오른다. 어떤 이가 “보잘것없는 돌로 어떻게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나요?”라고 묻자, 미켈란젤로는 “그 형상은 처음부터 화강암 속에 있었죠.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들만 깎아냈을 뿐이요”라고 답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 수 없다. 한 소녀가 작업 중인 미켈란젤로를 보고 왜 힘들게 돌과 씨름하느냐 묻자 “이 속에는 천사가 들어 있단다”라고 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책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 ‘아버지’라는 이름의 노동에 대한 성찰, 오도엽 저, 이현석 사진)

좋은 스승과 10년의 노력, 형제대장간 류상준씨는 이 두 가지가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일이든 비슷할 것이다. 스승을 누굴 만나냐에 따라 노동의 질이 달라진다. 아무리 제자가 뛰어나도 그것을 갈고 닦아주는 스승이 중요하다. 그래야 제자가 스스로 빛을 발한다. 10년의 노력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나 어떤 강도로 노력하느냐에 따라 노동 품질이 좌우된다.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한 ‘10년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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