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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명화들의 숨겨진 비밀 4가지

초, 중학교 시절, 학년이 바뀌고 교재가 바뀌어도 항상 질리지도 않고 미술 교과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몇 가지 작품들이 있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렘브란트의 ‘야경’ 등이 그들이다. 하도 많이 봐서 어쩌다 광고판에 보이기라도 하면 손이라도 들어 아는 척 하고 싶어지는 이런 명화들을 과학의 눈으로 접근하면 과연 어떻게 보일까? 익숙한, 다른 말로 이미 볼만큼 봐서 아무 신선함이 안 느껴지는 명화들에 과학의 시선을 대입해보았다. 약간은 색다른 관점으로 거장과 그들의 명화에 대해 알아보자.

1. 화학을 몰랐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은 유화와 템페라 기법을 혼합하여 그린 것이다. 다 빈치는 이런 혼합 기법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는 그가 화학에 관해서는 상당히 무지하였음을 보여준다. 템페라에 사용하는 달걀 노른자는 수분을 거의 50% 이상 함유한 에멀션(emulsion)인데 유화는 기름이므로 수지 균형이 깨어져 상 분리(물과 기름이 층으로 분리되듯이 두 상이 섞이지 않고 분리되는 현상)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책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해부학부터 기계공학까지 거의 전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팔방미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그도 정통하지 못했던 한 가지 분야가 있었다. 바로 화학이었다. 문제는 화학에 대한 무지가 곧 그림 재료에 대한 무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다 빈치는 나무판에 석회를 발라 평평하게 만든 후 그 위에 황을 포함한 물감을 칠해 그림을 그렸는데, 석회는 황과 만나면 탄산화하여 탈색되는 성질이 있다. 그에 더해 유화 위에 수분이 포함된 물감을 덧입혀 두 물감이 섞이지 못하고 분리되게 만들었다. 오늘날 <최후의 만찬> 등의 작품의 색이 바래고, 껍질이 벗겨진 것처럼 여기저기 떨어져나가는 현상은 다 빈치의 이런 실수 때문이다. 이것저것 공부하시는 김에 딱 하나만 더 공부하셨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 대목이다.

2. 사실은 '야경'을 그린 적이 없던 렘브란트

"...렘브란트는 다른 화가보다 비교적 연화물 계통의 안료를 즐겨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토색, 흰색, 갈색 등을 많이 썼는데 모두 납을 포함한 색이었다...납을 포함한 안료는 황과 만나면 검게 변색하는 특징이 있다."(책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저)

렘브란트의 ‘야경’은 사수협회의 의뢰로 만들어진 단체초상화다. 기존의 일렬로 줄을 세우고 엄숙한 분위기로 그려진 초상화와 달리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게 만든 파격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사실 렘브란트의 이 ‘야경’은 밤이 아닌 낮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비록 렘브란트가 주변을 어둡게 하고 중심과 강조점만 밝게 처리해 시선을 끄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본래 이 정도로 어둡게 그리진 않았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훗날의 사람들이 이 그림에 ‘야경’이란 이름을 붙일 정도로 어두운 그림이 되었을까?

정답은 그림 재료 간 화학 반응에 있었다. 렘브란트는 그림에 납이 포함된 흰색, 갈색 등을 많이 사용했는데, 여기에 황이 포함된 선홍색 버밀리온(vermilion)을 함께 썼던 것이다. 납과 황은 만나면 검게 변색되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산업혁명 초기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던 대기 중의 황산화물도 그림이 변색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낮이 세월이 흘러 밤이 되었던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현실에서도 낮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으니, 나름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3. 인상주의에 도움을 준 산업혁명

"...산업혁명도 인상주의의 태동에 도움을 주었다. 산업혁명은 방직공업의 발전을 가져왔고 그에 다라 새로운 염료와 안료 들이 속속 발견되었다...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새로운 안료들이 쏟아져 나와 화가들의 손에 쥐어졌다. 튜브가 발명되어 간편하게 물감을 야외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된 것도 큰 동기가 되었다. 사진술이 발명되어...화가들은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에 주목하였고 그 영향으로 빛의 효과와 구도가 대담해졌다." (책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저)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색과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야외로 이젤을 들고 나간 사람들이다. 그런데 빛이 가진 색의 혼합과, 물감으로 이루어지는 색의 혼합원리가 다르다는 점이 문제였다. 빛은 빨강-녹색-파랑이 섞여 밝기가 증가하지만(가산혼합), 물감은 빨강-노랑-파랑 같은 원색을 섞으면 오히려 어두워지는 감산혼합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상주의 화가들이 취한 방법은 병치 혼합이었다. 색들을 직접 섞지 않고 모자이크처럼 색점을 만들어 나열해, 멀리서 볼 때 결과적으로 섞인 것처럼 보이는 잔상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데에는 산업혁명의 발전이 큰 기여를 했다. 비싼 염료와 안료가 대량생산되어 섬세한 색의 표현을 위해 다양한 재료를 동원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튜브가 발명되어 이젤을 야외로 들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이 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한 사례다.

4. 프리즘이 만든 추상화

"...추상화의 발전에는 과학적인 발전, 즉 색채의 본질에 관한 연구가 큰 동력이 되었다. 뉴턴의 색채 이론은 표현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몸부림치던 화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었다. 물체가 자체의 색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에 닿은 색채의 분할에 의해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이라는 자각은 그림의 역사에서 격변을 일으켰다...화가들은 형태를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 색채만을 사용하여 형태와 입체적 공간성을 모두 표현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책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저)

인상주의와 추상화는 사실 모두 한 가지 과학적 사건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발생했다. 뉴턴이 프리즘을 통해 색의 스펙트럼 분할에 성공했던 것이다. 빛이 한가지 색이 아니라 6가지 다른 색(빨강-주황-노랑-녹색-파랑-보라)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물질의 색은 고유하지 않으며 빛에 의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화가들은 두 가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 사물이 빛에 의해 변화되는 모습을 그려내거나, 아니면 구체적인 사물 대신 색채 자체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거나. 전자는 인상주의가 되었고, 후자는 추상화, 혹은 야수파로 나아가는 시초가 되었다. 들로네, 쿠프카, 마티스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학문과 예술, 과학과 직관은 서로 대치되는 것 같지만 이처럼 서로 도우며 각자의 발전에 창조적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하나의 전문 분야가 다른 분야를 넘보는 일이 흥미로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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