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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최측근들이 나부터 살자며 등 돌리고 있다

9월30일 청와대에서 당시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접견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배신의 계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파문으로 임기 최대의 위기를 맞자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의 기금 모금을 지시한 의혹이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2일 검찰 출석에 앞서 “모든 일은 대통령 지시였다”며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무수석으로 일하는 11개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던 두 사람의 태도 변화가 무척 두드러집니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이들이 책임 떠넘기기부터, 잡아떼기까지 선 긋는 방식도 가지가지입니다.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봤습니다.

1. 책임 떠넘기기 : 모든 것은 지시였다

안종범 전 수석은 2일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두 재단 설립과 운영에 관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증언이 계속되자 그는 “모든 일은 대통령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며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불과 5일 전까지만 해도 “최순실씨 자체를 모른다”고 했던 태도를 180도 바꾼 것입니다. 그는 지난 27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내 모든 걸 걸고 얘기하는데, 최순실 진짜로 모른다. 내가 어떻게 알겠나”라고 하소연 한 바 있습니다.

그의 말 뒤집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정현식(63) 케이스포츠재단 전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정 사무총장과 통화한 적도 없고 만남을 가진 적도 없다”며 부인해 왔지만 총 55차례에 걸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며, ‘대포폰’을 써가면서까지 검찰 출석을 앞둔 정 전 사무총장을 회유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책임 떠넘기기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뒤지지 않습니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의 ‘지시’를 받고 주요 대기업에 774억원의 거액을 모금한 이 부회장은 9월까지만 해도 “두 재단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것”이라며 안 전 수석과의 관계를 부인했습니다. 한 달여가 지난 10월 말,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재단 모금은 안종범 수석이 지시했다”고 진술하기에 이릅니다.

2. 이 시대의 베드로 : 최순실과는 일면식도 없다

‘친박’ 의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최씨의 국정농단을 정말 모르고 있었는지 ‘공동책임론’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알았다고 하면 국정농단을 방관한 셈이고, 몰랐다고 하면 무능을 실토하는 셈이 되어버립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무능’ 쪽을 택한 것 같습니다.

조 장관은 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무수석 재임 11개월 동안 박 대통령과 공식적인 독대는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염동렬 새누리당 의원이 “독대를 안 했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거듭 묻자 “사전에 면담을 신청하고서 만나는 형식의 독대가 없었다는 것”이라며 “현안에 대해 둘이 만나 얘기한 일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순실씨를 만난 적이 없느냐”는 물음에도 “본 적도 없고, 통화한 적도 없다. 청탁을 받은 일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준 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체육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추락을 보고 위기감을 느낀 걸까요? 조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 있는 사업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박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해 문체부에서 쫓겨난 노태강 전 국장과 김재수 전 과장의 복직 문제도 거론했습니다.

조 장관은 201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일 때 대변인, 박근혜 정부 첫 여성부 장관, 첫 여성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며 ‘박근혜의 그녀’로 불렸습니다. 앞서 최씨가 수정한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의 연설문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것으로, 조 장관이 박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일한 시기와 겹치기도 합니다.

지난 2005년 2월14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유승민 비서실장(사진 오른쪽)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도 “몰랐다”고 말합니다.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참석 뒤 그는 “(그 때) 내가 만약 최씨를 알았더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 의원은 지난해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혀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원조 친박’으로 분류됐습니다. 2005년 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2007년 대선 경선 캠프 때 정책 메시지 단장을 맡는 등 누구보다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기도 했습니다.

3. 대통령 곁엔 누가 남았나

박 대통령에겐 아직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5일 최씨의 연설문 수정 의혹이 터지자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얘기도 듣고 한다”며 즉각 옹호에 나섰습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9월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느닷없는 단식으로 ‘국정 거부’를 선언하며, 재단 의혹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여야 정쟁’으로 무마하려다 7일 만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 대표는 야당 뿐 아니라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퇴진’ 요구에도 여전히 꿋꿋합니다. 그는 “도망가는 것은 쉬운 선택이다. 중요한 건 배의 선장처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라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며 “직접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의 의혹 제기를 흑색선전으로 몰아가며 방어했던 사람이 과연 의혹의 진상을 밝히고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까요. 해일로 바닷물이 밀려들고 있는데 전봇대 붙잡고 살아보겠다는 모양새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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