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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위원회를 해체하자

2013년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이 정권이 문화가 중요한 줄은 아는구나. 1기 위원장으로 김동호씨가 내정되었다는 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1기 24명의 위원 중에는 현재 언론에서 속속 비리의 정황을 보도하고 있는 주요인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차은택이 숨어 있다. 나는 오늘에서야 문화융성위원회 홈페이지를 보면서 지난 3년의 문화예술정책이 예술인 전체를 농락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힘 없는 신진 예술가들의 지원금 수백만원을 외면하고 힘 센 예술인에게 권력을 선사한 문/화/융/해/위/원/회.

  • 김우정
  • 입력 2016.11.09 10:48
  • 수정 2017.11.10 14:12
ⓒ연합뉴스

문화예술계의 블랙홀, 미르재단.

대한민국 문화예술계가 융해됐다. 녹아 버렸다. 한 정권에 한 번 터지기도 힘든 사건이 최근 한 달간 연이어 불거져 나왔다. 발단은 올해 7월 26일 TV조선이 보도한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이라는 기사였다. 2015년 10월에 설립된 미르재단은 국가브랜드를 높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민간 문화재단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설립 2달 만에 486억원을 30대 대기업으로부터 갈취(?)했다. 그것도 청와대 수석이 개입해서.

미르재단은 블랙홀이었다. 최근 3년간 세월호 정국과 메르스 사태, 그리고 경기불황으로 문화예술계는 지원금의 가뭄을 겪고 있었다. 정부 지원금은 문화융성사업에 쏠리고, 기업 지원금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설립 1년도 안된 민간재단 2곳에 774억이 넘는 기업의 돈이 몰렸다. 국가 문화예술지원금의 1년 예산 규모가 약 2천억 원이다. 애초 미르⋅K스포츠재단의 목표 출연금이1천억원 이었다고 하니 규모가 국가예산의 절반이다.

볼트모트 최순실과 말포이 차은택.

그래도 애써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재단을 통하든 어떤 경로로든 자금이 예술인에게 돌아오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벼락이 떨어졌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등장한 것이다. 이어서 그 유명한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의 존재가 전면에 드러난다. 차은택은 1997년 이민규의 '아가씨'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데뷔한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이후 이승환, 김장훈, 이효리, 빅뱅 심지어 무한도전의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다.

그런데 그가 최순실을 만나면서 검은 권력에 눈이 멀었다. 인천아시안게임 영상감독, 창조경제 추진단장을 거쳐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그리고 문화창조융합센터 본부장에까지 임명된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미르재단의 실질적 몸통이 되어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삼촌은 청와대로, 은사는 문화부 장관에 추천하고, 은인을 정부기관 원장에 임명 시킨다. 그리고 실질적인 대표로 있는 회사에 재단의 자금과 정부예산을 몰아주고, 심지어 대기업을 겁박(?)해서 1조원 대의 프로젝트에도 개입한다.

예술인들의 살생부, 블랙리스트.

참담했다. 문화예술계는 지난 3년 동안 한 명의 사냥개에게 농락당했다. 심지어 문화부의 수장인 장관까지 한 패였다. 그런데 더 분통 터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10월 10일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 단서 나왔다는 기사였다. 문화예술계에서 2015년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정부가 문예지원금 심사에 개입했다는 예술검열이 사실로 확인된 사건이었다. 당시 사실을 부인하던 문화부의 해명은 결국 한국문화예술위위원회의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거짓임이 밝혀졌다.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는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지옥이 되었다.

공개된 명단은 엄청났다. 총 9,473명의 명단은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으로 상세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2015년의 '블랙리스트 1만명설'의 정황이 입증된 이 문건은 A4용지로 100장이 넘는 분량이었다. 한마디로 살생부였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빙산의 밑둥.

2018년 평창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 전 세계적 관심이 쏠린 메가 이벤트는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자 자산이다. 이번 평창 올림픽의 예산 규모는 약 13조원으로 천문학적이다. 그런데 차은택은 여기에도 손을 뻗쳤다. 차은택의 은인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몸담았던 머큐리포스트는 평창동계올림픽 빙상장 LED 프로젝트 업체로 선정됐다. 또한 콘진원으로부터 기술개발 지원금 45억원을 받았다. 참 아름답게 지저분한 결초보은이다.

최근 파행을 겪고 있는 국립 아시아문화의전당 관계자의 녹취록에 따르면 차은택은 "내가 장관님한테 가서 '이건 이렇게 해야합니다' 얘기해서 '응' 한마디 받으면 굉장히 빨리 진행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솔루션을 적어 주면 원장님, 장관님이랑만 얘기가 되면 무리함을 무릅쓰고도 (추진)할 것"이라며 "내일까지 짧고 간략하게 문제들에 대해 정리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여기서 장관은 김종덕 전 장관, 원장은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다. 뒤늦게 문체부가 진화에 나서고는 있지만 상처의 깊이가 너무 크다.

흙탕물이 가라 앉기를 기다리지 말자.

2013년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이 정권이 문화가 중요한 줄은 아는구나. 1기 위원장으로 김동호씨가 내정되었다는 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1기 24명의 위원 중에는 현재 언론에서 속속 비리의 정황을 보도하고 있는 주요인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차은택이 숨어 있다. 나는 오늘에서야 문화융성위원회 홈페이지를 보면서 지난 3년의 문화예술정책이 예술인 전체를 농락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힘 없는 신진 예술가들의 지원금 수백만원을 외면하고 힘 센 예술인에게 권력을 선사한 문/화/융/해/위/원/회.

세상이 모두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주목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차은택으로 상징되는 문화융성위원회를 지켜보려고 한다. 정치에 밀리고, 경제에 가려진 문화예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와중에도 한류의 꽃을 피우고, 국가의 품격을 높여준 일등공신은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이다. 그렇게 소중한 이 땅의 자산을 더 이상 차은택과 수십 명의 위선자들이 농락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세월호 정국을 함께 참고 메르스 사태를 이겨내고 김영란법까지 지켜가면서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예술인들이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의 세상이다. 온 세상이 다 혼탁하더라도 문화예술만큼은 깨끗하기를 바라며, 나는 12일 광화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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