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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만 퇴진하면 끝인가? DJ DOC만 안 나오면 끝인가?

지금 거악과 다투고 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사소한 것으로 시비를 걸어서 분위기를 초친다는 비아냥이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이유

  • 하헌기
  • 입력 2016.11.28 13:15
  • 수정 2017.11.29 14:12
ⓒ부다사운드

어떤 백인이 오바마에 대한 디스곡을 하나 쓴다 치자. 이 디스곡의 가사에 '니거(검둥이)'라는 멸칭 대신 '블랙(흑인)'이라는 보편적 지칭어가 동원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디스곡은 '니거'라는 인종차별적 표현 대신 '블랙'이라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적 맥락을 갖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말간 논란이 되었던 DJ DOC의 '수취인분명'의 가사가 여성혐오적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이는 그 노래의 가사인 '미스박'이라는 지칭어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보다 이전의 문제다.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를 비판할 때 굳이 인종을 드러내는 표현을 삽입할 이유가 없듯,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를 비판할 때도 굳이 성별을 드러내는 표현을 삽입할 이유가 없다. 인종과 성별이라는 정체성은 대통령으로서의 실책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판 또는 비난해야 하는 것은 헌정 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이지 '여성 대통령'이 아니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 한 개인이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이를테면, 인종, 성별, 지역 등-을 끼워넣으면, 비난의 타깃이 되는 대상뿐만이 아니라 그 대상과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전체에 대한 차별적 맥락을 갖게 된다. 그것은 비난에 동원되는 단어가 욕설인가 아닌가와는 무관한 것이다. 꼭 '전라디언 대통령이 문제다'라고 해야 전라도 지역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되는 게 아니다. 그냥 '전라도 출신 대통령이 문제다'라고 해도 당연히 지역 차별적인 문장이 된다. '수취인분명'의 가사인 '미스박'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 자체로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지칭어이지만, 그것이 설령 여성을 지칭하는 평범한 단어였다 하더라도, 비난에 불필요하게 삽입되면 여성혐오가 된다. 우리가 비판 또는 비난해야 하는 것은 헌정 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이지 '여성 대통령'이 아니다.

그래서 그 곡이 광화문 집회의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것을 반대하는 항의가 있었다. 집회는 한 뮤지션의 콘서트장이 아니고,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이 모여드는 장인데, 그 장에 모여드는 구성원 중 일부-특히 여성-를 비하하는 메시지가 흘러나오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타당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거악과 다투고 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사소한 것으로 시비를 걸어서 분위기를 초친다는 비아냥이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이유

집회에는 1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박근혜 하야'의 공통의 구호 아래 군집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 모두가 일률적으로 통일된 정치적 요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들 각자가 원하는 더 살기 좋고 공정한 세상의 상이 있을 것이고,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 이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요구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모든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공통적인 '해법'으로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게 아니다. 그 모든 정치적 요구의 공통적 '선결조건'으로서 우선 박근혜 대통령을 그 자리에 두면 안 된다는 데 동의할 뿐이다. 지금 거악과 다투고 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사소한 것으로 시비를 걸어서 분위기를 초친다는 비아냥이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는 과정이다. 또한 그것과 거의 비등한 수준으로, 여성혐오적 표현이 공공연하게 발설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 역시 그들에게는 더 공정하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박근혜란 거악뿐만이 아니라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는 이 사회의 구조 전체가 해일이다.

묻건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우리의 정치적 요구는 여성들의 정치적 요구를 묵살해야만 더 단단하게 뭉칠 수 있는가? 이들의 문제제기를 수용해주면 100만의 정념이 멸렬해지는가? 100만 명이나 모이는 이 정치적 요구의 장은 고작 그 정도 목소리를 수용하면 힘을 잃을 만큼 옹졸하고 편협하고 허술한가?

비난의 대상이 대통령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분명한데 꼭 '여혐노래'라고 퉁쳐서 규정을 해야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반면에, DJ DOC가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것이 대해, 집회의 분위기를 고무시켜 줄 이른바 '사이다' 같은 노래를 쓰지 못해 아깝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여성혐오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가사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그 노래의 목적이 여성을 혐오하기 위함이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대통령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분명한데 꼭 '여혐노래'라고 퉁쳐서 규정을 해야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성혐오의 층위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의 저서에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꼭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을 적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져야 여성혐오인 것이 아니라, 그 의도와 무관하게 성별이원제 젠더 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모든 이들이 여성혐오를 공기처럼 들이마시고 내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수취인분명'의 가사는 전자의 여성혐오가 아니라 후자의 여성혐오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김치녀'나 '화냥녀'처럼 '여성'을 정조준하고 '미스박'을 쓴 것이 아니라 목적은 대통령을 디스하는 것이었는데 다만 그 조준이 정교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성혐오를 제거하고 오로지 대통령이란 표적에 정교하게 맞히려면 앞서 말했듯 대통령의 실책과는 무관한 여성성에 대한 언급은 삭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성을 비하하고 차별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한 여성혐오와 그러한 목적은 없으나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 무심결에 들이마시고 내쉬는 여성혐오를 같은 층위에서 같은 심도로 다루어야 할까? 이를테면, 전자와 같이 여성을 차별하고 비하할 목적이 분명한 여성혐오는 반동이라고 생각한다. 타격하고 분쇄해야 한다. 구성원에 대한 차별을 목적으로 하는 스피치를 공동체의 무대에 올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후자처럼 목적과 의도와 무관하게 발화되는 여성혐오는 반동이라기보다는 후진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후진성은 공동체가 함께 분쇄해야 할 반동과 달리, 함께 조율하고 수정하고 교정해야 할 대상이다. 즉, 심도를 달리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무대에서 밀어내버리는 것보다, DJ DOC가 무대에 올라 "우리가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여 그 부분까지 고려하질 못했다. 앞으로 신경쓰겠다"고 말한 뒤 수정된 가사로 함께 가는 것이 더 페미니즘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수취인분명'의 경우 그것이 여혐이냐 아니냐, 무대에 밀어내야 하는 가 아닌가 꼭 택일해야만 할 문제가 아니라, 어차피 공공의 고무 기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인 만큼, 구성원들의 문제제기를 수용하여 수정하고 조율하여 더 정교하게 조준된 형태로 다듬어 함께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밀어내버리는 것보다, DJ DOC가 무대에 올라 "우리가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여 그 부분까지 고려하질 못했다. 앞으로 신경쓰겠다"고 말한 뒤 공공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여 수정된 가사로 함께 가는 것이 더 페미니즘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집회에 '노래'는 도구일 뿐이지 핵심이 아닌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다. 맞다. 나는 '수취인분명'의 여성혐오 논쟁에서 우리가 건져 올려야 하는 것은 그것이 여성혐오인가 아닌가 보다, 그래서 그것을 무대에 세워야 하는가 무대에서 몰아내야 하는가 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모였고, 각자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대체 왜 '모여야' 하고, 그렇게 모인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떠올려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이 공동체의 장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각자가 내는 정치적 목소리를 대오를 초치는 깽판이라고 막바로 몰아붙이는 건 부당하다. 그 목소리들을 수용하려 노력하면서도, 얼마든지 박근혜 하야의 기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박근혜 하야의 기치 아래 각자의 요구들을 깽판 취급하는 건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도 생각한다. 각자의 목소리가, 민주적으로 수용되기 위해, 민주주의를 훼손한 박근혜에게 하야하라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박근혜가 하야하면 끝인가? DJ DOC만 무대에서 밀어내면 끝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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