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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한 우파이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정치공학을 따져가며 시간을 끄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이것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당신들은 절대로 '원칙'을 중시하는 '우파'가 아님을. '우파'라면 더더욱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에서 우파의 이름 하에 사리사욕을 채운 자들에게 죗값을 확실히 물어야 한다. '원칙'과 '진실'을 외면한 '봉건 정권'의 과오를 정리하지 않고 돌아오는 대선을 이겨봤자, 그것은 또 다른 '봉건 정권'의 연장에 불과할 것이라고 믿는다. 설령 대선에서 우파진영이 패배한다 하여도, '진실'을 마주하고 '원칙'을 지키며 얻은 패배가 다시 찾아올 '떳떳한 승리'의 밑거름이 될 '값진 패배'라고 믿는다.

  • 이진호
  • 입력 2016.10.29 09:35
  • 수정 2017.10.30 14:12
ⓒ연합뉴스

청년 우파의 정체성

현재 한국사회 우파 청년들은 '광우병 사건'에 큰 영향을 받았다. 감성으로 포장했던 '선동'의 허무함과 위험성은, 많은 청년들을 우파 진영으로 이끌었다.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인터넷 민심 속에서 스스로를 우파로 규정해온 일이, 누군가에겐 우습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우파 청년들은 '원칙'과 '진실'이 대한민국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고 믿었기에 비웃음을 감내했을 것이다.

'청년 우파'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기여한 적이 없고, 민주화와도 별 상관이 없다. 솔직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세대 아닌가. 그저 산업화와 민주화의 로망에 의존하는 윗 세대의 리더십 중, 무엇이 우리의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인지를 계산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주까지만 해도, 나를 포함한 '우리'는 민주화의 그림자에 가려진 국가 안보의 훼손과, 노동 시장 개혁의 지체와, 시장 자유주의의 퇴보를 걱정했다. '공정한 경쟁'을 원했고, '지켜져야 할 원칙'을 믿었다. 지켜야 한다고 믿는 가치에 대한 떳떳함이 있었다.

최소한의 명분마저 잃어버린 우파 진영의 현재

그러나 떳떳함의 뿌리가 이렇게 한 순간에 뽑혀나갈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최순실 이전에 정윤회가 있었다. 처음 십상시와 비선 실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주장 자체가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정도로 아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던 '의혹'들이 하나 둘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심지어 초기 의혹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대원칙'을 깼고, 대한민국을 '봉건 국가'로 퇴보시켰음을 사과를 통해 인정했다. 그런데도 여당은 조용하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우병우 수석은 침묵하고 있다.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주요 정치인들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우파라고 자칭하던 이들은 태블릿 PC의 취득 경로가 의심스럽다며, 단순 '첨삭'만 받은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이 정도의 비리는 어느 정권에서도 있었다는 말까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내뱉고 있다.

나는 떳떳하고 싶다. 대통령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상황에서 '광우병 사건'에서 지켜봤던 비 원칙, 진실 외면과 모순을 답습하고 싶지 않다. 앞세웠던 원칙과, 질서와, 국가 안보, 그 이전에 윗 세대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자유 민주주의'가 그저 '진영'의 잘못을 덮고 승리를 도모하는 '정치 공학'의 연장이었다면, 나는 스스로를 우파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빨갱이보다는 박근혜"라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래도'라는 최소한의 명분마저 스스로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원칙'을 되찾기 위하여

베이비부머 세대인 내 부모님께선 지난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시며,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형제들한테 하는 것을 보아라, 원칙에 대해서는 칼같이 지켜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지금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신다. 나는 '아스팔트'라고 불리며 비웃음 당하던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이 지금 이 순간 가장 괴롭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과 신뢰의 뿌리에 '원칙'이 있었다면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정치공학을 따져가며 시간을 끄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이것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당신들은 절대로 '원칙'을 중시하는 '우파'가 아님을.

대학들에서 시국 선언이 쏟아져 나온다. 익숙한 풍경이 반복된다. 2016년의 대학교 학생회들이 '시국'을 걱정하며 내세우고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나는 산업화가 이끌어온 국가의 발전을 직접 보지 못 했고, 민주화가 이미 이루어진 시대에 태어났다. 그저 '원칙'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파라고 해서 수위 높은 발언을 자제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조용히 현실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파'라면 더더욱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에서 우파의 이름 하에 사리사욕을 채운 자들에게 죗값을 확실히 물어야 한다.

'원칙'과 '진실'을 외면한 '봉건 정권'의 과오를 정리하지 않고 돌아오는 대선을 이겨봤자, 그것은 또 다른 '봉건 정권'의 연장에 불과할 것이라고 믿는다. 설령 대선에서 우파진영이 패배한다 하여도, '진실'을 마주하고 '원칙'을 지키며 얻은 패배가 다시 찾아올 '떳떳한 승리'의 밑거름이 될 '값진 패배'라고 믿는다. "원칙을 어긴 지도자는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이라고 믿는다. '우파'라면 말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

* 이 글은 아젠다23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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