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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만 이야기 합시다!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갔던 안마원의 손님 아저씨가 젊은 사람이 꿈도 없이 여기서 안주하면 안된다고 강연을 늘어놓을 때도, 길에서 만난 사이비 전도꾼 아주머니가 교회를 안 다녀서 눈이 멀었다고 이야기 할 때도, 본인은 만취상태이면서도 시각장애인은 술 먹으면 절대 안된다고 훈계하시던 술집 옆자리 아저씨마저도 그분들에게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느껴졌었다. 생각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특별히 조언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 안승준
  • 입력 2016.10.28 08:33
  • 수정 2017.10.29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집에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에 함께 탑승한 한 아주머니가 지팡이 든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이리저리 열심히도 살펴보신다.

그런 모양을 눈 안 보이는 내가 당연히 모를 거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좀 더 대담하게 다가오시기까지 하시더니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처음부터 안 보였던 건 아니죠?"라는 물음을 던진다.

종종 있는 일이라 담담하게 "네"라고 대답하는 내 입이 다시 닫히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터지는 봇물처럼 쏟아내셨다.

"그러게 평소에 시력 관리를 좀 잘하시지... 그래서 비타민A를 꾸준히 섭취해야 된다니까!!! 컴퓨터 같은 거 너무 오래 보면 안되는데..."

처음 본 아주머니의 걱정 어렸던 말투는 점점 잔소리에 가까운 핀잔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분의 집이 우리집보다 서너 층 아래라는 다행스런 사실이 없었다면 난 내 눈 관리 못한 죄로 꽤 오랫동안 혼이 나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늘 아침 그분의 아드님은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갈아주신 당근쥬스를 먹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제 저녁 그분의 남편되시는 분은 집안일 대신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침 만난 시각장애인 한 명은 가족의 시력 걱정으로 골몰하던 그녀에게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스트레스의 극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난 그녀의 아들도 남편도 아닌 데다가 그의 생각처럼 비타민A를 꾸준히 먹지 않았다거나 컴퓨터를 오래 본 이유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평범한 주부로 보이는 그분이 중도 시각장애의 발생요인과 양상들에 대해 의학적으로 모두 알고 있어야 하는 의무나 책임 같은 건 없겠지만 TV 건강프로그램이나 마트 광고쯤에나 나올 정도의 짧은 지식으로 의학박사도 규명해내지 못한 내 장애의 원인을 단정할 권리는 더더욱 없다.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들의 출처나 근원의 신뢰성과는 관련 없이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려 한다.

그것은 주관적 판단에 의해 상대가 약자라고 느껴지는 순간 더욱 강력한 확신과 에너지를 동반하는 듯하다.

지팡이를 들고 다니다 보면 방향과 위치정보를 알기 위해 벽을 짚어보거나 가지 않아도 될 도로의 끝 쪽까지 가서 지형지물을 파악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꼭 나타나시는 분들이 있는데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이 그쪽으로 가면 안되는 이유를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학설들을 근거로 설명하신다.

안전을 위해 나름의 규칙대로 걸어갈 때도 똑바로 걸어갈 것을 명령하시는 도로 위의 상관님들이 나타나신다.

시각장애 당사자이면서 특수교육학 전공자인 나로서도 알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보행법에 대한 정의가 새로 나온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길 위에서 새로운 학설을 받아들인다면 내 머릿속 지도도 통째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을 알기에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것이 아니면 그냥 놓아 줄 것을 정중히 요청하고는 한다.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갔던 안마원의 손님 아저씨가 젊은 사람이 꿈도 없이 여기서 안주하면 안된다고 강연을 늘어놓을 때도, 길에서 만난 사이비 전도꾼 아주머니가 교회를 안 다녀서 눈이 멀었다고 이야기 할 때도, 본인은 만취상태이면서도 시각장애인은 술 먹으면 절대 안된다고 훈계하시던 술집 옆자리 아저씨마저도 그분들에게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느껴졌었다.

마치 7살쯤 된 꼬마녀석이 두서너 살 어린 동생에게 세상은 이런 거야 라고 가르칠 때처럼 그들에겐 본능적 우월의식 같은 것이 생겨났던 것 같다.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다른 것들을 배우고 다른 전공을 택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지낸다.

생각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특별히 조언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오히려 어설픈 조언은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처방처럼 서로를 불편하게 하거나 더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난 어느 젊은 어머니의 말처럼 엄마말씀 듣지 않아서 눈이 안 보여진 것도 아니고 서럽게 울던 꼬마 녀석은 그런 식으로 계속 공부를 안 해도 나처럼 눈이 안 보일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거 없는 잘난 척은 스스로를 더욱 못나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다. 쓸데없는 오지랖 부릴 시간에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되는지나 돌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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