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첨단' 기술만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에 대한 반박 3가지

세상이 발전해 나가는 속도를 따라잡기에 너무 숨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기술 관련 소식들을 접할 때 그렇다. 3D프린팅,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이것이 미래의 산업구조를 본질적으로 바꾼다는 기사가 쏟아진 지도 꽤 되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인식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고정관념이며, 세상은 꼭 그렇게 변하지만은 않았다.'고 딴지를 놓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드는 몇 가지 근거를 통해 그 요지를 알아보았다.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1. '첨단' 기술에 대한 주목은 '사용'의 관점에서 기술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사용기술(technology-in-use)의 역사를 고려하면 기술은 물론 발명과 혁신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감추어져 있던 기술의 온전한 세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이 새로운 역사는 엄청나게 다른 역사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의 대표적 특징으로 간주되는 증기기관은 1800년대보다 1900년대에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더 중요했다. 산업혁명을 선도한 영국에서조차 증기기관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쳐 산업혁명 이후에야 절대적 중요성을 얻게 되었다...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근대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우리는 옛것과 새것, 즉 망치와 전기 드릴을 모두 가지고 일해 왔다..." (책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데이비드 에저턴 저)

유럽의 1차, 2차 세계대전은 온갖 신무기들의 향연처럼 여겨지지만, 책에 의하면 실제 전쟁에서 제일 요긴하게 쓰였던 기술은 말을 타는 승마였다. 자동차가 개발되었지만 196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자전거가 자동차 생산량을 훨씬 넘어섰다. '첨단'기술이 새로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 흔히 나타나는 공포 어린 예측은 '실업'과 '기존 산업의 소멸'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기술 '개발'의 역사가 아닌 기술 '사용'의 역사를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의 예측처럼 그렇게 전격적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텔레비전이 보급되었지만 라디오가 여전히 유효한 기술인 것처럼, '사용중심의 역사에서 기술은 나타나기만 할 뿐 아니라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도 하며, 수세기에 걸쳐 뒤섞이기도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역사 속에서 오래된 기술은 오래된 기술 나름의 적응 방법을 찾아나가며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생존해 나갔다는 것이다.

2. '첨단' 기술의 중요도는 국가와 지역별로 다를 수 있다.

"가난한 세계의 기술이 부유한 세계의 기술보다 그저 시간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생각은, 가난한 도시의 건물들이 보여 주듯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 운송은 또 다른 사례를 보여 준다. 가난한 거대 도시는 부유한 대도시의 1900년, 심지어는 1930년과도 운송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부유한 도시들은 20세기 아시아의 거대 도시에서와 같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빽빽했던 적이 없다. 사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생산은 197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자전거 생산이 자동차 생산을 앞질렀다."(책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데이비드 에저턴 저)

하나의 기술이 모든 나라, 모든 문화권에서 똑같은 중요도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나 사회적 상황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 하나가 전 지구의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어떤 나라에선 '첨단' 기술이 아닌 기존에 존재했던 '오래된' 기술의 도입이 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2003년 인도의 콜카타 시는 여전히 인도에서 인력거가 성행 중이라는 발표를 한 바 있다. 1870년대 일본에서 발명되었고, 다른 아시아 국가에선 사라진 지 오래인 기술이지만, 몇몇 국가(타이,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의 대도시에서 인력거는 자전거 인력거, 자동 인력거 등의 형태로 발전을 거듭하며 여전히 성업 중이다. 오래된 기술은 이처럼 사라지지 않고 때로 다른 나라로 넘어가 그 나라에 최적화된 형태로 새롭게 발전하기도 한다(이런 기술을 '크리올 기술' 이라고 한다.). '첨단' 기술이 아닌 ‘오래된’ 기술이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3. '첨단' 기술보다, 기존 기술의 점진적 개량, 보수, 안전 관리가 더 효용성이 높을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이 대부분 오래된 기술이라는 것을 잊고, 신기술에만 주목한다. 우리는 발명된 지 100년도 더 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출근을 하지만, 이러한 오래된 기술보다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아이패드(iPad)에만 주목한다. 우리는 아직도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전통적인 방법에 가장 많이 의존하지만, 이에 주목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의 사회적 영향에만 주목을 한다...이렇게 첨단 기술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효과만을 보면, 기술이 우리 삶과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 같다. 그렇지만 기술에는 신기술, 첨단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데이비드 에저턴 저)

지금까지 봐왔던 것처럼, 실상 우리 삶의 풍경을 지배하고, 편리를 결정하는 기술들의 상당수는 지금 막 나온 따끈따끈한 기술보단,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고, 검증되어 온 기술들이다. 버스, 지하철, 세탁기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첨단 기술이 인간을 위협할 것인가?'와 같은 추상적인 질문이 아닌 '모기장이 살충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오래된 기술의 효용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의 새로운 적용 방식과 개량 방법을 고민하는 구체적 질문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말에 따르면, '오래된 기술을 어떻게 더욱 안전하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 고장으로 벌써 두 명의 생명을 떠나 보낸 지금 우리에겐 더욱 그럴 것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허프북스 #첨단기술 #4차 산업혁명 #사용기술 #증기기관 #자전거 #자동차 #테크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