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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수사 받아야 할 이유는 이렇게나 많다

  • 허완
  • 입력 2016.11.02 04:55
  • 수정 2016.11.02 05:03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delivers her speech on the 2017 budget bill during a plenary session at the National Assembly in Seoul, South Korea, October 24, 2016.  REUTERS/Kim Hong-Ji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delivers her speech on the 2017 budget bill during a plenary session at the National Assembly in Seoul, South Korea, October 24, 2016. REUTERS/Kim Hong-Ji ⓒKim Hong-Ji / Reuters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검찰은 대통령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채 최씨 개인의 비리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통령이 미르와 케이(K)스포츠 재단 설립 전 모금에서부터 인사, 사업 등에서도 수시로 보고받고 지시하는 등 깊이 관여해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 수사 또한 소추 여부와 별개로 대통령이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규명해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다.

■ 청와대 모금 지시로 설립된 재단

사실 박 대통령은 두 재단을 둘러싼 최씨의 비리 의혹의 출발점에 서 있다.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신이 “기업인들의 문화 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거나, “(기업 대표들과)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융복합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 뒤부터다. 대통령은 자신이 운만 뗐을 뿐 재계 주도로 재단이 설립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모금 과정이 사실상 “반강제적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설립 직전 주요 기업 임원들을 만나거나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모금액을 할당하고 재촉하는 과정 등은 대통령이 말한 기업들의 자발성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들 입장에선 대통령의 의중에 대한 확인 없이 두 재단에 모두 800억원에 이르는 돈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 불과 사나흘 사이에 기업별로 액수를 할당해 모금하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재단 설립 절차를 밟은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사전 지시와 청와대 참모진의 사후 보고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정확히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이미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기업들의 자발적 모금’이었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고 ‘청와대 지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미르재단 사무총장 사퇴 종용한 대통령

박 대통령이 민간 재단법인으로 꾸려진 재단 운영에도 마치 행정부를 통솔하듯 자신의 뜻을 관철해왔다는 증언에 대해서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미르재단 이성한 전 사무총장의 증언은 이런 의혹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는 지난 9월 <한겨레>와 만나 “지난 4월4일 안종범 수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대통령께서 사무총장님의 안부를 물으시며,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멕시코 순방중이던 대통령이 경제수석을 통해서 재단 사무총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얘기다.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뜻에 맞춰 움직인다. 지시가 없었는데도 안 수석이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 이 전 사무총장을 압박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후 “명예롭게 그만두겠다”며 사퇴를 거부하던 이 전 사무총장은 결국 6월29일 직위해제된다. 이 전 사무총장이 최순실씨의 심복인 차은택 감독이나 이한선 이사 등과 재단 운영을 놓고서 갈등을 빚는 등 잡음이 불거진 탓이 컸다. 최씨나 안 전 수석 등은 통제가 쉽지 않은 이 전 사무총장에게 더이상 재단을 맡기기 어렵다고 봤고, 누군가로부터 이를 보고받은 대통령이 나서 이 전 사무총장 해임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어떻게 이 일에 관여돼 있는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 재단에 수시로 전달된 대통령의 의중

대통령의 뜻은 두 재단의 운영에 수시로 전달됐다. 미르엔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사업과제가 맡겨졌다. 실제 이 과제들은 해외순방에서 대통령의 입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란에 한류 확산 거점 공간을 구축하겠다는 ‘케이타워 프로젝트’,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인 ‘코리아에이드’, 한식 세계화를 위한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페랑디’와 공동 사업 추진 등이 그 예다. 이는 대통령이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 의미를 직접 거론한 사업들이기도 하다.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안 수석이 전화를 해와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재단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수시로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이 전 사무총장의 휴대폰에 수석비서관 및 비서관들의 전화번호 20여개가 저장돼 있었던 것도 대통령의 지시와 관심을 매개로 재단과 청와대가 수시로 업무 조율을 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 지시 없이는 분야가 서로 다른 청와대 참모진을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케이스포츠재단 또한 운영에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긴 마찬가지였다. 정현식 전 케이스포츠 사무총장은 <한겨레>에 “회장(최순실)한테 이런저런 가이드라인을 오전에 받으면 오후에, 늦어도 대개 다음날엔 안 수석이 거의 동일한 내용을 ‘브이아이피(VIP·대통령) 관심 사항’이라고 하면서 얘기했다. 나는 의심 없이 당연히 그렇겠구나(대통령의 지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는 공식, 다른 하나는 비공식으로 서로 뭔가 교감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저쪽(청와대) 최상부층의 결심이 있어서 하는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최씨 또한 대통령을 주어로 쓰지 않지만, 대통령의 ‘뜻’과 지시를 암시하는 말을 썼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긴급체포된 뒤 서울구치소로 이송된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1일 오전 검찰 조사를 계속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최순실씨에게 기밀자료 넘긴 대통령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내 재단을 설립하고, 청와대와 호흡을 맞춰가며 재단을 운영하는데 최순실씨 혼자 진두지휘했다고 보긴 어렵다. 최씨가 안 수석 한 명 정도는 조종했을지 모르지만 청와대 여러 참모를 필요에 따라 수시로 동원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통령은 “퇴임 후를 대비해서 만들어졌다”는 대목에선 강하게 부인했지만, 재단 운영 등에선 자신의 관련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통령 또한 두 재단이 벌인 사업들을 “의미 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공격성 논란이 이어진다면 문화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두둔하고 나섰다. 두 재단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빚은 문제점은 눈감은 채 목적의 정당성을 역설한 것이다.

미르나 케이스포츠 재단 건과 별도로 청와대 기록물 등이 최순실씨한테 흘러들어간 과정 또한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이 최씨에게 건네졌다는 걸 자인했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것만 봐도 남북 비밀 군사대화가 담긴 자료, 국무회의 말씀 자료, 딸 정유라씨의 대학 입시와 관련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문건,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와대에 보고한 ‘복합생활체육시설 추가 대상지 검토안’ 등 다양한 기밀문건이 전달됐다. 추가적으로 어떤 문건들이 언제, 어떤 경로로 최씨에게 건네졌는지 밝혀져야 한다.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한겨레>에 ‘대통령한테 보고되는 자료들이 최씨의 사무실에 쌓여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는 비교적 최근의 일들이어서, 대통령의 발언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할 대목들이다. 이 과정에서도 대통령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다면, 형사 소추와 별개로 중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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