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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해일 속에서 윤진숙이란 조개를 주워야 하는 이유

  • 박세회
  • 입력 2016.11.23 13:37
  • 수정 2017.11.24 14:12

나무 위키 등에 지난 2014년 2월에 물러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최순실 씨의 인맥이라는 얘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녀가 청문회 자료에서 밝힌 재산은 국무위원 중 최저인 1억 6천여만 원. 한때 대한민국 권력순위 2위인 정윤회와 만나 점심 먹는데 7억이 든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인 걸 생각하면, 윤 전 장관은 전 재산으로 최순실 씨랑 차 한 잔 정도 마실 수 있었을지 모른다. 가족 명의로 숨긴 게 아니냐는 질문은 좀 나태하다. 그녀는 비혼이고 자식도 없다. 이걸 두고 기자와 국회의원들이 '왜 결혼 여부도 안 밝히냐'고 난리를 쳤던 건 창피한 해프닝이다.

윤 전 장관은 하필 박근혜가 하는 모든 일에 사람들이 딴지를 걸고 싶어 할 때 등장했지만, 뛰어난 해양 과학자이자 매우 스마트한 실무자로 유명하다. 일만 잘했던 것도 아니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판단이 빠르고 정확했으며 리더십이 탁월했고 본부장으로서 부원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고 밝혔다. 다른 제보자도 '그런 취급을 당하실 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존경하느냐 물으니 '존경한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유능하고 지적이어서 존경받던 그녀는 국회의원들 앞에서 시작부터 '눈치 없고 무식하다'는 이미지를 얻었다.

지리학 박사 출신으로 해양연구를 해온 그녀에게 청문회에서 수산업과 항만 분야에 집중된 질문이 쏟아졌고, 이 질답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이 돌면서 그녀는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이날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대체 아는 게 뭐냐'는 말이었다. 아마 그녀에게 해양이나 지리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면 국회의원들은 강의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그녀는 웃었다는 이유로 김선동 의원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여러 원인들을 지적을 했는데도, 눈치도 채지 못하고 인식하지도 못해요. 인지부조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어쩌면 저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 하시나."

그녀는 어떻게 봐도 절대 그런 취급을 당할 사람이 아니다.

그녀를 무너뜨린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코 막는 장관'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당시 사진을 찍은 연합뉴스의 기자는 허핑턴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자신은 '냄새때문에 코를 막고 있다'고 쓴 적이 없다고 밝혔다. '기침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날 코를 만지는 장면이 자주 찍혔고 현장에 냄새가 심해 그 사실을 전달하려던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날 감기 때문에 기침을 자주 했고 코를 자주 만졌다.

아래는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의 증언이다.

"주민 십여 명이 기름 냄새 때문에 병원에 실려갈 정도의 상황이라면 코를 막든, 마스크를 착용하든 하등 문제가 될 게 없다."-연합뉴스(2014년 2월 4일)

'독감 때문에 코를 막은 것이지 냄새 때문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늦었다. 통신사인 연합의 사진은 여기저기 퍼지며 오해를 낳았다. 예를 들어 한겨레는 '윤진숙 장관님, 냄새가 그렇게도 싫었나요'라고 제목을 뽑았다.

그녀가 해임된 결정타는 'GS 칼텍스가 1차 피해자, 어민은 2차 피해자'라는 언론의 헤드라인이었다. 윤 전 장관은 이 발언이 화제가 된 후 '사건의 순서를 설명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아무도 이를 헤드라인으로 뽑지는 않았다. 당시 문제가 된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사고는 필리핀 국적의 유조선 우이산호가 여수시 낙포동 원유2부두에서 접안하려다 GS칼텍스 소유 송유관 3개를 파손하면서 발생했다. 윤 전 장관의 발언은 가장 큰 귀책 사유가 도선사(배를 항구에 접안 또는 정박 시키는 사람)에게 있으므로 피해의 순서는 1차가 GS 칼텍스, 2차가 어민이라는 얘기였지만, 이미 헤드라인으로 정해진 후였다.

그녀가 최고의 해양수산부 장관은 아닐 수 있다. 윤 전 장관에겐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웃는 버릇이 있었고, 과학자들 특유의 정무감 떨어지는 발언을 자주 했으며, '매뉴얼'에 갇힌 사고방식이 갑갑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웃음'만 빼면 이는 학자 출신 장관들 거의 모두가 가진 특징이다. 재임 동안 여야가 합심하고 언론이 뛰어들어 열심히 만들어 낸 윤 전 장관의 이미지는 '눈치 없고 무식한 여성'이다. 만약 당신이 최순실과 윤 전 장관과의 커넥션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의심했다면 대체 그 이유가 '눈치'인지, '무식'인지, '여성'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게 우리가 최순실의 해일 속에서 반드시 주워야 하는 조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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