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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분노가 아니라 혐오였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의 혐오범죄가 47%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선거 후 잇달아 인종혐오범죄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개별적인 혐오범죄의 증가만은 아니다. 경제침체와 양극화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이민자 등 소수자 혐오를 해도 되는 현실, 다수가 이를 지지한다는 자신감이 낳을 결과들이다. 트럼프가 제일 먼저 발표한 정책이 300만명의 이민자 추방이다. 가난한 계층에 대한 복지를 외면하고 이민자 소수자에 적대적인 정책에 의해 양극화는 더 강화되고, 인종이 계급인 사회에서 인종 분리 현실은 심화될 것이다.

  • 권인숙
  • 입력 2016.11.16 05:17
  • 수정 2017.11.17 14:12
ⓒASSOCIATED PRESS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 아침, 미국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였던 인로는 파트너와 함께 찍은 투표 인증샷을 담은 메일을 보내왔다. 그동안 선거를 위해 열심히 뛰었던 행적을 적고 30명과 파티를 하며 개표방송을 보겠다고 다소 들떠 있었지만 한편 그녀는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이가 70대 중반인 페미니스트에게 여성 대통령의 출현이 임박했다는 사실이 주는 흥분보다 광기의 사람들로부터 이 선거를 과연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이 훨씬 커 보였다.

미국 선거가 끝나고 가장 중요하게 쏟아진 클린턴 관련 초기 보도내용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당선이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클린턴이 자주 언급한 '유리천장'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 임박했다고 흥분했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을까? 2008년에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이 엄청난 기대로 다가왔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여성 대통령의 탄생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여유 있는 선거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에게는 혐오의 정치를 과연 막아 낼 수 있는가의 걱정과 두려움에 지배당했던 선거였다.

'백인 중하층 남성의 분노' 혹은 '반란'으로 규정하며 여러 선거분석가들은 경제적으로 지친 백인 남성들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보면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클린턴을 더 많이 찍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부자인 사람들이 트럼프를 찍었다. 젠더갭은 2012년과 비슷해서 12% 차로 여성들은 클린턴을 더 많이 뽑았다. 백인 여성은 2012년과 거의 같은 비율로 트럼프(53%)를 찍었지만 백인 남성과 비교해서 10% 정도 더 클린턴을 찍었다.

확실히 백인 남성이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더 많이 찍었다. 그러나 백인 남성이 클린턴만이 기득권 세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트럼프는 미국의 유명한 부동산 재벌이고, 늘 부자였던 사람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건 이후 많은 중하층의 파산을 몰고 왔던 주택모기지 사건을 생각하면 부동산 재벌에 대해 적대감을 느낄 만도 했다.

오히려 인로 교수부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듯이 이번 선거의 중요한 자극제는 혐오였다. 2016년에는 백인 경찰이 흑인을 부적절하게 사살하고, 이에 맞서는 흑인들의 보복대응이 이어졌다. 이슬람 테러세력이 주도한 세계적인 테러사건과 난민 이슈가 미국 사회와 세계를 지배했다. 작년에는 동성결혼이 연방 차원에서 합법화되는 등 문화혁명적 사건이 있었다. 8년간의 흑인 대통령 이후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려 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다분히 계획적으로) 여성혐오, 이민자 혐오, 소수자 혐오, 이슬람 혐오, 멕시칸 혐오를 가장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형태로 불러일으켰다. 여성, 인종적 혐오에 가장 크게 반응할 만한 인구층이 저학력 백인 중하층 남성이었다.

이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선거예측의 실패이다. 이제까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던 미국 대선 여론조사가 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가장 타당한 추측은 많은 트럼프 투표자들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기존 엘리트나 자산가층에 대한 분노, 세계 경찰을 자처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못 챙긴다는 판단이 더 중요했다면 자신이 찍을 후보를 왜 자신 있게 드러내지 못했을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캐나다 이민 사이트가 불통이 될 정도로 접속자 수가 많았던 것도 이번 선거가 혐오를 기준점으로 삼았던 선거임을 보여준다. 혐오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며 성폭행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대통령 당선자만큼이나 그를 뽑은 다수의 혐오옹호자가 미국 사회 속에 있다는 사실에 절망과 불안을 느낀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의 혐오범죄가 47%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선거 후 잇달아 인종혐오범죄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개별적인 혐오범죄의 증가만은 아니다. 경제침체와 양극화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이민자 등 소수자 혐오를 해도 되는 현실, 다수가 이를 지지한다는 자신감이 낳을 결과들이다. 트럼프가 제일 먼저 발표한 정책이 300만명의 이민자 추방이다. 가난한 계층에 대한 복지를 외면하고 이민자 소수자에 적대적인 정책에 의해 양극화는 더 강화되고, 인종이 계급인 사회에서 인종 분리 현실은 심화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노골적인 이슬람 혐오와 반이슬람 행동이 세계적인 테러와 전쟁을 어떻게 자극할지 두렵기만 한 상황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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