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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제시한 대통령 탄핵요건

'최순실 게이트'로 형성된 탄핵 국면에 직면하여 헌법재판소가 201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제시한 탄핵요건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파면시킬 만큼의 '중대한 법위반' 또는 '국민의 신임에 대한 배반'이 확인되어야 한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직접 제시한 탄핵기준이 충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각결정을 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인한 것으로 헌법재판권을 포함한 모든 국가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준일
  • 입력 2016.11.28 07:25
  • 수정 2017.11.29 14:12
ⓒ연합뉴스

'최순실 게이트'로 형성된 탄핵 국면에 직면하여 헌법재판소가 201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제시한 탄핵요건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파면시킬 만큼의 '중대한 법위반' 또는 '국민의 신임에 대한 배반'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처럼 중대한 법위반이나 국민신임 배반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다섯 가지가 예시되었는데 ① 권한과 지위를 남용하여 '부정부패행위'를 하는 경우, ② 명백하게 '국익을 해하는 활동'을 하는 경우, ③ 권한을 남용하여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 ④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⑤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부정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 조작'을 꾀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와 관련하여 특별히 주목할 만한 기준은 부정부패와 국익침해 및 기본권침해다.

우선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받은 권한과 지위를 남용하여 행한 부정부패행위'의 구체적 사례로 헌법재판소는 '뇌물수수'와 '공금횡령'을 들고 있다. 검찰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두 차례로 나누어 기소하면서 기소장에 적시한 범죄혐의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대기업 총수들에게 수백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도록 강요했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이 과정에서 기업합병이나 사면, 면세점 인가 혹은 세무조사 면제와 같은 이익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면 '제3자 뇌물수수죄'에 해당한다. 더욱이 수사 결과 만약 재단의 공금을 최측근들이 횡령한 뒤 그 중 일부라도 대통령이 공유했다면 이것은 '공금횡령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관을 시켜 다양한 정부문서들을 유출했는데 거기에는 중요한 국가기밀뿐만 아니라 비밀유지가 요구되는 내용까지도 상당수 포함된 사실이 기소장에 기재되어 있다. 이처럼 대통령이 중요한 정부문서를 유출시킨 행위는 그 문서의 내용이 외국정부에 알려졌을 때 대한민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므로 '공익실현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명백하게 국익을 해하는 활동'에 해당한다. 한편 앞서 지적한 것처럼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대기업에 대해 기금출연을 강요하였는데 이는 뇌물죄가 아니더라도 대기업의 재산을 강탈하는 행위로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지시로 최측근들이 광고회사를 강탈하려 했다는 범죄혐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요약하면 검찰은 공소장에 열거한 최측근들의 범죄혐의와 관련하여 기본적으로 대통령을 '공범'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공소장에 열거되지 않은 뇌물수수와 관련된 범죄혐의까지 증명된다면 대통령의 범죄혐의는 헌법재판소가 열거하고 있는 탄핵결정의 구체적 기준에 그대로 해당하게 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대통령은 임기 중에 내란죄나 외환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소추되지 않는다(헌법 제84조). 이러한 '불소추특권'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논란은 임의수사는 가능하지만 체포나 구속을 전제로 하는 강제수사는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은데 어쨌든 적어도 '기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최종심은커녕 제1심 법원의 판결조차 구할 수 없으므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위반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검찰의 수사결과밖에는 없다. 일반국민이 법원의 확정판결 전까지 누리는 '무죄추정원칙'을 재임 중에 기소되지 않는 대통령이 탄핵절차에서 주장할 여지가 없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은 조직상 대통령이 수반으로 있는 행정부에 소속된 법무부의 한 조직으로 수장을 포함한 검사를 대통령이 임면한다. 검찰이 조직상 최고상급자이자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수사해서 그 범죄사실을 공소장에 기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증거나 증언이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데 객관적으로 명백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비록 확정판결은 아니지만 검찰의 수사결과를 대통령의 탄핵절차에서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탄핵사유인 법위반에는 법률위반뿐 아니라 '헌법위반'도 포함된다. 검찰은 법률위반을 수사하여 기소하는 국가기관이지 헌법위반을 밝혀내는 국가기관은 아니다. 법률위반에 대한 수사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수사를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대통령과 관련된 수사를 진행시키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헌법위반 여부에 대한 확인을 법률위반 여부에 대한 확인에 완전히 의존시킬 수는 없다.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오로지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문제된 대통령의 다양한 헌법위반행위들은 정리하면 국민이 위임한 권한(국가권력의 한 축인 행정권)을 최측근인 민간인이 행사하도록 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중대하게 훼손했다는 점이다. 또 대통령을 등에 업은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인사권, 정책결정권, 사정명령권 등을 전횡하였을뿐더러 사유화한 권력을 남용하여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함으로써 '법치주의'의 기초마처 뿌리쨰 흔들었다. 나아가 기업을 강탈하거나 특정 기업에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할 '경제질서'의 기본원칙까지도 근본적으로 왜곡시켰다. 이러한 헌법위반 사항들은 '국회의 국정조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밝혀질 수 있는 것들이다. 미국의 탄핵절차에서 하원의 소추로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상원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헌법위반 여부에 대한 확인은 비록 그것이 일종의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법률위반 여부에 대한 확인처럼 검찰이나 법원과 같은 형사사법기관에 완벽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소추가 국회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최측근들의 기소장에 암시되어 이미 피의자가 된 대통령의 범죄혐의를 기초로, 만약이 이것이 부족하다면 앞으로 실시될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나 국회의 국정조사결과를 추가하여 정치적 고려 없이 단호하게 대통령을 파면하는 탄핵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직접 제시한 탄핵기준이 충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각결정을 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인한 것으로 헌법재판권을 포함한 모든 국가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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