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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와중에도

미국에서 일을 하고 커리어를 개척해 가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특히 여성으로서, 이번 결과는 참 쓰리고 아프다. 그토록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과시하고, 여성 비하 발언을 남발하고, 종교/표현의 자유를 억업하고 비민주적인 모습을 자랑스럽게 드러낸 인물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에서 민주주의 절차로 선택된 대통령이라는 게 큰 쇼크로 다가온다. 힐러리 클린턴은 패배를 인정했다. 그녀의 말에는 실망이 역력했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는 목격하고 싶지 않는 이 끔찍한 대선에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그녀에게서 배운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태도이다.

  • 이소은
  • 입력 2016.11.11 12:36
  • 수정 2017.11.12 14:12
ⓒBrian Snyder / Reuters

세상에서 희망을 찾기가 참 어려워졌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미국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으로서, 최근 들어 내 모국과 현재 거주하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지난 몇 주간, 아침 저녁으로 한국 뉴스를 재방송으로 보면서, 박근혜- 최순실 파문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답 없는 의문을 품고 출근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트럼프가 클린턴을 꺾고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모두가 반 농담처럼 여기던 일이 악몽 같은 현실이 되었다.

민주당이 우세인 뉴욕주, 특히 뉴욕시의 이른 아침 지하철에서 마주하게 된 시민들의 얼굴에는 새벽에 일어난 일을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주로 시끌벅적한 지하철 안은 불편하게 고요했고, 회사에서 만난 많은 동료들은 밤새 잠을 설친 흔적이 보였다.

미국에서 일을 하고 커리어를 개척해 가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특히 여성으로서, 이번 결과는 참 쓰리고 아프다.

전세계가 의아해하는 결과임은 분명한데,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미국에서 일을 하고 커리어를 개척해 가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특히 여성으로서, 이번 결과는 참 쓰리고 아프다. 그토록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과시하고, 여성 비하 발언을 남발하고, 종교/표현의 자유를 억업하고 비민주적인 모습을 자랑스럽게 드러낸 인물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에서 민주주의 절차로 선택된 대통령이라는 게 큰 쇼크로 다가온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상처 입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지난 8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의 지도하에 안착된 여러 성과에 침 뱉는 결과가 될 것이 뻔해서 견디기 힘들다.

백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세금을 20년 동안 한 푼도 내지 않았고, 인격과 자질을 갖추지 않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준비된 여성 리더 힐러리 클린턴을 무너뜨렸다는 것이 너무 실망스럽다. 백인 남성 우월주의로 뒷걸음질 치는 이 결과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은 물론, 특히 지금 세계가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다양성과 자유의 이념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미래를 살아가야 할 젊은 사람으로서, 지금 우리 나라,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힐러리 클린턴은 오늘 아침, 연설을 통해 패배를 인정했다. 그녀의 말에는 실망이 역력했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절망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대한 사랑, 희망과 포부였다. 유리 천장을 깨트리지 못했지만 우리 중 누군가가 할 수 있으며, 여전히 미국의 가치는 살아있으니 국민이 이제 그 가치들을 수호하고 당선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지만 계속 옳은 길을 위해 싸우고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다시는 목격하고 싶지 않는 이 끔찍한 대선에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그녀에게서 배운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태도이다.

누군가는 오래된 정치인의 입에 발린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새겨들을 만하다. 다시는 목격하고 싶지 않는 이 끔찍한 대선에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그녀에게서 배운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태도이다.

불평을 토로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떠나거나 피하는 것은 해결의 요소가 아니다. 냉담한 자세도 해결책이 아니다. 쓰나미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돛을 올려야 한다. 방향키를 조정하고 어디를 향해 갈지를 심사숙고 해야 할 때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 일시적인 감정 표출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우리 각자의 명철한 분석이 필요할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 내에서 변화를 위해, 옳은 길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실천해야 한다.

로스쿨 친구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문구를 오늘 읽었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 출처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 적합한 메세지임은 분명해서 나누고자 한다.

Hear this, young men and women everywhere, and proclaim it far and wide. The earth is yours and the fullness thereof. Be kind, but be fierce. You are needed now more than ever before. Take up the mantle of change. For this is you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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