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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써보고 싶은 사람이 알아두면 좋은 3가지

에세이는 쓰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평범함 일상 속에서 톡톡 튀는 생각을 뽑아내는 것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좋은 에세이를 만나면 사람들은 반가워한다. 독자들도 평소에 느꼈던 것을 작가들이 꽤나 맛깔 나게 써주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지난 10월 19일부터 25일까지 교보문고 판매를 집계한 결과, 10위 내에 ‘나에게 고맙다’(전승환 저), ‘그럴 때 있으시죠?’(김제동 저), ‘블로노트’(타블로 저),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백영옥 저),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저) 등 무려 5개의 에세이가 포진해 있다. 이처럼 대중들의 에세이에 대한 사랑은 꾸준하다. ‘사라바’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 니시 가나코의 에세이를 통해 일상 생활을 재미나고 신선하게 묘사한 에세이만의 매력을 만나보자.

1. 분노와 웃음은 풍덩 빠지기 쉽다.

대부분 예전보다 글을 쓸 일이 많아졌다. 이메일도 글이고, 문자도 글이다. 인터넷 상 SNS에도 사진 못지 않게 글의 위력은 대단하다. 자연스럽게 널리 퍼지는 글에 관심들이 많다. 자신의 글이 그렇게 퍼져나가길 바라기도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분노, 웃음, 감동 등의 요소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인간의 감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분노’와 ‘웃음’은 특히 기폭이 심해서 ‘그 감정에 풍덩 빠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번 그 감정을 자극하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점 감정의 구덩이에 빠져들게 되지요. 고교 시절,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와 친구들은 너무 웃다가 복도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곤 했습니다. …. 그건 무엇이었을까요?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 나이라고 하던데, 그래서였을까요? 지금은 절대로 구르는 정도로는 웃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빠지는 경우만은 그대로입니다. ‘분노’는 나이에 관계없이 지속성이 있습니다. 한번 화가 나면 화가 난 원인을 알 수 없게 되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 화가 나서 ‘어쨌든 넌 전체적으로 문제야!”라고 막연히 화를 내고, 그러면 전체적으로 문제인 그 사람의 하나하나에 화가 또 나서 다시 화를 내는 …. 분노의 뫼비우스가 일어납니다.” (책 ‘이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니시 가나코 저)

2. 개와 고양이 모두 매력적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각각 이유가 있다. 개는 친근하고 고양이는 도도해서 좋다고들 이야기한다. 그것을 누구는 밋밋하게 설명하고, 누구는 맛깔 나게 설명한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맛깔 난 설명을 들어보자.

“저는 개도 고양이도 좋아합니다. “쓰다듬어 줄 거야? 엉, 쓰다듬어 줄 거야?”하는 개의 기대에 부푼 표정을 좋아합니다. 공을 들고 있으면 “던질 거야? 엉, 던질 거야?” 자리에서 일어서면 “산책 갈 거야? 엉, 산책 갈 거야?” 그 어디까지나 초롱초롱하고 해맑은 검은 눈망울을 좋아합니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흔드는 꼬리와, 바닥을 치는 향기로운 발바닥과, 뒷다리를 들어 올렸을 때의 난처한 표정을 좋아합니다. …. 고양이의 ‘무’표정을 좋아합니다. ‘놀란 표정’도 ‘멍한 표정’도 아니고 ‘무’표정.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무념무상의 표정’이요. 확실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앞발을 가슴팍에 밀어 넣고 엉덩이 부근을 둥그렇게 부풀린 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무’한 표정을 좋아합니다. 일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앞에서 고양이가 ‘무’표정을 짓고 있으면, 일이고 뭐고 할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립니다.”(책 ‘이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니시 가나코 저)

3. 글자는 압도하는 힘이 있다.

말과 달리 글은 강력한 힘이 있다. 말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글은 폭발력이 강하다. 명연설보다 명문장이 많은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적어둘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글의 힘이 항상 상대방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다. 그렇게 글, 그리고 글자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길을 걷다가 도로에 적힌 ‘멈추시오’라는 글자에 압도되어 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차더러 서라고 차도에 쓰인 ‘멈추시오’인데, 저는 그 크고 하얗고 납작하고 단도직입적인 ‘멈추시오’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아,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멈추시오’ …. 입원했을 때, 침대 발치에 쓰여 있던 ‘니시 가나코 님’이라는 글자가 입원한 사실보다 주사 맞은 팔보다 더 저를 ‘니시 가나코’라고 알려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거기에 누워 있는 제 몸과 고통과 감정을 뛰어넘어 ‘니시 가나코 님’이라는 글자만이 압도적으로 저를 ‘니시 가나코라는 존재’답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어느 작가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름이나 호칭은 일종의 ‘주문’과 같다고 썼다고 지난 번에 말했습니다. 사과는 ‘사과’라고 이름을 정했을 때부터 계속 ‘사과’로 있어야 하는 ‘주문’에 걸리는 거죠. 그러면 그것을 표현하는 글자는 ‘주문’을 거는 중요한 ‘수단’인 건데, 저는 이름 자체 곧 ‘주문’ 자체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글자, ‘수단’에 그야말로 힘이 있다고 느낍니다.” (책 ‘이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니시 가나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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