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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하고 공유하면 새로움이 열린다 | '메이커 운동'의 가치를 알리는 이지선 숙명여대 교수

메이커 운동에 관심이 높아지는 건 그만큼 많은 이들이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고유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은 모두 살 수 있는데 왜 직접 만드는 데 의미를 둘까? "포화가 된 거죠. 옛날에는 생존에 꼭 필요한 게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이미 필요한 걸 많이 가졌죠.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뭔가 이윤을 내는 제조업도 다 포화 상태고."

'메이커 운동'의 가치를 알리는 이지선 숙명여대 교수

글 김이경 | 사진 이지선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IT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발빠른 대학은 전공과 무관하게 신입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하고, 당장 내년부터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소프트웨어 과목이 도입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전통 방식으로 나무를 깎아 수저를 만들거나 흙으로 도자기를 빚는 워크숍이 인기를 끄는 등 인간적인 기술과 속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서로 달리 보이는 첨단 기술의 발전과 인간적인 기술의 지속 사이에 공통적인 하나의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을 공개하고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선두에 '메이커 운동'이 있다. 이를 한국에 알리고 스스로 '메이커'로 참여하고 있는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과 이지선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메이커 운동의 핵심은 공유와 협업, 그리고 즐거움

"메이커는 '만드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거예요. 디지털시대에 메이커가 붐업이 된 건 혼자 무언가를 만들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방법을 공유하고 배울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2007년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처음 '메이커페어'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지선 씨는 '메이커'다.

2005년 미국의 데일 도허티가 <메이크>라는 잡지를 통해 대중화시킨 메이커라는 개념은 스스로 만든다는 'DIY'와 비슷하지만 개인에서 커뮤니티로, 취미 생활에서 산업으로 범위가 확장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이미 많은 메이커들이 각자의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지선 씨가 처음 만든 작품은 불빛이 나는 플라스틱 케이크라고 하는데, 연구실 한쪽에 놓인 작은 부품 상자가 그가 메이커임을 입증하는 표식처럼 보였다. 올해 미국서 열린 메이커페어에 딸과 함께 참여한 경험을 들려주는 그의 표정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요번에 달빛꽃 만들기 워크숍으로 상을 받았어요. 시상식에서 리본을 달아 주고 메이크페어 홈페이지에도 수상작이 게시되어요. 저는 가문의 영광이다 막 그러면서 신났죠. 또 첫째 날 끝나면 전시자들을 다 불러서 밥을 먹이는 전통이 있어요. 1천 몇백 명을 먹이는데 그때 전시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거든요. 되게 재밌어요."

메이커들의 커뮤니티 안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가진 것을 내주고 어른과 아이가 서로 존중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한국에는 아직까지 메이커 운동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에서는 사물을 원격조종하는 IT 기술 공유 운동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메이커 운동을 소프트웨어 중심이나 4차 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형태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집에서 뜨개질하고 요리하는 사람 모두 메이커예요. 메이커 운동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건 기술 그 자체보다 공유와 협업, 그리고 커뮤니티죠."

'공개하고 공유하는' 가운데 변화하는 패러다임

기술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문화는 한국에선 아직 낯설다. 그래서 이지선 씨는 '주는 것'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크 해치가 쓴 《메이커 운동 선언》이라는 책을 보면 우선 만들기, 두 번째 공유하기, 세 번째 주기를 말해요. 저는 이게 중요한 항목이라고 생각해요. 주는 것은 이타적 행위를 실천하는 거예요."

만들어서 파는 시대에 만들어서 주자는 주장이 사뭇 도발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술 더 뜬다.

"만든 이의 영혼이 담긴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줘서 그 영혼이 퍼지도록 한다, 그게 중요하거든요."

이처럼 '사고팔기'에서 '주고받기'로의 변화는 큰 틀에서 저작권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해외에서는 특허제도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장려하기보다 저해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비영리로 이용 가능한 '자유 라이센스'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드론 시장을 이끌고 있는 3D로보틱스라는 회사예요. 이 회사가 히트를 친 건 소스를 오픈했기 때문이에요. 드론이 고장나면 스스로 고칠 수 있거든요."

소스가 오픈되면 사용자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이익이다. 자발적 참여자에 의해 미처 생각지 못한 분야의 성능을 개선하거나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얻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킬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공개하면 할수록,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강해지죠."

2016년 미국 메이커페어 10주년 행사에 딸과 함께 참여한 이지선 씨(왼쪽)와 메이커 운동을 이끌고 있는 데일 도허티 씨(오른쪽)

유용하지 않은 게 더 가치 있는 시대

메이커 운동에 관심이 높아지는 건 그만큼 많은 이들이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고유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은 모두 살 수 있는데 왜 직접 만드는 데 의미를 둘까?

"포화가 된 거죠. 옛날에는 생존에 꼭 필요한 게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이미 필요한 걸 많이 가졌죠.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뭔가 이윤을 내는 제조업도 다 포화 상태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디서 생산성을 찾을까?

"자기 기본적인 건 이미 채워진 시대가 됐고 남는 시간에 뭘 할까라는 고민을 하는 거죠. 나 건강해질래 하면 운동을 하거나 건강한 음식을 구해서 요리를 하겠죠. 그림 그릴 거야 하면 그림을 그릴 테고요. 그렇게 DIY를 하고 메이커가 되는 거예요. 그 남는 시간을 가치 있게 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이 앞으로 화두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유용했던 것들이 더는 유용하지 않은 시대가 되면서 생산성만을 높이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더 노력하면 더 큰 가능성이 열렸죠. 근데 이제는 해도 안 되는 시기가 왔으니까 이제 좀 다른 식으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이제 재미에 두기 시작한 거죠."

메이커를 통해 시대 변화를 콕콕 짚어 내는 이지선 씨의 이야기만큼이나 인생관도 궁금했다.

"너무 많은 꿈을 꾸지 말고 현재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해요. 그런데 저만의 즐거움에 그치는 것은 아니면 좋겠어요. 내 가족을 위한 즐거움이라도 좋고 커뮤니티를 위한 즐거움도 좋아요. 그래서 뭔가 남하고 관련된 즐거움을 끌어내는 게 전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본성 자체가 원래 혼자 살 수 없는 거니까요."

김이경 님은 한살림운동을 확산하고 지원하는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한살림 30돌을 맞아 모심과살림연구소가 우리 사회 곳곳의 혁신과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는 <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습니다.

모심과살림연구소 www.mosim.or.kr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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