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의사들에게

의사는 늘 피곤해 보였다. 눈동자는 붉었고, 얼굴은 까칠했으며, 말투는 외모보다 더 까칠했다. 그의 앞에서 나와 엄마는 위축되었다. 수술을 하고 2-3일 쯤 지났을 때, 어깨를 움츠리고 초조한 눈빛으로 의사의 말을 경청하는 엄마를 보는데, 참 속상하고 화가 났다. 나는 엄마에게 중환자실 밖에서 기다리시라고, 내가 의사와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하고 엄마를 내보냈다. 의사는 설명을 이어갔고, 그가 구사한 문장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이 정도면... 돌아가신다고 봐야 해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나는 상처를 주고 싶다는 강한 염원을 담아, 그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좋은 의사는 아니시네요."

  • 장수연
  • 입력 2016.11.23 09:10
  • 수정 2017.11.24 14:12
ⓒShutterstock / lenetstan

나는 두 번,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의사에게 맡겨 보았다. 한 번은 아빠, 한 번은 엄마.

아빠는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뇌를 크게 다치셔서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오셨다.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갔을 때 이미 아버지는 수술 중이셨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에게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가실 가능성이 있고, 사신다 해도 일상 복귀는 힘들 것이라는 게 의사의 설명이었다. 하루아침에 닥친 비극이었고, 우리 가족이 당장 소화하기에 너무 버거운 이야기였다. 며칠 중환자실을 오가며 나와 엄마는 아빠를 면회했고, 틈틈이 의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늘 피곤해 보였다. 눈동자는 붉었고, 얼굴은 까칠했으며, 말투는 외모보다 더 까칠했다. 그의 앞에서 나와 엄마는 위축되었다. 수술을 하고 2-3일쯤 지났을 때, 어깨를 움츠리고 초조한 눈빛으로 의사의 말을 경청하는 엄마를 보는데, 참 속상하고 화가 났다. 나는 엄마에게 중환자실 밖에서 기다리시라고, 내가 의사와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하고 엄마를 내보냈다. 의사는 설명을 이어갔고, 그가 구사한 문장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이 정도면... 돌아가신다고 봐야 해요..."

나는 상처를 주고 싶다는 강한 염원을 담아, 그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좋은 의사는 아니시네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어떻게든 이 의사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내뱉어서 소란스럽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함으로 이 의사가 나를 흔한 '진상 보호자' 중 한 명으로 기억하게 하거나, 병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해프닝 중 하나로 잊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의사의 마음속에 '에잇, 재수가 없으려니까...' 하는 생각 이상의 깊은 상흔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상처를 주고 싶다는 강한 염원을 담아, 그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좋은 의사는 아니시네요." 그 의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또박또박 말했다. "좋은 의사는... 아니시네요..."

그 말을 했을 때 내 목소리가 떨렸던가. 내 마음은 분명 떨렸다. 그 순간을 되짚는 지금도 나는 눈물이 날 것 같다. 내 아버지의 생명을 쥐고 있는 의사에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모욕은 겨우 그 정도였다.

얼마 전, 엄마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셨다. 나는 다시 한 번 병원 중환자실로 달려가야 했다. 이번에는 수술은 없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친척들이 중환자실 밖에 모여 계셨다. 나를 마지막으로 모든 가족이 모이자 우리는 담당 의사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의사는 엄마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번 의사만큼 까칠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피곤해 보였지만 말투는 단정했고, 정확한 언어를 고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지 않은 설명 끝에 그가 결론을 말했다. "어머님은 지금 의학적으로 뇌사가 강하게 의심됩니다. 뇌사인 경우에는 장기기증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연명치료를 하시거나, 더 이상의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지 않고 편하게 보내드리거나,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하시거나. 최대한 빨리 결정하셔서, 늦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저에게 이야기해 주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가족 분들의 경제적인 상황이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장기기증을 하시면 금전적인 보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10여명의 가족과 친척들 모두 말을 잃었다. 힘겹게 중환자실 밖으로 나왔고, 몇몇은 오열했다. 친척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이야기했다. "수연아, 치료비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는 거니까, 돈 보고 결정하지 마."

의사가 '금전적인 보상' 운운한 탓에 우리는 기증을 결정하기 위해 죄책감뿐 아니라 모욕감도 이겨내야 했다.

엄마는 평소에도 나와 동생들에게 장기기증에 대해서 틈틈이 이야기하셨다. 특히 올해 들어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기에(뭘 알고 그러신 걸까), 우리 남매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다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엄마가 뇌사가 맞느냐 아니냐가 관건이었지, 뇌사라는 게 확실하다면 그 다음은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장기기증은 엄마의 분명한 뜻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결정을 힘들게 했던 건 의사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막내 동생은 말했다. "누나, 우리 엄마 장기기증 하더라도, 받는 돈은 다 기부하자. 엄마 장기값 받는 것 같아서 찝찝하고 싫다."

나는 지금도 그 젠틀하고 스마트했던 의사가, 마지막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엄마의 치료를 포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덜기에도, 친척들에게 우리의 결정을 설명하기에도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경험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보호자가 환자의 장기기증을 결정하는 데 가장 힘든 부분은 심리적인 죄책감이다. 그리고 의사가 '금전적인 보상' 운운한 탓에 우리는 기증을 결정하기 위해 죄책감뿐 아니라 모욕감도 이겨내야 했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처음 설명을 듣는 자리에서, 그것도 모든 가족과 친척들 앞에서, 꼭 그 말을 해야 했을까. 직계 가족들만 따로 불러 장기기증에 대해 차분히 설명할 수는 없었을까.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보니 장기기증센터에서 지급하는 돈은 딱 장례식 비용 정도였다.

부모님의 생명을 두고 의사를 만났던 두 번 모두,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원하던 대로 되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시고, 엄마는 장기기증 수술을 하며 보내드렸다. 하지만 그 두 번의 경험은 모두 우리 가족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건 의사들의 말 때문이었다. 특히나 아버지의 경우,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성공적인 수술과 치료를 진행하여 목숨을 되찾게 해 준 실력 있는 의사들이었음에도, 나는 그 의사와 병원에 큰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 성의 없는 말투와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나 아직도 괴롭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내 부모님을 담당하고 있던 두 명의 의사에게 자기소개를 들은 적이 없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듯, 개인의 탓이라기보다 시스템과 조직 때문일 것이고, 구조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 의사들이 그렇게 피곤한 얼굴일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으리라 능히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사들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내 부모님을 담당하고 있던 두 명의 의사에게 자기소개를 들은 적이 없다.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교수인지, 전공이 뭔지, 이름이 뭔지, 궁금한 게 생기면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 병상 머리맡에 담당 교수의 이름이 쓰여 있는 걸 흘끗 보고 몇 번 입 속으로 중얼거려 이름을 외웠지만, 그 이름이 내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사람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의사들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정해진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운 좋게 병실에 그들이 있으면 얼굴을 보는 거였고, 그 외의 시간에는 중환자실 밖에 있던 인터폰으로 간호사와 통화해서 면담을 요청했는데, 늘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리라'는 거였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묻기도 전에 인터폰은 대부분 끊어졌다. 중환자실 밖에서 삼남매가 교대로 24시간을 지키는 동안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들을 여러 번 마주쳤지만, 그들은 중환자실 보호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계속 대기해야 하는지 집에 가도 되는지 궁금했지만 우리는 묻지 못했다. 밤새 병실 앞을 지키는 막내 동생이 안쓰러워 '이럴 필요까지 있겠나. 집에 들어가서 자자'고 했지만 동생은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의학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시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의료진이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이 갈 겁니다"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버티기가 좀 나았을까.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한 회사 선배가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을 권해주셔서 읽게 되었다. 촉망받는 의사였다가 폐암 판정을 받아 삶을 마감한 폴 칼라니티라는 사람이 쓴 책이었다. 책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 아이가 암에 걸렸는데, 주치의가 아이의 부모에게 설명을 하는 장면.

"내가 아는 건, 그리고 물론 당신도 잘 알겠지만, 당신의 삶이 이제 막, 아니, 이미 변했다는 겁니다.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될 거예요. 남편분도 잘 들으세요. 서로를 위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줘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꼭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침대 곁에서 밤을 새우거나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아시겠죠?"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의 큰 불행을 경험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의사에게 의탁해야 하는 일이 내 인생에서 당분간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피치 못하게 다시 그런 일을 당해야 한다면 이번에는 이런 의사를 한 번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 본다. 하나님,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지 않나요...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장수연 #의사 #병원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