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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몰랑'과 〈위대한 개츠비〉

내가 생각하는 대의민주주의의 딜레마 중 하나. 시민의 평균적인 양식과 지적 수준, 판단력에 훨씬 못 미치는 유아론자들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또 다른 '아몰랑'이 출현할 것이다. 주권자인 시민들은 그들이 남기고 도망간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통받을 것이다. 평균적인 수준의 시민적 양식과 지적 수준, 판단력을 뛰어넘는 탁월한 지도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사치스러운 욕심이다.

  • 오길영
  • 입력 2016.11.21 06:50
  • 수정 2017.11.22 14:12
ⓒ연합뉴스

'아몰랑'을 조금 유식하게 표현하면 유아론(Solipsism , 唯我論)이다. 세상에는 자기밖에 없다는 시각, 세상 만사를 자기의 주관적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시각. 자기 외부의 세계와 사람들과 관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 대개 힘가진 자(돈과 권력)들 중에 유아론자가 많다. 힘이 있으면 세상이 자기 뜻대로 돌아간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보여주듯이, 그런 착각은 언젠가는 무참히 깨진다. 작가 카프카의 말대로, 아무리 힘센 권력자나 재산가일지라도, '나'보다 세계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세계와 나의 싸움에서 언제나 세계의 편에 서라."(카프카) 이런 태도가 내가 이해하는, 유아론과는 대조되는 유물론적 태도다.

미국 자본주의가 확립되기 시작한 1920년대(1925년)에 출판된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톰 뷰캐넌과 그의 아내 데이지는 '아몰랑' 캐릭터의 좋은 예이다.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모든 '비극'이 끝난 뒤 작품의 결말부분에서, 우연히 다시 톰과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이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 그는 자기가 한 일이 완벽하게 정당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는 대로였다. 톰과 데이지, 그들은 무책임한 인간들이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숴버리고 난 뒤 돈이나 엄청난 무관심 또는 자기들을 묶어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 뒤로 물러나서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치우도록 하는 족속이었다· ------ 나는 그와 악수를 했다. 악수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다. 갑자기 어린아이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진주 목걸이를-아니면 커프스 단추 한 쌍을-사기 위해 보석상 안으로 들어갔고, 나의 시골뜨기다운 까다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 민음사 판, 252-253면, "경솔한 인간들"이란 번역은 "무책임한 인간들"(careless people)로 수정

 

유아론자들은 "엄청난 무관심"으로 무장하고, 자기들이 만든 세상의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치우도록 하는 족속"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처럼. 그들은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마디로 "어린아이"(유아幼兒)와 같다. 세상 모든 일에, 심지어는 자기가 관련된 것이 분명한 일에도 유체이탈화법으로 '아몰랑'하는 유아를 이성적으로, 논리를 통해 설득할 수는 없다. 유아는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의민주주의의 딜레마 중 하나. 시민의 평균적인 양식과 지적 수준, 판단력에 훨씬 못 미치는 유아론자들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또 다른 '아몰랑'이 출현할 것이다. 주권자인 시민들은 그들이 남기고 도망간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통받을 것이다. 평균적인 수준의 시민적 양식과 지적 수준, 판단력을 뛰어넘는 탁월한 지도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사치스러운 욕심이다.

 

시민의 평균적 수준은 최소한 갖춘 지도자를 어떻게 알아보고 선출할 것인가. 그런 지도자를 어떻게 주권자가 통제할 것인가. 다시 문제는 시민사회의 성숙도이다. 정치권력을 제어, 감독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이다. 아몰랑 하나를 끌어내리는 문제만이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들의 전부가 아니란 뜻이다. 또 다른 아몰랑의 출현을 방지할 제도와 방책을 고민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다른 민주주의를 상상할 때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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