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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승리한 이유 | 갈등 대체에 성공한 '신보수 노선'

트럼프는 '대안-호감의 결집'이 아니라 '분노-반감의 결집'을 통해 당선됐다.

  • 최병천
  • 입력 2016.11.09 14:21
  • 수정 2017.11.10 14:12
ⓒASSOCIATED PRESS

트럼프가 당선되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개인적으로, 2012년 한국의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서던 박근혜가 당선되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은 정말 놀랍다.

혹자는 트럼프의 당선을 '제3의 길 노선'의 패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지나친 예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바마 역시 전통 복지국가와 구분되는 제3의 길 연장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55%로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서도 이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실패했다고 해서 새누리당 정치인 모두가 '무당'을 추종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했다고 해서 제3의길 노선 일반이 패배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전통 공화당과 다른, '트럼프의 신보수 노선' - '결점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근원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1)'힐러리의 패배'라는 측면과 2)'트럼프의 당선'이라는 측면 2가지 모두를 살펴봐야 한다.

트럼프는 막말, 성희롱, 성폭력, 여성비하, 거짓말, 횡설수설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것이다. 그 원인은 분명 트럼프가 <전통 공화당과 다른 노선>을 선명히 한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편의상 이를 <트럼프의 신보수 노선>이라고 표현하기로 하자.

전통공화당과 특히 구별되는 '트럼프의 신보수 노선'은 ▲자유무역 ▲복지 ▲외교 정책이었다. 전통 공화당은 자유무역에 우호적이었고, 복지확대에 비판적이었고, 외교정책에서 '전통적 동맹관계'를 중시 여겼다.

반면, 트럼프의 신보수 노선은 ①자유무역에 대해 공격적이었고, ②복지확대에 적극적이었고, ③외교적으로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비판적이었다. 여기서 ①+②+③ 정책은 사실 '특정한 유권자 집단'을 겨냥하고 있다. 바로 <고졸 이하 백인 남성> 집단이다.

실제로 트럼프를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핵심 유권자층은 <고졸 이하 백인 남성>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당선은 <'고졸 이하 백인 남성'의 정치적 반란>이라는 의미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

고졸 이하 백인 남성은 왜 화가 났을까? - 4가지 사회변화

'고졸 이하 백인 남성들'은 왜 그토록 강력하고, 격렬하게 결집했을까? 뭐가 그렇게 불만스러웠던 것일까? 그간 알려진 것들을 근거로 추론해보면 4가지이다. 1)사회문화적 변화 2)인구구조의 변화 3)세계화 4)혁신경제의 부상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 고도화 및 재편이다.

1) 사회문화적 변화는 연방대법원에 의한 동성애 합법화, 흑인 대통령의 당선, 쿠바를 비롯한 남미출신 이주민의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문화적 변화는 2)인구구조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유색인종, 아시아,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가 사회문화적 변화를 이끌던 동력이며, 동시에 원인이었다.

3) 세계화는 원래 자유무역 이론이 주장하듯 '비교우위론'을 내재하고 있다. 비교우위론의 골자는 간단하다. 자유무역을 할수록 비교우위(=경쟁우위)산업은 더 유리해지고, 비교열위(=경쟁열위)산업은 더 불리해진다. 트럼프의 지지층은 '대졸 이상' 백인이 아니라, '고졸 이하' 백인층이 중심이었다. '고졸 이하' 백인이 특히 열성적으로 반응했던 이유는 세계화로 인해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비교열위 제조업)이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전통 제조업>(=비교열위 제조업)의 후퇴를 야기하는 것은 세계화 이외에도 또 있다. 그것은 4) '기술혁신에 의한 혁신경제의 부상'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의 재편'이다. 세계화가 <국제적 분업구조>의 재편을 통해 비교열위(=경쟁열위) 산업과 종사자를 몰아내는 효과를 발휘한다면, 기술혁신에 의한 혁신경제의 부상은 <국내적 분업구조>의 재편을 통해 비교열위(=경쟁열위)의 산업과 종사자를 몰아내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세계화'와 '혁신경제'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생산력 혁명>이다. '생산력 혁명'의 작동 메커니즘을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생산력 혁명 이전] ⇒ 10명이 10시간씩 일해야 원하는 생산력에 도달할 수 있었다.

► [생산력 혁명 이후] ⇒ 4명이 10시간씩 일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4명은 주변부 노동, 나머지 2명은 비(非)노동으로 밀려난다.

(*주변부 노동과 비노동으로 밀려나는 주요한 계층은 저학력, 중장년층, 고령층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이라는 책에서 정치는 본질적으로 '갈등'을 다루는 것이며, '정치 행위'란 <갈등의 사회화>를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갈등의 통합>을 이뤄내는 과정이라고 본다.

즉, '정치 = 갈등'이다. 일부 대선후보 중에서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시는 분이 있는데, 샤츠 슈나이더의 접근에 의하면,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갈등은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갈등으로 '대체'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갈등의 대체'가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미국 정치사에서 루즈벨트, 레이건의 신노선에 비견될 만한 사건이다. )

그렇다면, 샤츠 슈나이더가 말한 '갈등의 사회화'와 '갈등의 통합'이라는 틀로 본다면, 트럼프의 당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대안적 방향은 무엇일까?

트럼프의 당선이 제기하는 정치적 의미는 두 가지이다. 첫째, 트럼프의 이러저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당선될 정도로 미국의 저학력 백인 남성들이 매우 강력하게 분노하고 있다. 둘째, 그 분노의 이유는 앞서 언급한 '4가지 사회변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당선 그 자체가 대안적 방향성 혹은 해답을 말해주진 않는다. 트럼프는 '대안-호감의 결집'을 통해 당선된 사람이 아니라, '분노-반감의 결집'을 통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루즈벨트와 레이건에 비견될 '갈등의 대체' - '생산력 혁명 시대'의 새로운 통합

그럼, 해답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저학력 백인 남성>들의 분노를 일으켰던 원인을 되짚어 보고, '더 좋은 대안'이 가능한지 탐색하는 것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원인은 4가지였다. 앞서 언급했던, 1)사회문화적 변화 2)인구구조의 변화 3)세계화 4)혁신경제의 부상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 고도화 및 재편이다. 이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자.

► 첫째, 그동안 미국에서 진행된 <사회문화적 변화>의 핵심은 '다양성'과 '개방'의 확대였다. 다만, 이러한 변화들이 전통적인 백인 보수주의 문화와 충돌을 야기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1960년대와 70년대 미국의 급진주의적 신좌파 운동이 '신보수주의 운동'을 촉발하게 되고, '가족의 가치 복원'을 주장했던 1980년 레이건의 당선으로 귀결된 것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럼, '다양성'과 '개방'은 되돌려져야 하는가? '획일성'과 '폐쇄'를 단행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사회갈등의 진폭을 조절하는, <속도조절>이 있을 뿐이다.

► 둘째, <인구 구조의 변화>이다. 이는 사회문화적 변화를 야기하는 동력이기도 했고, 저학력 백인 남성의 결집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미국의 역사 자체가 '개방된, 이민자 사회'로 이뤄졌기 때문에 인구구조의 변화 역시 되돌릴 수 없다. 역시, '다양성'과 '개방'을 되돌리고, '획일성'과 '폐쇄'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역시 사회갈등의 진폭을 조절하는, <속도조절>이 있을 뿐이다.

► 셋째, <세계화>이다. 미국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더 옹호한 정당이었고, 미국 민주당은 노동조합의 압력을 고려하여 (보호무역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온건한, 자유무역'을 추구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본질적으로 경쟁우위 산업은 더 유리해지고, 경쟁열위 산업은 더 불리해진다. 그렇기에, 하나의 국민국가 단위 내에서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우위 산업에서 늘어난 이익과 경쟁열위 산업에서 줄어든 손해를 모두 감안하여, <더 늘어난, 총편익>(total benefit)이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과 <비교열위 산업의 종사자들>에게도 배분될 때 정당화된다.

► 이러한 원리는, 네 번째에 해당하는 <혁신경제의 부상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 고도화 및 산업구조 재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혁신경제와 산업구조 고도화, 그리고 산업구조의 재편은 하나의 국민국가 단위 내에서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난, 총편익>이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과 <비교열위 산업의 종사자들>에게도 배분될 때 정당화된다.

정리하면, 우리가 트럼프의 당선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대안적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미국의 유권자들(*특히 저학력 백인 남성)은 사회문화적 변화와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해서 매우 화가 나 있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다양성'과 '개방'의 방향성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속도조절'은 필요해 보인다.

► 둘째, 세계화와 혁신경제, 산업구조 고도화는 한마디로 <생산력 혁명>인데 이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 혁명으로 인해 <더 늘어나는, 총편익>이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 및 <비교열위 산업의 종사자들>에게도 배분될 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셋째, 오바마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55%였다.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의 성과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은 월가(Wall Street)를 대변하는 이미지와 '기득권 정치인' 이미지로 인해서, 생산력 혁명으로 인해 더 늘어나는, 총편익을 사회경제적 약자 + 비교열위 산업의 종사자들에게 재분배 할 것이라는 정치적 신뢰와 믿음이 현저히 약했다고 봐야 한다.

저학력 백인 남성 유권자를 비롯해서 <생산력 혁명>으로 인해 '소외된'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 입장에서, 힐러리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고려하지 않고, '무시'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단지 지나간 가정법에 불과하지만, 만일 민주당의 후보가 버니 샌더스였다면 그 역시 트럼프 공약과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트럼프의 유권자 동맹'을 잠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함의를 갖게 된다. )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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