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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택 대신 정영두

당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좀 더 저속해지더라도 장사가 잘되는 광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 지금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나를 개조하기 위한 과제들을 만들어 나 자신을 더 무장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질투심만큼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건 없다. 그건 그 대상이 '일'이 됐건 '돈'이 됐건 혹은 '사랑'이 됐건 '탐욕'이 됐건. 그렇지 않은가? 더 많은 일과 명예, 영향력을 좇던 남자는 자기 자신의 바람대로 끝없이 '저속'해졌다. 이런저런 저속한 욕망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다 소화기관이 시한폭탄처럼 터진 괴물. 추악하다 못해 이제는 돌연 불쌍해 보이는 괴물.

  • 김경
  • 입력 2016.11.20 07:03
  • 수정 2017.11.21 14:12

2002년이었고 12월이었다. 때는 차은택이 진실로 잘나가던 때였다. 감각적인 영상 세대의 리더로서 웬만한 록스타보다 추종자가 많았고 12월의 대선후보만큼이나 바빠서 짬 날 때마다 아무 데나 기대어 쪽잠을 자야 할 판이었다. 회의하기 전 30분, 촬영하기 전 30분, 차 안에서 20분.... 그렇게 잠깐씩만 자는 일중독자였다 그는. 그 때문에 첫 번째 인터뷰 스케줄을 펑크 내고 두 번째 만나러 갔는데 그때도 그는 1인용 소파에서 곰인형을 끌어안고 웅크려 자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었다.

"왜 그러고 사세요?" 그때 나의 첫 번째 질문이 그랬다. "좋으니까요. 이건 좋아서 미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일이죠. 전 일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난 그가 좀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이었지만 광고에 대해서는 '끝없는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도 저기 가 있구나!" 그렇게 잠이 부족한 와중에도 간혹 밤잠을 설칠 만큼 질투한다는 박명천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좀 더 저속해지더라도 장사가 잘되는 광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 지금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나를 개조하기 위한 과제들을 만들어 나 자신을 더 무장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질투심만큼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건 없다. 그건 그 대상이 '일'이 됐건 '돈'이 됐건 혹은 '사랑'이 됐건 '탐욕'이 됐건. 그렇지 않은가? 더 많은 일과 명예, 영향력을 좇던 남자는 자기 자신의 바람대로 끝없이 '저속'해졌다. 이런저런 저속한 욕망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다 소화기관이 시한폭탄처럼 터진 괴물. 추악하다 못해 이제는 돌연 불쌍해 보이는 괴물.

다른 한편, 아니 정확히 차은택의 반대편에 정영두라는 무용가가 있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런던 주영 한국문화원 앞에서 "George Orwell's 1984 is not fiction. It's the reality in Park Geun-Hye's South Korea. Not Censorship!(조지 오웰의 '1984'는 소설이 아닙니다. 2016년 박근혜의 한국에서는 현실입니다. 검열 반대!)"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던 현대무용 안무가 정영두.

한마디로 그는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며 고위 공무원에 속하는 이런저런 문화계 부역자들과 함께 예술가를 검열하고 탄압하며 최순실과 함께 돈을 긁어모으는 사이 소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혔던 예술가다. 하지만 그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진취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는 무용가.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소한 발언이나 행동까지도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소설 '1984'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면서 "예술가들의 입과 눈을 통제하는 것은 곧 사회 전체를 통제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열이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저항하려 한다"면서 자신의 활동이 '예술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정영두의 무용 작품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놀랍게도 난 울고 있었다. 춤 공연을 보며 감동에 젖어 울기는 피나 바우슈 이후 처음이었다.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삶의 주름들이 담긴 순수하고 진실된 몸의 언어를 어렵사리 읽으며, 그걸 읽을 수 있고 그것에 감동받을 수 있는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던 기억이 난다. '삶이 때때로 우리를 비속하게 만들어도 우리 자신의 몸과 영혼은 결코 저속할 수 없다'고 정영두의 춤은 말해주는 것 같았고, 난 그 무언의 진실된 춤에 울고 말았다.

솔직히 차은택이 연출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이나 폐막식을 안 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 자신도 고백하는바 그는 매우 장식적인 인간이다. 여백의 미를 모르고 감동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대신 온갖 잡다한 기호와 상징, 문화 코드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한 편의 화려한 뮤직비디오 같은 올림픽 개막식 혹은 폐막식을 만들었을 인간이다. 생각만 해도 싫다. 그걸 보는 동안 평창군민으로서 창피했을 것 같다.

대놓고 바란다. 대신 정영두가 예술감독으로서 연출한 평창올림픽 개막식 혹은 폐막식이 보고 싶다고. 정영두는 2004년 일본 요코하마 댄스컬렉션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상을 탔고 당대 최고의 댄스 마스터 수잔 버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안무가이다. 무엇보다 평창올림픽은 두 괴물 때문에도 돈이 없지 않은가? 그게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데 정영두는 그런 평창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가난한 무용'으로 감동 주기가 그의 주특기이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다. 올림픽 역사상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짜 예술로 전 세계인을 울릴 수 있다. 정영두라면 그럴 수 있다. 꿈이 아니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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