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정치적 공정성과 인간의 기본적 예의를 헷갈리지 말자

A mug with text 'Political correctness - No thank you!' is pictured at the congress of the anti-immigration party Alternative for Germany (AfD) in Stuttgart, Germany, April 30, 2016.  REUTERS/Wolfgang Rattay
A mug with text 'Political correctness - No thank you!' is pictured at the congress of the anti-immigration party Alternative for Germany (AfD) in Stuttgart, Germany, April 30, 2016. REUTERS/Wolfgang Rattay ⓒWolfgang Rattay / Reuters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도 됐던 때가 그립다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의 진짜 뜻이 뭘까 궁금해진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 할게.”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혹은 “앗차, 조심해야겠네. PC 경찰(정치적 올바름 경찰)이 나올지도 모르겠어.”라고도 한다. 자신들이 비인간화되고 있다고 소외 집단이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을 차별하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우려에 대한 대답으로 흔히 들리는 말로는 “아, 그들은 그저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는 것뿐이지.”, “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헛소리가 너무 지겨워. 그게 나라를 망치고 있어.” 등이 있다.

나는 지금 미국의 문제 중 하나는 ‘정치적 공정성, 혹은 정치적 올바름’과 ‘인간의 기본적 예의’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절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 조심하거나, 남들을 불쾌하게 만들 걱정을 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2016년 대선에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어 자체가 보수파의 하위 집단을 집결시키는 무기처럼 사용되었고, 심지어 진보파에서도 일부 그런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게 애초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까먹은 게 아닌가 싶다.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을 망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실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특정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을 사용해도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졌던 별로 오래되지 않은 시대를 그리워하는 걸까?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게 뭐가 그리 좋을까?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면 정치적 올바름을 좋아할까? 정치적 올바름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듣기에 불쾌한 말을 들으면 굉장히 불쾌해 한다는 사실이다. 선거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가 입을 열 때면 이러한 이례적인 일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트럼프는 연설 중 굉장히 무례하거나 위협적인 말을 하고 그로 인해 비판 받곤 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을 망친다고 비난하고, 사람들이 반대하면 트위터에다 자신의 수사에 대한 반발이 ‘불공평’하다고 반응했다.

정치적 올바름이 사회의 재앙이라는 오명을 샀을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농담과 풍자의 대상이 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정치적 올바름이 정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회적 관행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진화하며, 사람들도 변한다. 정치가 사회적 문화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사회적 문화는 정치에 대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적 문화의 변화를 정치가 뒤따른다. 이 지점에서 미국인들은 정치적 올바름과 인간의 기본적 예의를 혼동하는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몇 년 전부터 태동해왔던 문제이며, 이 연결 지점을 지적한 사람은 내가 처음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담론의 전반적인 수준을 낮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전략이 여러 사람들에게 먹혔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그가 ‘부정직한 힐러리’, ‘거짓말하는 테드’, ‘꼬마 마르코’라는 식으로 다른 정치인들에게 별명을 붙일 때, 그는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한 단어들을 썼다.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 반복하기 쉬운 말들이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그 말은 사람들의 말이 되었다.

트럼프는 수사를 통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발상 자체를 직접적 표적으로 삼고, 전적인 혐오를 품고 대했다. 미국을 잡아먹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자신들이 인식하는 것에 대해 피곤함을 느끼던 트럼프의 지지자들에겐 이것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에 지친, 추락한 중산층들이었지만, 전부 다 그렇지는 않다. 트럼프는 별로 소외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소외되었다고 느끼던 사람들의 하위 집단에게도 어필했다.

힐러리를 찍을 수가 없어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해한다. 나는 원래 버니 팬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트럼프를 찍을 수는 없었다. LGBTQ+ 스펙트럼 상의 아이를 키우고, LGBTQ+ 커뮤니티에 수십 명의 친구를 둔 내가 그럴 수는 없었다. 아주 친한 친구 중에 유색 인종, 소외된 종교 커뮤니티, 내가 분명하게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찍는 건 불가능했다.

‘대중 앞의’ 트럼프, ‘트럼프가 맡은 역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비정치인이 워싱턴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수사 때문에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이 정말 무섭다. 그들은 국가의 높은 자리에 올라간 웨스트보로 침례 교회와도 같다. 통합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 집단은 우리가 계속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다.

역사를 보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은 수백 년 동안 여러 의미로 쓰여 왔지만, 내가 이 말에 친숙해진 것은 90년대 초다. 내가 자랄 때는 이 말은 미국에 널리 퍼진 경멸적 말이었다. 보수파들이 비웃는데 주로 쓰던 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이 말은 좌파들의 언어와 행동의 정수를 담은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사전들에서는 오늘날 우리의 시각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올바름의 기본적 정의는 사람들이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언어나 행동을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건 결국 남들에게 개새끼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존중, 친절함, 남을 재단하지 않는 행동 등으로 바꿔 쓸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은 남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지 않기, 젠더 고정 관념에 따른 비판하지 않기, 누군가의 성적 지향에 대해 멋대로 가정하지 않기 등도 포함한다. 소외된 사람들의 집단을 억압하지 않는 것도 들어간다. 하지만 중요한 건 멍청한 개새끼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논란이 되는 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고 있는 정말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굉장히 계몽적이고 교육적인 발상이다. 논의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주제들을 제기한다.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비난하기 너무 쉬운 표적인데, 그래서 트럼프를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 “정치적인 올바름에 신경쓰지 않고 말하는 걸 들으니 참 좋다.”는 식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 중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았던 게 아니다. 그는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지도, 억제되지 않은 격정을 가지고 인기가 없는 진실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는 적대적 대상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그저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는 개새끼였을 뿐이었다.

난 트럼프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떤 면을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대중 앞의, 특히 선거 전 기간의 트럼프는 인간의 기본적 예의를 보여주는데 실패한 적이 아주 많았다. 우리 대부분은 인간의 기본적 예의는 이해하지 않을까.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과 그걸 오해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치적 올바름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아니다.

그건 검열이 아니다.

그건 타인의 수정헌법 제1조를 침해하는 게 아니다.

트럼프는 마침내 자기가 모든 미국인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거기엔 소외된 사람들 집단도 포함된다. 현재 우리에겐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우리의 새 대통령을 도와 소외 집단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할 때다. 사회의 발전은 우리에게, 대통령이 아닌 시민들에게 달려 있다. 대통령이 소수 집단을 폄하해서, 그들의 기본적 인권을 빼앗겠다고 말해서 권력을 얻는다면, 그건 무례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일 뿐 아니라 리더십의 완전한 파탄이 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Let’s Not Confuse Political Correctness With Basic Human Decency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 공정성 #정치적 올바름 #pc함 #미국 대선 #정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