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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와 시위 참여로 검찰이 1년 6월을 구형한 홍승희 씨의 재판 결과

  • 박세회
  • 입력 2016.11.11 10:41
  • 수정 2016.11.11 11:27

재물손괴죄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활동가 홍승희 씨에게 법원이 5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지난 21일 검찰은 홍승희 씨에게 2014년 종각역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을 때 낚싯대에 노란 천을 단 걸 들고 도로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일반교통방해죄를,

2015년 11월 국정교과서에 박정희 대통령 얼굴이 그려져 있는 풍자 그림과 시민이 경찰의 눈에 들어간 최루액을 닦아주는 사진을 보고 만든 스텐실 작업과 '민중 총궐기를 앞두고 순방을 가시는 박근혜 대통령께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는 그림'을 홍대입구역 5번 출구 공사장 임시 벽에 작업한 이유로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세 건을 묶어서 1년 6월을 구형한 바 있다.

홍승희 씨는 오늘 '재물손괴죄 그래피티 건은 무죄가 나왔다'며 '일반교통방해는 3,000명과 도로를 점거한 공모라고 인정되어 5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되다'고 밝혔다.

한편 홍승희 씨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 '3일 동안 1만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탄원을 함께해주었다'며 자신의 최후변론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래는 홍승희 씨의 최후변론 전문이다.

3일 동안 1만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탄원을 함께해주었습니다. 1년 6개월 구형 소식을 공유하고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성폭행 가해자의 처벌을 바라고 법정에 섰지만 몇 년째 구형을 내리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승희 씨에게 구형을 내리는 건 너무 쉽네요. 이럼에도 돌아가는 세상이 우습네요.”

제가 이 자리에 선 순간에도 수많은 여성은 위험을 감수하고 증언을 하고 있고, 진짜 폭력은 입막음 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저의 죄명은 폭력행위등재물손괴죄입니다. 법은 정작 보호하고 대변해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는 담지 못합니다. 법은 왜 선별적으로 작동되는 걸까요. 이 자리에 서야 할 사람들은 평범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5개월 전 낙태수술을 했고 이미 제 몸은 불법입니다.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선택한 모든 행위는 죄가 되었습니다. 숨쉬기 위해 표현하는 것도 죄가 되고, 제가 제 몸을 통제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대체 무엇이 죄인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법의 정의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젯밤은 여러 감정이 몰려와 잠자리에 들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모순이 교차하는 이 자리. 제가 지금 이곳에 선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이곳은 제가 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두렵지 않습니다.

재작년 4월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 안에 갇혔습니다. 세상은 통째로 마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내일 있을 시험과 출근 시간에 발맞춰 움직였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이 세계는 슬퍼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고, 애도할 공간도 주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에 균열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와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낮에는 퍼포먼스를 하고, 밤에는 그래피티 작업을 했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천을 깔고, 까만 먹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피티 벽에 있는 빼곡한 그림 사이사이에 마음을 새겼습니다. 마땅한 수입도 없었지만 이런 작업이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불법이었다 해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하는 국가와 의회정치, 법 제도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법의 잣대는 기울어졌고, 비뚤어진 법을 따르지 않을 권리가 제게 있습니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왜 대통령을 비방하는 그림을 그렸는가?’ 를 물었습니다. 부패한 정권 하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 행위가 아닙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폭력은 끝나지 않습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없어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아도 폭력은 존재합니다. 동물과 자연, 여성, 나와 다른 소수자에 대한 대상화와 혐오, 사람과 사람을 위계세우는 폭력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이 와중에도 사회는 경제성장과 개발과 성공을 찬양합니다. 사람들은 미래라는 종교에 오늘을 빼앗겨버렸습니다. 한 명의 독재자에게만 분개하고, 한 명의 영웅을 칭송하는 삶의 방식. 이런 성찰 없는 오늘이 모여 괴물 같은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가담한 세계입니다.

지난 반년 동안 저는 인도에 있었습니다. 숨쉬기 위해 갔습니다. 삶과 세상을 위해 우선해야 하는 것은 “이 세계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뭘까”가 아니라, “내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세계란 오늘이라는 공간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오늘 제가 숨 쉴 공간입니다. 오늘 거짓말하지 않고 살아있고 싶을 뿐인데, 그래서 한 행위인데, 그 행위로 심판대에 서야 하는 현실이 아프고 숨이 막힙니다. 무죄가 선고되면 다음 주에 인도로 돌아가 여성과 죽음, 정직한 절망과 파국, 창조에 대해 작업하고 사람들과 의미를 공유할 예정입니다.

재판장님, 검찰의 구형대로 징역을 선고받아도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 자신에게 떳떳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되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어서 비명이라도 지르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판례를 남기게 됩니다. 일상의 폭력을 말하는 목소리를 묻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폭력 하나를 치우지는 못할망정, 폭력에 힘을 실어주는 돌부리를 놓게 된다면, 그때 저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홍승희 씨 페이스북(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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