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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찰관이 18년 만에 '강간 살인 피의자'를 잡을 수 있었던 사연

18년 전인 1998년 10월2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 집에 살던 주부(당시 34살)가 넥타이로 두 팔이 묶인 채 목이 졸려 살해됐다. 살해되기 전에 성폭행까지 당했다. 피해자의 몸에서 확보한 디엔에이(DNA)로 가려진 범인의 혈액형은 에이비(AB)형이었다. 사망 추정 시간 1시간쯤 뒤 서울 을지로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151만원이 인출됐다. 폐회로티브이(CCTV)에는 범인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경찰은 2년 동안 수사본부를 운영하고, 지상파 공개 수배 프로그램도 사건을 소개했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수사본부에 ‘막내’로 투입됐던 김응희 경위(당시 경장)는 지난 6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온 뒤 묵은 사건을 다시 끄집어냈다. 디엔에이와 혈액형, 사진이 있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던 터였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2010년 제정돼, 15년이었던 강간살인의 공소시효를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10년 더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범죄자 디엔에이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범죄를 입증할 유력한 방법이 늘어났다.

사건 당시 범인은 20대로 추정됐다. 1965~1975년생 가운데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 8000여명을 간추리고, 다시 에이비 혈액형만 분류했다. 125명이 남았다. 이들의 얼굴 사진을 현금인출기 폐회로티브이에 찍힌 사진과 하나하나 대조했다. 그 안에 동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그의 뒤를 쫓아 그가 버린 물품을 수거한 다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디엔에이 분석을 요청했다. 사건 당시 확보한 디엔에이와 일치했다. 경찰은 잠복 끝에 지난 18일 피의자를 경기도 양주에서 붙잡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 사건의 피의자 오아무개(44)씨를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오씨는 생활정보지에 실린 전셋집 정보를 보고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김 경위는 “당시 피해자의 자녀가 초등학생이어서 더욱 사건을 잊지 못하고 지내다가 늦게나마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게 됐다”며 “이번에 범인을 잡고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했는데,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고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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