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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한 달 전 조선일보에 보낸 편지는 정말 의미심장하다

  • 박세회
  • 입력 2016.10.28 10:04
  • 수정 2016.10.28 10:28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제대로 터지기 약 한 달 전인 9월 28일, 홀로 외로이 최순실 관련 보도를 내보내던 한겨레의 김의겸 선임 기자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에게 뜬금없는 편지를 한 장 보낸다.

'저는 요즘 미르재단, 케이스포츠 재단을 취재하고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편지에서 한겨레의 김의겸 기자는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을 파다 보니 이미 조선일보가 '취재의 그물을 피라미 한 마리 빠져나갈 틈 없이 촘촘하게 쳐 놨다'며 조선의 보도가 훌륭하다고 말한다.

당시의 보도 상황을 조금 정리해보면 이렇다. 7월은 원래 우병우의 달이었다. 조선일보가 먼저 7월 18일에 넥슨이 우 수석이 처리 곤란해 하는 부동산을 거액에 사줬다는 의혹을 내놨고, 7월 19일에는 경향 신문이 우 수석이 2013년 5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 이듬해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기용될 때까지 변호사로 활동한 기간 동안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몰래 변론'으로 여러 사건을 맡았으며, 정 전 대표도 고객 중 한 명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바로 다음 날인 20일 한겨레도 20일 우 수석의 아들 우모씨(24)에 대한 병역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겨레에 따르면 진짜 몸통은 우 수석이 아니었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소재로 칼럼을 하나 쓰려고 몇 군데 전화를 돌렸습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괜히 헛다리 긁지 말아요. 우병우가 아니라 미르 재단이 본질입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미르 재단이 뭐죠?” “허허, 기자 맞아요?”-한겨레/김의겸(9월 28일)

실제로 TV조선은 7월 27일에 단독으로 '청와대 안종범 수석, 500억 모금 개입 의혹'이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당시 조선은 아직 최순실이 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을 거라고는 보도하지 않았다.

"어떻게 30대 기업이 486억을 할 수 있겠냐는 의혹이거든요. 한마디로 말하면 청와대 개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거죠. 통장에 찍히는 게 몇백억원 단위까지 봤으니까 (안 수석하고…) 직접 통화한 적 많죠. 청와대 회의 방문도 많으니까"-조선일보(7월 27일)

심지어 김 기자에 따르면 조선은 이 보도를 위해 4월부터 준비해 왔다는 것.

7월27일이 첫 보도인데 이미 4월부터 취재에 들어갔더군요. 재단의 어느 관계자는 저희 기자를 보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조선 기자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달라붙었으면 그랬겠습니까. -한겨레/김의겸(9월 28일)

그러나 뒤늦게 뛰어든 한겨레는 케이스포츠에서 '까치밥'을 찾는다.

미르는 조선이 싸그리 훑고 지나가 이삭 한 톨 남아 있지 않았는데 케이스포츠에는 그나마 저희 몫이 조금은 남아 있었습니다. 최순실입니다. 저희가 케이스포츠 현장에서 찾아낸 최순실의 발자국과 지문은 어쩌면 조선이 남겨놓은 ‘까치밥’인지도 모르겠습니다.-한겨레/김의겸(9월 28일)

이 까치밥을 열심히 파헤친 한겨레는9월 19일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가 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최 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운동기능회복센터(CRC)’라는 이름으로 스포츠마사지 센터를 운영하던 정동춘 씨를 재단 이사장으로 앉혔다는 단독 보도를 터뜨린다.

세간에서 언론의 '좌우 대통합'이라 불리는 이번 사건의 내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기자가 편지를 쓴 진의는 조선일보 칭찬이 아니었다. 김 기자는 7월에 조선이 감춰둔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관련 기사들을 왜 터뜨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조선이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송희영 주필 사건 이후 처신하기가 어려워졌겠죠. 게다가 내년 3월에는 종편 재허가를 받아야 하니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건 조선이 취재해 놓고 내보내지 못한 내용입니다.-한겨레/김의겸(9월 28일)

실제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8월 29일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2011년 9월 임대한 호화 전세기를 홍보대행사 뉴스커뮤니케이션스(뉴스컴) 박수환(58·여·구속) 대표와함께 이용해 유럽을 다닌 유력 언론인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라고 밝힌 이후 조선일보는 몸을 사렸다.

송희영 주필이 사임한 이 사건 이후 9월 20일 한겨레가 최순실 개입을 보도하기 전까지 미르와 케이스포츠재단에 관련된 새로운 기사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궁금한 건 조선일보가 당시에 숨겨놨던 '잃어버린 고리'가 무엇일까다. 그 고리는 뭐였을까?

저희가 조선의 뒤를 좇다보니 ‘잃어버린 고리’가 두세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건의 전체 모자이크를 끼워맞출 수 있는 ‘결정타’들이죠. 조선이 물증을 확보한 듯한데 보도는 실종됐습니다. -한겨레(9월 28일)

김의겸 기자에게 문의한 결과 김 기자는 최순실 씨와 관련된 취재를 하던 중 TV조선이 최순실과 윤전추가 의상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을 입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음성도 있을 거로 추측했는데 지금 보도를 보니 그건 아닐 수도 있는 것 같다" 김 기자의 말이다.

영상을 입수하고도 보도하지 않은/못한 사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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