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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자가-쿠데타 또는 내란

초겨울 날씨에 매주 백만 명씩 촛불을 들고 나오는 이유가 뇌물 때문인가? 지금 전국민이 치를 떠는 현실과 범죄의 정도 사이에는 아무리 봐도 엄청난 괴리가 있지 않은가! 박근혜와 최순실이 국헌을 문란케 한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국헌문란은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 이것은 신종 자가-쿠데타이기 때문에, 외형적인 폭동은 아닐지라도 내재적인 폭동에는 해당한다. 성공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보면, 내란미수죄가 합당할 것이다. 적어도 국회는 탄핵사유의 맨 꼭대기에 내란죄 또는 내란미수죄를 적어야 한다. 정의가 요구하는 균형점이 거기에 있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11.28 07:04
  • 수정 2017.11.29 14:12
ⓒ연합뉴스

글 |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에게 내란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내란의 죄). 이것이 왜 내란인지 설명을 추가한다.)

쿠데타(coup d'état)란 국가에 대한 공격을 뜻하는 프랑스어 문구다.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서 이 문구는 자주 거론된다. 전두환은 내란죄로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행위가 쿠데타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반면 박정희의 5·16은 최근까지도 쿠데타가 아니라고 우기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

이런 논란을 아직 벌인다는 것은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임을 입증한다. 국제적으로, 즉 비교정치학이나 비교역사학적 관점에서, 5·16은 전형적인 쿠데타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 현대사에는 쿠데타가 이외에도 몇 번 더 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 그리고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도 쿠데타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헌정질서에 대한 공격이 곧 국가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단, 박정희가 유신을 위해 탱크부대를 몰고 한강 다리를 건너지는 않았다. 이승만이 사사오입개헌을 위해 군대를 풀어 방송국을 점령하지도 않았다. 왜냐고?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미 군대와 경찰과 주류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서 새삼 폭동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쿠데타가 아닌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이런 형태의 쿠데타를 자가-쿠데타(autocoup 또는 self-coup)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종종 친위쿠데타로 불리기도 하는데, 친위쿠데타라고 하면 예컨대 권력자의 최측근이 일으키는 쿠데타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에, 권력자 본인이 권력강화를 위해 일으키는 쿠데타는 자가(自家)-쿠데타라고 불러야 정확할 것이다.

유럽사에서 유명한 자가-쿠데타로는 먼저 루이 나폴레옹의 사례가 있다. 그는 1851년 12월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자기가 수호하겠다고 선서한 헌법을 파괴하기 위해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의회를 해산하고, 출판사와 언론사를 점령했다. 저항하는 정치인들과 시민들을 체포했고, 마침내 수백 명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공화국을 폐지하고 스스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되었다.

히틀러의 자가-쿠데타도 유명하다. 그는 1933년에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하는 법을 제정해서 무소불위의 전권을 장악했다. 소위 전권위임법(Ermächtigungsgesetz)이라는 것인데, 의회에서 444대 94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반대표는 모두 사회민주당에서 나왔는데, 그후 사회민주당은 물론이고, 나치당 말고는 모든 정당 활동이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직접적인 저항은 별로 없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할 때까지 이 체제가 지속되었다.

박근혜는 공식적으로 여왕에 즉위하지는 않았다. "전권위임법" 같은 것을 제정하지도 않았다. 저항하는 시민들을 살해하지도 않았다. 단지, 사실상 여왕처럼 행세했다. "전권위임법"이 없이도, 국회와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를 무산시키고, 도처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을 근거 없는 헛소리로 일축했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라고 녹색당이 제기한 소송의 진행을 위해 법원이 "비공개열람심사"를 명령했음에도 막무가내로 응하지 않았다. 이렇게 무시당한 법원은 스스로 굴복함으로써 박근혜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말았다. 100만개의 촛불이 매주 켜지고 있는데도 "헌법"을 들먹이며 물러나지 않고, 검찰의 조사에 응하지도 않겠다는 배짱이 여기서 나온다.

만약 현재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가 황제가 되려고 의회를 해산한다면 대역죄로 처벌을 받을 것이다. 대역죄란 한국 용어로 치면 내란과 외환의 죄와 같다. 만약 현재 독일 수상 메르켈이 히틀러를 따라 전권위임법을 추진한다면 대역죄로 처벌을 받을 것이다. 만약 박근혜가 사사오입으로 개헌을 밀어붙인다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유신헌법을 부활시킨다면 내란죄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는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다만, 실제로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국가기관의 기능을 무력화한 것은 사실이다. 최순실과 그 일당이 재계, 문화계, 의료계, 교육계, 스포츠계에서 맘 놓고 활개를 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다. 장관과 차관을 그 일당으로 채우고, 조금이라도 이의를 다는 공무원들을 제거했다. 이것은 명백한 국헌문란이다. 형법 91조에는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1호),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2호)이라고 국헌문란이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왜 내란죄를 묻지 않는가?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를 내란죄로 규정한 형법 87조 때문인 모양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폭동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의 결과다. 폭동을 좁게 정의한다면, 히틀러도 1933년에 폭동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했을지언정 독일 사회를 상대로 폭동하지는 않았다. 다만 반대파, 사회주의자, 유태인들을 "범죄자"로 몰아 솎아냈을 뿐이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실상 히틀러는 국가가 독점한 합법적 폭력을 악용해서 도리어 헌법을 파괴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의 폭동 또는 내재적 폭동이다. 박근혜의 폭동도 이와 같다.

인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도리어 인민을 해치기 위해 사용한다면 어떤 죄목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폭동, 반란, 내란, 살인, 등등의 범죄를 규정할 때, 입법자들은 국가기관들이 그런 범죄행위를 예방하거나 진압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전제 위에 법조문의 문언을 선택한다. 최고 권력자가 헌정을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내란 또는 자가-쿠데타를 일으키는 경우는 그만큼 예외적이고 특별한 상황이다. 통상적인 사법 관행을 벗어나는 사태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법률 적용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수무책으로 처벌을 못하고 넘어갈 것인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이 그의 정권 아래서 "합법"을 가장했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인가? 만일 히틀러가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만 벌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의 권력이 외부세력에 의해 꺾이지만 않았더라면, 그가 독일 안에서 "전권위임법"을 가지고 자행한 모든 폭행들이 사법적 단죄 범위에서 벗어나는가? 히틀러의 자가-쿠데타는 어쨌든 성공했기 때문에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아닌 것인가?

국헌을 문란하기 위해 폭동이 필요한 것은 국가기관들이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기능하고 있을 때뿐이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가기관을 무력화한 상태는 자체로 국헌문란이 달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폭동 같은 것이 필요가 없다. 박근혜는 루이 나폴레옹보다도 히틀러보다도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자가-쿠데타를 시도해왔던 것이다. 한 번에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3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헌정체제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샅샅이 뒤져보지는 못했으나, 모르긴 몰라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일 것이다. 대단히 창조적인 신종 자가-쿠데타의 형태다.

사법공무원이나 법률가 중에 내란죄가 거의 거론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그만큼 신형이기 때문이다. 야금야금 헌법을 갉아먹은 범죄 앞에서, 기술법학에 물든 법조인들은 대개 "헌법을" 갉아먹은 사실에는 눈을 감고 "야금야금" 해먹은 지점들에만 주목한다. 그러다 보니 죄목이란 게, "직권남용", "강요" 정도고 기껏 "뇌물죄" 정도를 들먹인다. 초겨울 날씨에 매주 백만 명씩 촛불을 들고 나오는 이유가 뇌물 때문인가? 지금 전국민이 치를 떠는 현실과 범죄의 정도 사이에는 아무리 봐도 엄청난 괴리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된 데에는 입법의 미비 탓도 크다.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죄는 내란인데, 정작 "폭동"이 뭔지는 정해놓지 않았고, 폭동이 아닌 방식의 국헌문란에 대한 처벌규정도 없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둥, 그렇지 않아도 헌법파괴 범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한국 검찰에게, 이와 같은 법률의 맹점은 매우 훌륭한 핑계거리가 된다.

내가 보기에, 현재 우리 국민이 직면하고 있는 범죄는 내란죄가 틀림없다. 내게 허용된 양심과 이성과 지식과 균형감각 어느 것도 이러한 판단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지지한다. 다만 대놓고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형량은 감경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즉,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형법 87조 2호)고 정한 법에 따라, 죄의 정도에 따라, 형을 정하면 될 일이다.

나아가,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헌문란은 3년 반 동안은 성공했으나 지금 와서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3년 반의 내란죄는 묻되, 전체적으로는 "내란미수"(형법 89조)로 볼 수 있다. 나는 사형제 자체에도 반대하거니와, 그렇든지 말든지, 이 사건에 사형은 누가 봐도 과도한 형량이다. 그러나, 더욱 상세히 밝혀져야 할 진상에 따라서 좌우될 일이지만, 주범에 대해서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는 특별히 무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단순히 부화수행한 자라면 내란죄라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87조 3호)가 형량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국헌을 문란케 한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국헌문란은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 이것은 신종 자가-쿠데타이기 때문에, 외형적인 폭동은 아닐지라도 내재적인 폭동에는 해당한다. 외형적인 폭동이 아닌 것은 형의 경감 사유는 될 수 있지만, 내란죄의 적용을 배척할 사유는 안 된다. 성공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보면, 내란미수죄가 합당할 것이다. 적어도 국회는 탄핵사유의 맨 꼭대기에 내란죄 또는 내란미수죄를 적어야 한다. 정의가 요구하는 균형점이 거기에 있다.

글 | 박동천

현재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로 재직중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IUC) 정치학 박사

저서: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외.

역서: 『근대정치사상의 토대』, 『정치경제학 원리』,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사회과학의 빈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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