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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상은 어떻게 올까

이명박근혜 정권 8년을 보내며, 송곳들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해군의 비리를 고발한 송곳은 공직에서 쫓겨났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수사했던 송곳과 민청학련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송곳은 변방으로 떠밀렸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는 송곳은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고, 세월호 아이들의 굳은 몸을 두 팔로 끌어안고 나왔던 송곳은 세상을 등져야 했으며, 평생 낮은 자리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던 송곳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를 보며 소시민들은 잔뜩 움추려 살아야 했습니다.

  • 김재수
  • 입력 2016.11.23 06:21
  • 수정 2017.11.24 14:12
ⓒ연합뉴스

얼마씩의 돈을 나누어 주고, 공공성이 있는 프로젝트에 기부하라고 요청하는 실험을 공공재 실험이라고 합니다. 기부를 하지 않고 무임승차를 선택하는 배반자들이 가장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간혹 우직하게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반복하면 다들 무임승차를 선택하고 공공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런데 기부를 결정한 후에 서로를 처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사람들의 행동이 크게 달라집니다. 배반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이 때, 다른 이들이 배반자를 처벌해 주면 가장 좋기 때문에, 처벌하는데 있어서도 무임승차하려는 인센티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배반자를 처벌하는데 있어서는 너나 없이 힘을 모읍니다. 이렇게 처벌이 이루어진 후부터는 다들 공공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기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자는 외침을 들으면, 제 본능적 감성은 냄비처럼 빨리 뜨거워지지만, 제 훈련된 이성은 냉소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더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포기할 만큼 이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임승차는 유혹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입니다.

가끔씩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있을 뿐입니다. 한줌의 송곳들이 절벽의 공포를 뚫고 내딛었기에,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세상은 송곳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송곳들에게 박수를 치고 존경을 표현하며, 소시민들은 대충 대충 무임승차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권 8년을 보내며, 송곳들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해군의 비리를 고발한 송곳은 공직에서 쫓겨났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수사했던 송곳과 민청학련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송곳은 변방으로 떠밀렸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는 송곳은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고, 세월호 아이들의 굳은 몸을 두 팔로 끌어안고 나왔던 송곳은 세상을 등져야 했으며, 평생 낮은 자리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던 송곳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를 보며 소시민들은 잔뜩 움추려 살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뱃살만 살찌우며 살아온 배반자들이 총리, 장관, 청와대 수석이 되어 박근혜/최순실과 함께 세상을 호령했습니다. 참 나쁜 세상이었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분노하고 배반자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이기적 인간인 우리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말하면 무임승차를 선택하지만, 복수하고 분노하는 인간인 우리는 나쁜 세상을 만든 배반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연대합니다. 이기적이고 소시민적인 자아를 이기는 유일한 힘은 분노하는 시민 의식 아닙니까. 분노하는 시민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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