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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정도(正道)다

'입헌주의'로도 불리는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는 헌법에 입각한 정치를 요구한다. 헌정주의의 진가(眞價)는 정치가 헌법을 위반한 현실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헌법에 입각할 때 비로소 발휘된다. 작금의 최순실 게이트는 헌법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대통령이 스스로 권한을 포기한 채 헌법적 권한을 갖지 않은 사인(민간인)에게 그 권한을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헌정주의 질서를 뒤집었다는 데 본질이 있다. 전복된 헌정주의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헌정주의를 끝까지 견지하려면 뒤집힌 헌정주의의 회복에서도 헌법에 입각한 방식만이 허용된다.

  • 이준일
  • 입력 2016.11.15 12:11
  • 수정 2017.11.16 14:12

'입헌주의'로도 불리는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는 헌법에 입각한 정치를 요구한다. 헌정주의의 진가(眞價)는 정치가 헌법을 위반한 현실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헌법에 입각할 때 비로소 발휘된다. 작금의 최순실 게이트는 헌법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대통령이 스스로 권한을 포기한 채 헌법적 권한을 갖지 않은 사인(민간인)에게 그 권한을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헌정주의 질서를 뒤집었다는 데 본질이 있다. 전복된 헌정주의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헌정주의를 끝까지 견지하려면 뒤집힌 헌정주의의 회복에서도 헌법에 입각한 방식만이 허용된다.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것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명제로 요약될 수 있고, 한마디로 '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원리로 표현될 수 있다. 대부분의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대통령/국회의원)를 통해 구현된다.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가진 국가에서는 헌법이 부여한 '내각불신임권'과 '의회해산권'을 통해 사실상 대표의 임기는 보장되지 않는다. 반면에 대한민국처럼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가진 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대표의 임기가 헌법에 따라 확고하게 보장된다. 물론 대통령제 정부 하에서도 국민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특히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통해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대표에게 임기 중에도 사퇴(하야)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 주말 서울 한복판에 모여 백만 송이의 촛불을 든 인파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였는데 이러한 요구는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전적으로 정당하다.

헌법에 따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할 수 있는 퇴진은 '자진사퇴'이므로 대통령의 퇴진을 헌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헌법은 대통령을 강제로 퇴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탄핵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는 법위반이 확인되면 파면시킬 수 있는 것이다(헌법 제65조 제1항). 다만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는 정족수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기 때문에 야당이 과반을 조금 넘는 현재의 의석구조에서 여당의 참여 없이는 탄핵소추 의결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을 둘러싸고 여당에서도 탄핵의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탄핵소추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한편 탄핵소추가 의결된다고 해도 탄핵심판의 최종적 권한은 헌법재판소가 가지고 있는데 현재의 재판관 구성 상 탄핵결정이 나오기 어렵다는 비관적 견해가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명백하고 중대한 법위반에 대해서 눈 감는다면 국민의 냉혹한 비판을 피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는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근본적 의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앞으로 논의될 수 있는 개헌논의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존치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탄핵이라는 헌법적 절차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국회는 이미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기 위한 별도의 특별검사법을 발의했기 때문에 길게는 넉 달 정도의 수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검찰 수사도 어쨌든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이고, 특별검사팀도 국민의 여망을 고려하여 수사에 속도를 낼 것이기 때문에 특별검사의 수사 기간은 상당히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도 특별검사의 수사와 동시에 진행하면 180일이라는 권고규정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탄핵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길어도 석 달 이내로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진상규명과 탄핵재판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진행한 뒤 헌법에 규정된 대로 대통령이 궐위된 상태에서 60일 이내에 선거를 실시하면 빠르면 6개월 이내에 정부의 구성이 완성될 수 있다.

대통령의 지도력 상실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궐위'나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헌법 제71조). 설령 궐위나 사고에 해당한다고 무리해서 해석하더라도 대통령제를 채택한 현행 헌법에서 국무총리나 내각은 대통령의 '보좌기관'에 지나지 않는다(헌법 제86조 제2항 및 제87조 제2항). 또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국무총리가 부의장이 되는 국무회의는 '심의기관'에 불과하므로(헌법 제88조 제1항) 그 결정이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지도 않는다. 책임총리나 중립내각이 위헌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헌법적 정도(正道)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이 외치만 맡거나 형식적으로만 대통령직을 유지한 채 모든 권한을 총리나 내각 혹은 의회에 이양하는 이른바 '2선후퇴'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로 헌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헌법적 용어가 아니다. 헌정질서를 왜곡한 대통령으로 인해 발생한 지금의 난국이 헌정질서가 예정하고 있는 탄핵제도를 통해서 극복되어야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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