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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와 '여자 박근혜'를 분리시켜야

만약 지금 대통령이 생물학적으로 남자였다면, 여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붙여지는 옮길 수 없는 여성비하적인 차별적 표현들이 지금과 같이 SNS를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남성 대통령이 과오를 저질렀을 때에, '역시 남자가 대통령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의 생물학적 여성성은 이러한 '역시 여자가 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한다. 대통령의 생물학적 성에 따라서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의 '이중기준'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진보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혐오적' 행위이다.

  • 강남순
  • 입력 2016.10.31 06:13
  • 수정 2017.11.01 14:12
ⓒ연합뉴스

1.

최근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주장하는 글들이 페북 포스팅을 메우고 있다. 나는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지지한다. 나는 정치적으로 그녀를 한번도 지지한 적이 없으며, 대통령 선거 이후 , "최초의 여성대통령" 이라는 표지가 차용되곤 할 때마다 그것이 정치적 구호로 이용되어질 뿐이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변혁성'으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그녀의 정치적 역량의 지독한 한계성은, 세월호 참사이후 더욱 분명해 졌다.

정당한 '정치적 비판' 그리고 그 비판대상에 대한 '혐오적 언설'은 분명히 구분하고 분리시켜야 한다.

2.

그런데 요즈음 페북이나 다른 매체들에서 그녀에 대한 지나친 성혐오적 표현들과 차마 옮기기 어려운 욕설들은 매우 불편하다.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비판으로만이 아니라, '여자'로서 폄하하는 무수한 표현들과 만나곤 하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가지고, 그녀의 정치적 지도력과 연결시켜서 차마 옮길 수 없는 욕과 차별적 표현을 하는 것은, 사실상 정치적 '진보와 개혁'과는 상관없다. 개혁의 이름이든 그 어떠한 '명분'으로든, 그 비판적 대상을 향한 지독한 성차별적 가치들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정당한 '정치적 비판' 그리고 그 비판대상에 대한 '혐오적 언설'은 분명히 구분하고 분리시켜야 한다.

3.

페북이나 트위터등과 같은 SNS 들을 통한 대중적 의사소통들은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의 불필요한 엄숙주의를 유쾌하게 넘어서 버리고, '보통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흔드는 기능을 한다. 이 점에서, SNS는 '탈엄숙주의적 소통공간'의 기능을 하면서, 정치를 우리의 일상영역으로 끌어내려서 '정치의 주인의식화'를 확장시키는 데 일부 기여했다고 나는 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갖게 되는 생각은, 한국은 여전히 철저한 '남성중심적 세계'라는 착잡한 확인이다.

4.

SNS를 지배하는 소위 '오피니온 리더'들은 거의 남성들이며, 이 오피니온 리더들의 성인지(gender consciousness) 레벨은 많은 경우 매우 낮거나 아예 부재하기까지 하다. 남성중심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동일한 언어나 표현, 또는 행위를 여성들이 했을 때와 남성들이 했을 때, 사회적 반응이 매우 상반적이라는 점이다. 즉, 이중적 기준이 작동된다는 것이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에 대응하는 이들이 보이는 성혐오적 욕설과 비난은, 이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성혐오적 비난은 남성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가부장제적 가치를 내면화한 여성들에 의하여도 종종 자행된다. 비판적 성찰을 통한 정치사회적 문제제기와 그 비판 대상자에 대한 혐오적 욕설은 그 출발점과 도착점에서 다르다.

남성 대통령이 과오를 저질렀을 때에, '역시 남자가 대통령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5.

만약 지금 대통령이 생물학적으로 남자였다면, 여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붙여지는 옮길 수 없는 여성비하적인 차별적 표현들이 지금과 같이 SNS를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남성 대통령이 과오를 저질렀을 때에, '역시 남자가 대통령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의 생물학적 여성성은 이러한 '역시 여자가 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한다. 대통령의 생물학적 성에 따라서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의 '이중기준'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진보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혐오적' 행위이다. 대통령의 '생물학적 성'을 그의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직분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분리시키지 않을 때에는, 결국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에 대한 정치적 비판적 언사가, 그녀에 대한 성차별적이고 성혐오적 표현들과 결론까지 정당화시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생물학적 여성성'은 '필연적인 요소'가 아닌, '우연적 요소'일 뿐이다.

6.

한 부분의 개혁의 이름으로 또 다른 부분에 대한 억압, 비하, 혐오가 조장되거나 가려지고, 더 나아가서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경우는 인류의 역사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생물학적 사건이 아닌, 정치적 사건이다. 그 정치적 사건에 대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개입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민주의식 확장과 사회정치적 개혁을 이루기 위한 터전이 확보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숭고한 명분의 이름으로라도, 비판 대상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정치적 개혁을 지향하는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끊임없이 상기해야 할 점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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