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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권한대행 딜레마, 어떻게 풀 것인가?

정치권과 국민은 이른바 '황교안 딜레마'만 생각하면 하야건 탄핵이건 맥이 빠지고 뒤끝이 개운하질 않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대통령 하야나 탄핵을 성취해도 뒤에서 박근혜 아바타, 황교안이 음흉하게 웃고 서 있다면 누군들 시민혁명을 실감할 수 있겠는가. 자진사퇴나 임기단축을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는 박근혜 입장에서는 임기보장을 받지 않는 이상 야당지명총리와 야당주도내각을 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썩은 동아줄이더라도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라는 마지막 구명줄마저 손에서 놓을 이유가 없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11.25 12:49
  • 수정 2017.11.26 14:12
ⓒ연합뉴스

글 | 곽노현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정치권과 국민은 이른바 '황교안 딜레마'만 생각하면 하야건 탄핵이건 맥이 빠지고 뒤끝이 개운하질 않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대통령 하야나 탄핵을 성취해도 뒤에서 박근혜 아바타, 황교안이 음흉하게 웃고 서있다면 누군들 시민혁명을 실감할 수 있겠는가.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황교안 딜레마는 야당이 한동안 갈팡질팡한 중요한 배경이었다. 거국중립내각 제안도, 선 야당총리 지명요구도, 탄핵추진 지연도 먼저 총리부터 갈아치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작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다. 자진사퇴나 임기단축을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는 박근혜 입장에서는 임기보장을 받지 않는 이상 야당지명총리와 야당주도내각을 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썩은 동아줄이더라도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라는 마지막 구명줄마저 손에서 놓을 이유가 없다. 야당이 결국 선 총리교체 주장을 포기하고 탄핵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던 배경이다.

황교안 딜레마는 일반적으로 총리 딜레마로 불리지만 정확하게는 하야나 탄핵이후 대통령권한대행 딜레마다. 황교안의 인물 됨됨이가 아니라 헌법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헌법문제다. 현행 헌법이 대통령의 사망과 탄핵, 기타 다양한 유고원인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정권의 2인자인 국무총리가 유고상황을 수습할 최적임자라고 판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관련조항을 살펴보자. 우리헌법상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으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71조).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은 대통령은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65조3항)된다. 나아가서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한다(68조2항).

이를 탄핵단계에 따라 적용하면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면 대통령이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 해당되므로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 외무장관 순으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특단의 변화가 없는 이상 헌재탄핵심판시점까지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 1순위라는 뜻이다. 나아가서 헌재의 탄핵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돼 궐위가 되는 경우에도 권한대행이 계속된다. 다만 그로부터 60일내에 대선을 치러야만 하는 것만 다르다.

문제는 헌법이 탄핵에 의한 권한대행과 사망 질병 등에 의한 권한대행을 구별하지 않고 기존 권력서열에 따라 권한대행을 삼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법적 귀책사유가 없는 사망, 질병, 사고 등의 사유로 유고사태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로 말미암아 대통령과 정권, 특히 행정부의 민주적 정당성이 뒤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대통령이 정해놓은 기존 권력서열에 따라 대통령 권한이 대행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통령의 귀책사유로 말미암아 탄핵소추나 탄핵심판을 당한 경우는 다르다. 국회의 탄핵소추건 헌재의 탄핵심판이건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은 대통령의 헌정유린과 불법비리를 둘러싼 비상한 정치의 소용돌이가 광장과 의회에서, 카페와 공론장에서 한바탕 휘몰아친 후에야 가능하다. 대통령과 정권이 모든 권력자원을 총동원해서 방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통치의 정당성과 국민의 신임을 완전히 잃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대통령 탄핵에 이르는 전형적인 전후사정을 감안할 때 대통령 탄핵은 법적으로는 대통령 1인에 대한 탄핵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정권 자체에 대한 탄핵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 탄핵은 동시에 총리와 내각 탄핵이자 국정원과 검찰 탄핵이며 비서실과 새누리당 탄핵이다. 한마디로, 대통령 탄핵은 정권의 핵심부와 상층부에서 정권을 보위하며 권력의 단물을 맛본 부역집단 모두에 대한 탄핵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정부수반인 대통령을 탄핵, 파면한 후 그 수습책임을 정권의 권력서열에 따라 맡기기로 한 우리헌법의 결단은 책임정치의 원칙에 비추어보나 탄핵정치의 상황논리에 비추어보나 부당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만난을 무릅쓰고 대통령 탄핵을 이뤄낸 국민과 의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탄핵으로 무너진 정권의 2인자가 권한대행을 맡더라도 그 임무가 일상적 국정관리와 선거관리로 한정되는데다 최장 헌재심리기간 6개월과 대선관리기간 60일, 총240일을 넘지 않는 과도정부라는 점을 들어 과민반응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장 240일의 과도기는 결코 짧지 않다. 지난 30일의 격동이 말해주듯이 상황전개에 따라서는 몇 년보다 길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처한 작금의 복잡다단한 위기관리 수요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선관리를 무너진 정권의 내각에 맡기는 것부터가 문제다. 이 부분은 다음 헌법 개정 때 반드시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

그렇지만 당장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야3당과 국회가 탄핵발의와 동시에 황교안 총리와 내각에 대해 총사퇴촉구결의안, 즉, 불신임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황교안 권한대행체제 불인정선언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야3당 국회의원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새누리당 비박계가 포함돼도 나쁠 것 없다. 국민들과 야3당이 갖고 있는 황교안 총리내각에 대한 강력한 '디스'의지를 국회의 공식결의로 천명하면 된다.

물론 국회의 황교안 총리 및 국무위원 불신임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만약 야3당의 공조로 총리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의지를 국회의 해임건의권 행사로 천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라도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내각총사퇴촉구결의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탄핵의 정권 탄핵적 성격을 확실히 하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

현재 민주당은 황교안 총리의 권한대행을 불가피한 업보로 받아들이고 신속한 탄핵추진을 당론으로 정한 상태다. 박근혜 끈이 떨어진 황교안은 여소야대 국회가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위로를 삼는다. 만약 황교안 권한대행이나 각료가 제멋대로 나갈 경우 야3당의 공조로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탄핵소추와 직무정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탄핵으로 응징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야3당의 '황교안 권한대행 수용+월권 탄핵응징' 시나리오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통령 탄핵은 동시에 부역총리 탄핵이자 부역내각 탄핵이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을 국회가 받드는 방식은 국회의 권한을 이를 위해 행사하는 데 있다. 현재로서는 총리와 내각 총사퇴촉구결의안이 그 방안이다.

국민의 대통령 하야요구를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권 행사로 풀어내듯이 국민의 '황교안 딜레마'는 국회가 박근혜 내각 불신임 및 총사퇴촉구결의 채택으로 풀어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 황교안 대행체제를 가장 소극적인 관리내각으로 제한하며 박근혜표 주요정책을 중립화할 길이며, 최대한 야당추천총리 내각 가능성을 열어놓는 길이다.

글 | 곽노현

서울의 첫 진보교육감으로 공교육의 새 표준을 만들기 위해 행복한 교육혁명을 추진했다. 그밖에도 삼성3세 무세승계 저지와 재벌개혁, 독립적 국가인권위 설립과 인권증진, 비밀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와 과거청산 등의 시대적 요구를 부여잡고 이론적, 실천적으로 씨름해왔다. 그 과정에서 법치주의의 전사이자 징검다리교육감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지금은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에 민주시민성을 충전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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