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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에 '내가 집회에 가는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고,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 김현유
  • 입력 2016.11.21 07:17
  • 수정 2016.11.21 07:26

'박근혜 게이트'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에도 광화문 광장에는 약 74만 명의 사람들이 집결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집회의 규모를 따지면 훨씬 더 많은 인원이 같은 마음을 안고 모였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가에는 시국 선언과 집회 참여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고 있다. 그러나 지난 주, 숙명여자대학교에는 조금 다른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 숙명여대에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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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자보는 촛불시위 전반에 깔린 '여성 혐오' 문화와 평화시위라는 이면 아래 여성들이 여전히 성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100만의 숫자에 달하는 사람들 속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과 '시위녀'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서 외모 품평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언급했다.

이 대자보의 옆에는 민중총궐기 전날 열린 전야제에서 "이번 전야제의 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또 국민도, 민중도 아닌 꽃이 되었다. 인간으로 대해지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었다.

숙명여자대학교.

18일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의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인 '숙명여대 대나무숲'에는 이 대자보 내용에 반박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내가 집회에 가는 이유

나는 잘 알겠다.

최순실 게이트 등 현 정권의 뿌리 깊은 부패가 드러나며, 대한민국은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기업, 정치인, 유명인사 등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관련된 문제다. 지금 나는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려있는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데 너는 모르겠다고 하는구나.

나는 집회에 참가한 시민 중 한명이다. 내가 본 집회현장을 말해주고 싶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너의 ‘카더라 통신’과 많은 차이가 있다. 남자들이 변기에 최순실 사진을 붙이고 거기에 오줌을 싸고, 성희롱 포스트잇과 여혐 발언 등이 만개했다고 한다. 그렇다. 나도 집회에 참가하며 성희롱 문구와 발언을 봤다. 나는 불편했지만 “박근혜를 욕하는 거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웃어버렸다. 이게 여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내 자신을 반성한다. 하지만 불편함 뒤에 많은 진실이 놓여있다. 내가 본 집회의 대다수는 “박근혜 퇴진하라”, “새누리당 해체하라”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포스트잇이 함께했다. 또한 자유발언 대다수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과 관련된 것으로 가득했다. ‘여자’라서 듣는 욕이 아닌 ‘대통령’이기에 듣는 욕으로 가득했단 말이다.

너는 집회 현장에서 소주병 불고 술 먹는 사람들은 전부 남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내가 본 집회에서 술 먹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남자였다. 대부분 중년층과 노년층의 남자였다. 집회현장에 술을 먹는 것은 불법은 아니지만 집회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너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본적 있는가? 나는 봤다. 일상에 찌든, 노동에 찌든 구릿빛 얼굴을 봤다. 추운 날씨, 얼굴에 홍조를 띄고 술을 들이켰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답답한 마음을 한 잔의 술로 풀고 있구나.”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다. 그 남자들에게는 술이 자신들의 표출방식이 될 수 있다.

너의 ‘카더라 통신’의 한계는 청소문구에서도 드러난다. 너는 청소하는 시민이 여자가 많다고 한다. 굳이 반박할 이유가 없다. 너는 직접 집회에 참여해 여자가 많은지, 남자가 많은지 꼭 비교해보길 바란다.

너의 글을 보면 너는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100만이라는 숫자가 어떤 숫자인지, 너는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아침 출근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전부일 것이다. 나는 100만이라는 숫자를 내 몸으로 느꼈다. 손톱만한 공간도 없이 사람들이 붙어있다. 그렇다. 의도치 않은 성추행이 일어날 수 있다. 여성들이 위험한 공간일 수 있다. 그러나 ‘부지기수’라는 단어를 표현해 집회에 참가한 남자들을 모두 성추행범으로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는 집회에 참여한 여자들에 대한 얼굴 품평을 하는 남자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집회에 나온 여자들의 번호를 묻는 남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 집회에 참여한 나도 봤다. 여자들에 대한 얼굴 품평과 일명 ‘헌팅’을 하는 남자들도 존재한다. 그런 ‘미친놈’들도 존재한단 말이다. 일말의 가치가 없는 남자들이다. 반성해야한다. 그런 ‘미친놈’들을 만나면 시원하게 욕 한번 해주고 오길 바란다. 집회에 의미를 퇴색시키는 ‘미친놈’들을 만나면 나 또한 참지 않을 것이다. 너의 보편화로 모든 남자를 ‘미친놈’들로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두 주먹 꽉 쥐고 집회에 나온 여자들을 꽃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나는 꽃의 의미를 단지 ‘아름다움’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 과거 집회는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폭력집회에 있어 필요한 것은 남자들의 ‘힘’이다. 여자들의 ‘아름다움’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 평화시위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너의 생각보다 더 크다. 평화시위라는 이면 아래 남녀 구분 없이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같이 싸우고 있다. 내가 본 집회 현장은 그랬다. 꽃의 의미는 ‘아름다움’이 아닌 ‘감동’으로 보였다. 남자들의 ‘힘’이 중시되는 집회가 아닌 모두가 꽃인 ‘감동’이 있는 집회였다.

11월 19일 광화문 일대에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또 다시 많은 여성단체와 여성들이 집회에 참여할 것이다. 집회는 단순히 ‘박근혜 퇴진’에 있지 않다. 집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섞여있다. 여성인권신장도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은 비정규직 확대로 인한 여성노동자 부담 증가, 무상보육정책의 문제 등 여성인권의 하락을 초래했다. 박근혜 퇴진집회를 계기로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같이 할 수 있다. 모든 남자들은 여자를 도구로 이용한다는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평등한 위치에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 모두는 꽃이다. 나는 모든 꽃을 보기 위해 다시 집회에 갈 것이다. 이게 내가 집회에 가는 이유이다.

아래는 이 게시물에 숙명여대 학생들이 남긴 댓글의 일부이다.

한편 지난 18일 여성신문은 시위현장에서 드러난 '여성 혐오'와 성추행 피해 사례들에 대해 전한 바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남성들의 성추행 범죄가 자랑처럼 올라오기도 한다. “광화문으로 오지 말라. 미어터진다. 하지만 슴만튀(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는 성추행 행위를 일컫는 은어) 5번 했다”고 올리는 식이다.

일련의 성추행 사건들로 여성에게 11.12 백만 촛불집회는 평화시위가 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SNS에서는 집회 성추행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 여성신문(2016.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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