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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문화 심판'이 아니라 '시골의 복수'다

리버럴의 상징 오바마의 지지율은 거의 60%에 육박한다.

  • 남궁민
  • 입력 2016.11.10 05:39
  • 수정 2017.11.11 14:12

트럼프 당선을 환영 혹은 일종의 '심판'으로 보는 이들의 중론은 리버럴, 깨시민,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심판으로 결과를 파악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의문이 생기는 점은 과연 트럼프 지지자(블루칼라-저학력-저소득층)들이 과연 리버럴(깨시민) 때문에 트럼프에게 가서 한 표를 줬는가 하는 부분이다. 만약에 배타적이지 않고 친절하게 굴었다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마음이 돌아섰을까? 글쎄다.

그런데 그러한 깨시스러움의 상징, 모범적 리버럴로 보이는 오바마의 지지율은 거의 60%에 육박한다. 대표적 문화전쟁 아젠다인 동성애에 대한 다중의 지지도 변함이 없고, 낙태를 허용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도 보이지만 큰 흐름을 뒤집긴 힘들어 보인다.

동성결혼에 대한 미국 여론 변화 © huffingtonpost.com

지금의 결과가 문화전쟁의 반동이라고 보기엔 문화전쟁의 유산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이다. 무엇보다 러스트벨트는 지난번에는 바로 그 리버럴의 상징, 오바마를 뽑았다. 오바마의 8년을 지지했던 주들이 갑자기 리버럴의 아젠다와 태도에 돌아섰다? 설득력이 낮다.

미국 대선 2012년(위), 2016년 주별 승자

난 그보다 본질적으로 도시의 승리인 세계화 패자들의 반동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어느 모로보나 깨시민에 분노한 이들이라기보단 세계화의 패자들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미 내륙과 농촌, 블루칼라들은 세계화 흐름상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세계화는 도시의 승리이자 시골의 패배다.

2016년 미국 대선 플로리다주 득표 현황 © elections.huffingtonpost.com

2016년 미국 대선 오하이오주 득표 현황 © elections.huffingtonpost.com

실제로 경합지인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의 카운티별 선거 결과를 보면 '시골의 승리'는 더욱 명백하다.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뿐 아니라 러스트벨트의 4개주는 모두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공화당의 아성이라는 텍사스조차 도시지역은 힐러리가 승리했다. 이번 대선은 도시와 시골의 대격돌이었다. 미대륙의 규모에서 해안-내륙이라는 지역적 차이와 더불어 각 주내에서도 도시와 시골의 대결이 벌어진 것이고, 결국 내륙-시골이 승리한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 텍사스주 득표 현황 © elections.huffingtonpost.com

이들이 NAFTA를 낳고 TPP에도 찬성했던데다가 '도시놈'들의 상징인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대변인 같은 이를 지지할 수 있을까?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가 본질이다. '패자'의 분포가 특정 지역들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승자의 '부피'는 커져도 그 숫자가 점차 줄고 있다는 게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국제무역으로 인해 후생의 총량이 늘어 나는 건 자명하지만 전제는 그 커진 파이를 나눠야 한다. 경제학 강의실에선 "10이 늘어나면 내가 7을 먹고 다른 사람에 3을 주면 윈-윈입니다"라고 가르치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복지제도가 취약한 미국에선 이런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 기간 동안 거친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내부혁명'으로 세금인상과 복지 확대를 통해 대비하려고 시도는 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쓸모가 없어진 지역과 계층에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쓸모, 쓸모가 없어진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트럼프도 그 쓸모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사실 트럼프를 찍는 행동 자체가 그들이 손에 쥔 건 없어도 투표권은 있다는 존재의의를 찾게 해준 게 아닐까. 아마도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 덕에 속이 시원한 건 앞으로 몇 달이 전부일 가능성이 높지만.

물론 이번 대선에서 혐오와 反다양성이 한 전선이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당장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는 살아난다는데 월가와 실리콘밸리만 호황인 꼴을 지켜본 이들에게 애초에 인권과 다양성 같은 문제가 우선순위에 있었을까? 왜 지난 8년간 흑인 대통령과 그의 리버럴 행보를 지지한 이들이 갑자기 인종을 기재로 분노를 쏟아냈을까? 만약 인종간 대결이었다면 흑인의 결집력은 왜 오히려 줄어들었을까?

오히려 이 사태를 문화전쟁의 관점에서 보는 이가 바로 PC의 세계관에 포획되어 있는 게 아닐까?

보호무역주의는 '성공한 러다이트'의 관점에서 보는 게 합당하다. 문화전쟁의 반동이라는 건 그닥 근거가 없어 보인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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