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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총리'는 '김병준 후임'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 원성윤
  • 입력 2016.11.03 06:05
  • 수정 2016.11.03 06:25
ⓒ연합뉴스

황교안 국무총리가 2일 오후로 예정했던 이임식을 돌연 취소해 뒷말이 무성하다. 후임자 내정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황 총리가 언론을 통해 이를 알게 된 뒤 대통령을 향해 ‘항의성 사표’를 던졌다가 다시 거둬들인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황 총리의 일정을 되짚어 보면,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의 국정운영 상황과 관련해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2일 오전 8시께 황교안 국무총리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4차 에스비에스(SBS) 미래한국리포트’ 행사에 참석해 축사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황 총리는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한 검찰 수사는 물론,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며 “국정을 조기에 정상화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4차 미래 한국 리포트'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부터), 황교안 국무총리, 윤세영 SBS 명예회장,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축사를 마친 황 총리는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해 제2차 총리-부총리 협의회를 주재했다. 협의회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국정 공백을 막겠다며 지난달 29일 열린 총리 주재 국무위원 간담회의 후속 조처로 꾸려졌다. 황 총리 주재로 경제·사회 부총리와 외교·국방·안전행정부 등 주요 부처 장관이 매일 모여 국정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밖 출입을 하지 않자, 황 총리가 사실상 국정을 책임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날 협의회에는 유일호 경제 부총리와 외교·국방·안행·문체부 장관이 참석했다. 황 총리는 머리발언에서 “국가·사회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청년 취업준비생, 취약계층 등을 위한 지원대책을 더욱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총리는 협의회에 참석한 국무위원들한테 △해운·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 후속 조치 △3일 발표될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홍보 강화 △경제 심리회복 대책 마련 △미국 대선 전후 북 도발 가능성 대비 및 안보태세 강화 지속 △평창동계올림픽지원회 통한 준비상황 점검 등을 지시했다.

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각종 사업을 점검할 특별전담팀 구성 추진 상황도 꼼꼼이 챙겼다. 황 총리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문화·체육사업은 종합 점검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그때그때 즉시 조치하고, 대외 설명도 적극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총리실 당국자는 “회의는 오전 8시30분께 시작돼 40분 남짓 이어졌다”고 전했다.

오전 9시30분,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섰다. 정 대변인은 “후임 총리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불과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오전 9시59분께 총리실 출입기자단에 문자 공지가 전송됐다. “황교안 국무총리 이임식. 13:00, 정부서울청사 별관(2F).”

김병준 새 총리 후보자

문자만이 아니었다. 이날 오전 11시께 정부서울청사 별관(외교부 청사)에선 “총리 이임식 참석자는 12시30분까지 행사장에 입장해 달라”는 안내 방송까지 나왔다. 그런데 오전 11시21분께 다시 기자단에 문자 공지가 전달됐다. “금일 13시 예정된 황교안 국무총리 이임식은 취소되었습니다.”

뒤이은 문자 공지를 통해 총리실은 ‘이임식 취소 사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번 사태와 관련 내각의 대표인 국무총리로서 책임을 지고 오늘 이임을 하려 하였으나, 국정 운영 공백이 한시라도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일단 오늘 이임식을 취소하였습니다.”

이임식 취소 사유만 읽어 봐도, 황 총리가 후임 총리 내정을 사전에 몰랐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정치권 안팎의 전언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에스비에스>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오전에 황 총리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만났지만, 그분들도 총리 내정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고 말했다.

황 총리가 사전에 개각 내용을 전혀 귀띔받지 못했다면, 대통령을 대신해 ‘분골쇄신’했던그로선 당장 직을 내려놓고 싶을 만한 일이었다.

통상 대통령이 신임 총리를 내정하면, 내정자는 국회에 제출할 임명동의안을 준비한다. 임명동의안에는 내정자의 직업·학력·경력에 관한 사항과 병역신고사항, 재산신고사항, 최근 5년간 각종 세금 납부 및 체납 실적, 범죄 경력 등이 담긴다. 총리실 당국자는 “임명동의안 준비에만 사나흘은 걸린다”고 전했다.

임명동의안이 제출되면, 국회는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이때부터 내정자는 ‘총리 후보자’로 신분이 바뀐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임명동의안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고 본회의에 회부·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야당이 김병준 후보자에 대한 청문 절차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있어 후임 총리가 취임하기까지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2016년 7월15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경북 성주를 찾아 주민설명회를 벌이던 중 성주군민들로부터 물병과 계란 투척세례를 받은 모습.

전례도 있다. 정홍원 전 총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14년 4월27일 사의를 밝혔다. 하지만 후임으로 내정된 안대희·문창극 후보자가 줄줄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사실상 낙마한 데 이어, 이완구 전 총리도 후보자 시절 각종 의혹이 불거져 국회 인준이 늦춰졌다. 정 전 총리는 후임자인 이 전 총리가 취임한 2015년 2월16일에야 이임식을 열 수 있었다. 사의를 밝힌 지 약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는 매주 화요일 열린다. 통상 국무회의는 매주 화요일 대통령과 총리가 격주로 번갈아 주재하지만, 최순실 파문이 불거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고 모두 황 총리가 주재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박 대통령은 3주째 국무회의에도 불참하고 있다. 국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침묵 속에 그나마 국정을 챙겨온 황 총리마저 이날 이임식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면 어땠을까? 국정공백을 넘어 ‘국정진공’ 상태로 빨려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만들어진 박근혜 정부의 현 주소다. 이날 오후 만난 총리실 관계자는 “이임식 계획은 지금으로선 정해진 게 없다. 당분간은 이임식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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