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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예방법을 생각할 때

이번주 월요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정략적으로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가 하루도 안되어 '최순실' 사태로 쑥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정권 임기내의 개헌은 추진되어서는 안 되지만, 차기 정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때 개헌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개헌의 절차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주권자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개헌 논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하승수
  • 입력 2016.10.28 10:36
  • 수정 2017.10.29 14:12
ⓒ연합뉴스

요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습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하기도 해서 그랬습니다. 아마도 많은 시민들께서 비슷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저는 1987년에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해에 6월 민주항쟁이 있었고, 군사정권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더디지만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보이는 권력은 보이지 않는 힘에 농락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패, 독선, 전횡이라는 단어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되면서, 이런 현상은 매우 심해졌고, 결국 선출되지 않은 '최순실'에 의해 국가 운영이 농락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정권 말기가 되면 늘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들의 비리사건이 터졌습니다. '최순실'은 그런 사건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대통령의 권력에 빌붙거나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해서 돈을 챙기거나 한 사건이 아닙니다.

스스로 대통령인 듯이, 대통령이 입을 옷부터 시작해서 국가의 중요 정책과 인사까지 쥐고 흔들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흔든 사건입니다.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 이번에도 드러난 삼성 재벌의 역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 재벌은 적극적으로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후원하고 지원했습니다.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에도 가장 많은 돈을 냈습니다. 결국 삼성 재벌은 최순실이 비선 실세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성은 노무현 정부 때도 국정 운영의 방향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냈고,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그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승자가 독식하는 대통령의 권력, 그것을 쥐고 흔들려는 보이지 않는 힘들, 밀실에서 이뤄지는 천박한 거래와 야합들. 그 속에서 이뤄지는 부패와 전횡들....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입니다.

현재의 최순실 사태에 대해서 박근혜 정권의 책임은 당연히 물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물어야 하고 집요하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퇴진, 하야, 탄핵도 거론되고 있고, 거국중립내각 얘기도 나옵니다.

제1공화국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할 때의 상황을 보면, 황교안 총리와 장관들의 총사퇴가 먼저 이뤄질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의 권력 승계 서열상 국무총리, 부총리 순으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하야 당시에는 부통령 제도가 있었는데, 당시 부통령도 공백 상태였기 때문에 외교부 장관인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과도내각을 이끌었습니다. 허정은 야당인 민주당 출신이었으므로, 과도중립내각을 꾸린 셈이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비상한 만큼, 이런 역사적 경험들을 고려해서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추궁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나라, 대통령의 권력이 남용되거나 권력형 부패가 자행되는 일이 없는 국가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과 헌법 개정이라는 정치 시스템의 근본 개혁입니다.

이번주 월요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정략적으로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가 하루도 안되어 '최순실' 사태로 쑥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정권 임기내의 개헌은 추진되어서는 안 되지만, 차기 정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때 개헌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개헌의 절차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주권자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개헌 논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국가들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 조사 결과에서 항상 부패 없는 국가로 손꼽히는 국가들입니다.

2015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1~7등까지 한 국가들을 한번 살펴보면, 덴마크(1위), 핀란드(2위), 스웨덴(3위), 뉴질랜드(4위), 네덜란드(5위), 노르웨이(공동5위), 스위스(7위)로 나타납니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 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면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가 형성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 없는 국가인 덴마크는 13개나 되는 원내 정당이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 정당이 얻을 수 있는 최고 득표율 수준은 3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 정당들이 정책에 관해 토론하고 합의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어느 정당이 독주를 하거나, 특정한 정치인이 권력을 마구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권력자인 총리라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의 협력이 없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순실의 숙주가 되는 '박근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제도를 개혁해서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다시는 이런 참담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예방법입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독일식에 가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꿀 것을 권고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좌파도 아니고 급진 세력도 아닙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같은 보수적인 국가기관이 보기에도 한국의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치판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고, 원시적인 부패와 권력 남용도 근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가능해집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큽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노가 박근혜 정권에 대한 규탄과 심판을 넘어서서, 지금의 잘못된 정치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데까지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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