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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신하' 정호성의 눈물

정호성은 1998년에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 겨우 서른 살 즈음이다. 그는 그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옆을 돌아보지 않고 박근혜의 곁을 지켰다. 박근혜를 추종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관심과 영광과 위대함을 무너뜨리는 가장 거대한 구멍이 되어버린 정호성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정호성은 검찰 조사 중 여러차례 눈물을 쏟았다. 압수당한 자신의 휴대폰에서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올 것을 걱정해서 울었다고 했다. 그 눈물은 적어도 그에게는 악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 김도훈
  • 입력 2016.11.16 10:03
  • 수정 2017.11.17 14:12

신하들이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2차 대국민 사과를 하는 동안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사과가 끝나자 그는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솔직히 감성적으로야 속으로 펑펑 울었죠"라고도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 누구도 그 사과문에서 진정성을 느낀 얼굴은 딱히 아니었다. 한국은 정치권이고 문화계고 간에 그놈의 알 수 없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참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사과문에서 진정성이라는 걸 느끼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정현은 진정성을 진정으로 느낀 얼굴이었다.

이정현이 박근혜 사과문의 진정성에 감복하며 나라 잃은 신하처럼 눈시울을 붉히는 동안, 청와대의 주요 인물들은 하나씩 포승줄에 묶여 검찰로 이송됐다. 최순실에게 청와대 문서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호성 전 비서관은 구속됐다.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박근혜의 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한 3개의 문고리가 모두 빠졌다.

이 문고리들은 대체 누구인가. 당신은 아무리 구글로 검색을 해도 그들이 박근혜의 문고리가 되기 전까지는 무엇을 하고 살았던 사람들인지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안봉근은 박근혜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곁을 지킨 비서관이었다. 그 외에는 한 것이 없다. 이재만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옆에 등장하는 사진이 유독 많은 것으로 보아 가장 총애를 받았던 게 틀림없는 정호성도 마찬가지다. 1998년 박근혜 국회의원 당선시부터 보좌관으로 일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2014년 한 국제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앞을 지나가는 정호성 비서관.

그들이 박근혜의 곁을 지키며 엄청난 부를 챙긴 것도 아니다. 2015년 '정기 재산변동 사항 공개'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장 많은 정호성이 11억 정도다. 이재만은 9억, 안봉근은 7억 정도다. 문고리 3인방으로 일하면서 최순실과 여타 여러 인물들의 부를 축적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뭐 엄청난 재산은 아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떡고물이 떨어졌겠지만 그게 딱히 지폐의 형태를 띄지 않았던 것도 같다.

어떤 대통령에게나 문고리는 존재했다. 이명박의 김희중 비서관, 노무현의 양길승 비서관은 모두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그들 역시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처럼 각 대통령을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하던 수족 같은 인물들이었다. 특히 김희중과 정호성은 비슷한 데가 있다. 1997년부터 오로지 이명박만 섬겼던 김희중은 1968년생이다. 정호성은 1969년생이다. 둘 다 젊은 나이에 대통령의 간택을 받았고, '영원한 비서관'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정호성은 1998년에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 겨우 서른 살 즈음이다. 그는 그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옆을 돌아보지 않고 박근혜의 곁을 지켰다.

얼마전 나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을 읽었다. 나치 독일의 군수부 장관이자 건축가였던 슈페어는 20대 젊은 시절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 인물이다. 그는 모더니즘 건축을 사랑하는 중산층 자제였고, 나치당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리버럴한 대학교 건축과 조교였다. 히틀러를 만나기 전에는 <나의 투쟁>을 읽어본 적도 없었다. 슈페어는 나치에 반한 것이 아니었다. 히틀러에 반한 것이었다. 그는 조교 시절 히틀러의 연설을 들은 경험을 이렇게 기술한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연설보다 훨씬 심오했다. 나는 그의 열정에 빨려들어갔다." 인간은 이성으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지성이나 사상과는 전혀 관계없이 어떤 '카리스마'나 '분위기' 때문에 누군가를 무작정 존경하고 따르기도 한다. 인간은 참으로 불완전하고 불합리한 존재다.

서른 살의 정외과 대학원생 정호성은 굳이 정치를 하고 싶었던 인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박근혜라는 인물의 어떤 면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그를 보좌하는 것이 자신의 도리라고 여겼을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내치지 않는 아량에 감동했을 것이며, 대통령이 되자 박근혜라는 인물 자체가 자신의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그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존중할 수 없을 최순실 같은 인물과 박근혜의 다리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쓴 연설문에 '우주의 기운'이 덧씌워져도 하등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회고록에서 몸이 아파 휴양을 갈 때마다 히틀러로부터 멀어져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히틀러에게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을 때마다 세상을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히틀러의) 친밀함과 존중이 없이는 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추종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관심과 영광과 위대함을 내 주변으로 끌어모으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박근혜를 추종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관심과 영광과 위대함을 무너뜨리는 가장 거대한 구멍이 되어버린 정호성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채널에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정호성은 검찰 조사 중 여러차례 눈물을 쏟았다. 압수당한 자신의 휴대폰에서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올 것을 걱정해서 울었다고 했다. 그 눈물은 적어도 그에게는 악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18년의 젊음을 오롯이 박근혜에 바친 정호성은 선과 악의 구분조차 어느 순간 잊어버린 채 관료적으로 명령을 수행하는 충직한 개가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가 먼 훗날 각성하고 <정호성의 기억>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할 생각이 있다면 꼭 좀 연락주시길 부탁드린다. 나는 정말로 당신을 위한 충직한 대필 작가가 될 마음이 있다. 부제는 '나렐로 나빌레라'로 이미 정해 놓았다.

*나렐로는 최순실씨 테블릿 피시에서 나온 정호성의 아이디(ID)다.

구속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11월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버스에 타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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