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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길거리 괴롭힘'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분석)

ⓒgettyimagesbank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다가와 가슴을 툭툭 쳤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놈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갔다” “어렸을 때 아저씨가 손목잡고 끌고 가려고 했다”….

성기노출이나 추행 등 공공장소에서의 성적 괴롭힘을 가리키는 ‘길거리 괴롭힘’(street harassment)에 대한 국내 첫 본격 실태조사 분석이 나왔다. 주로 나이 어린 여성이나 성적·인종적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모르는 사람이 저지르는 성적 괴롭힘이지만 남자 목욕탕에서 자위나 신체접촉 등 남성 피해자도 없지 않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담소 이안젤리홀에서 ‘공공장소 섹시즘: 소수자 괴롭힘과 시민성’ 연구포럼을 열었다. 이날 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은 길거리 괴롭힘 반대캠페인으로 수집한 사례 200건과 상담일지 중 사례 123건,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길거리 괴롭힘’은 가해자-피해자의 권력차에 의한 폭력으로, 모르는 타인과 대면접촉이 잦은 곳에서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괴롭히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성희롱, 성폭력, 인종차별, 동성애혐오, 계층차별, 외모혐오 등을 포괄하며 행위로는 성기노출, 추행, 구타, 고함, 욕설, 모욕, 빈정대기, 스토킹, 사진찍기, 쫓아오기, 혐오표현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일상에 너무나 만연해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다수지만 폭행과 강간, 살인 같은 폭력 범죄로 변하기도 해 위험성이 있는 폭력이라고 연구소 쪽은 밝혔다.

상담소가 2014년 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2년간 받은 상담 2700여건 중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추행, 성희롱, 카메라촬영, 스토킹 등 사례 123건을 분석한 결과 추행이 73%(90건)으로 가장 많았다. 길거리가 37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경험 장소는 공중화장실, 술집, 엘리베이터, 놀이터, 가해자 차 등 다양했다.

접수된 사례의 행위자(가해자)는 대다수가 성인 남성이었다. 성인 가해자 중 30~40대 이상의 남성은 18%(116건 중 21건), 10대 남성은 5건으로 4%를 차지했다. 가해자 연령이 파악되지 않은 성인 가해자 비율이 64.7%(116건 중 75건)에 이르러 중년 남성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담 사례의 가해자들은 “아저씨(들)” “할저씨” “할아버지” “남학생 무리” “아줌마(들)”이 많았다. ‘울림’ 유현미 객원연구원은 “‘아저씨’라는 사회적 지위는 한국 길거리 괴롭힘 주범의 특징”이라며 “형태로는 급작스런 추행, 성기노출, 접촉이 꽤 많이 나타났으며 젠더 표현, 장애여부, 성적 지향, 흡연여부 등 정상적 몸이나 예의범절에 어긋난 행동에 대한 무례한 간섭과 평가의 언행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세대·계급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10대 남성들은 놀이문화로서, 20대 이상 남성들은 소수자들을 ‘먹잇감’ 삼아 길거리 괴롭힘을 하면서 집단의 결속력을 다지는 ‘남성 동성사회’의 면모가 나타난다고 연구자들은 분석했다. “아줌마(들)”의 경우 주로 무례한 간섭이나 언행을 했다는 사례가 많았다.

‘엉만튀’ ‘슴만튀’(엉덩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는 행위)라는 명명처럼 길거리 추행이 남성 유행어·유행놀이문화가 되어가는 분위기는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신체부위를 ‘정확하게’ 만지거나 잡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뤄져 피해자는 더 큰 분노, 불안을 겪게 된다. 계속 생각이 떠올라 “몸에 새겨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조소연 연구원은 “괴롭힘 문화가 만연한 나머지 여성에게 생애사적 경험이 되고 전생애에 걸쳐 반복적,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수도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 24개 국가, 71개 도시에서 길거리 괴롭힘 실태를 조사한 페미니스트 모임 ‘할러백’의 2014년 미국 실태조사를 보면, 미국 여성 절반과 남성 4명 중 1명 꼴로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길거리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은 발생 장소를 회피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장애인, 이주여성, 성소수자들도 길거리 괴롭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SOCI) 법정책연구회 소속 트랜스젠더 활동가 한희씨는 “여성에 대해 보다 엄격한 외모기준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 차별과 괴롭힘에 취약해지기 쉽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연구용역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트랜스젠더 응답자 90명 중 44.2%가 공중화장실 이용시 차별적 대우를 당했다고 응답했고 41.1%가 공중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씨는 “길거리 괴롭힘에서 길거리라는 공간을 화장실, 대중교통, 학교, 직장 등 불특정 다수에 의해 괴롭힘을 겪을 수 있는 공간까지 확장해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조직된 ‘강남역 10번 출구’의 이지원 운영위원은 “강남역 반-여성혐오 자유발언대에서 보듯, 다수의 여성들은 길거리 괴롭힘이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여성 대상 살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소한 일, 장난, 애정표현이라며 피해자를 침묵시켜온 일상의 침해가 ‘길거리 괴롭힘’이라는 사회적 언어로 등장한 것이 반갑고 안전하고 평등한 공공장소의 문제를 사회의제화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청중들은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고발 성공담 등 본인이 경험한 괴롭힘 대응 실천도 공유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법적으로 규제했을 때 판사에게 재량권이 넘어가거나 면죄부를 줄 가능성도 크다”며 ‘괴롭힘’이라는 사회적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희롱’(harassment)이라는 번역은 덜 심각하고 가벼운 차원의 성희롱으로 희석되는 경우가 많아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 “당사자의 맞대응 행위나 말하기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꼭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합동대응이 좋으며 회사 등에서도 제3자, 목격자, 주변인의 역할을 교육·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도적 문제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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