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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함정과 운칠기삼의 윤리학

흥미로운 실험들을 통해서 검증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되기도 한 한 가지 사실은 운의 역할을 흔쾌하게 인정할수록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보다 기꺼이 공익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더욱 중요하고도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이 더욱 행복과 건강을 누린다는 것이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 유종일
  • 입력 2016.10.27 10:25
  • 수정 2017.10.28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8. 능력주의의 함정과 운칠기삼의 윤리학

이제까지 세상사가 얼마나 운에 좌우되는지 살펴보았지만, 그 운에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운이 존재한다. 하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용하는 우연적인 현상을 의미한다.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완전한 우연이다. 따라서 복권이 꽝이었을 때, 불공평한 게임이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애초에 누구는 당첨확률이 높은 복권을 받고, 누구는 당첨확률이 낮은 복권을 받는다면 어떨까?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운에는 게임에 재미를 더하는 공평한 우연 외에도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태생에 따라 승률이 달라지는 불공평한 운명의 장난도 존재한다.

프랑스 혁명에 나타난 근대사회의 근본이상인 평등주의 사상은 출생신분에 따라 당첨확률이 달라지는 신분제를 철폐하고, 누구나 차별 없이 그의 능력에 따라 당첨확률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절대군주나 국가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경제 제도도 역시 기회의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곧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고 보상이 정해지는 능력주의(meritocracy)를 말한다. 복권의 당첨확률을 신분이나 어떤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정하지 않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변하도록 하는 것은 기회 평등의 사상에 부합할 뿐더러 우리가 실력을 키우기 노력할 유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능력주의는 근대사회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이념이지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1) 능력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제껏 살펴보았듯이 능력 혹은 실력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력을 결정하는 데에는 기회와 여건이라는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재능과 노력이라는 개인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기회와 여건에는 순전히 우연적인 요소도 작용하지만 태생에 따른 가정과 사회의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능은 말 할 것도 없고, 노력하고자 하는 성격도 상당 부분 태생과 환경이 결정한다. 그렇다면 결국 실력도 인생 게임의 과정에 일어나는 우연과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태생적 배경이 결정하는 운명에 의해 거의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운에 따라 결정되는 실력을 사회적 보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너무 임의적이고 불공평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능력주의는 임의적이고 불공평한 기준을 객관적이고 공평한 기준으로 바꾸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스스로의 목적 달성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롤스와 같은 평등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능력주의는 결국 기득권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우리가 능력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 운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는 것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항상 '운칠기삼'을 언급하면서 성공했을 때 자만하지 말고 겸손할 것과, 실패했을 때 자책하지 말고 당당할 것을 주문한다. 앞서 로버트 프랭크의 책을 소개하면서 그가 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칼럼을 썼을 때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화를 냈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의 공을 운에게 빼앗기기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스스로 자기가 행운아였음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이를 인정하는 이들도 많다.

성공한 사람이 운의 역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상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2) 흥미로운 실험들을 통해서 검증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되기도 한 한 가지 사실은 운의 역할을 흔쾌하게 인정할수록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보다 기꺼이 공익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더욱 중요하고도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이 더욱 행복과 건강을 누린다는 것이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부자증세에 반대하고 심지어는 부자감세를 위해 로비를 하는 부자들은 워렌 버핏과 같이 부자들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행복감이 떨어지고 건강도 나쁘다니, 작은 위안이 된다.

어쩌면 사회 전반에서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영광과 수치로 돌리는 일을 그만두고 운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샌델은 이러한 관점에서 불합격통지서는 "귀하께서 귀하가 제공할 자격이 필요치 않은 사회를 만난 것은 귀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중략) 귀하는 어쩌다보니 사회가 원하는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도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라는 식으로, 합격통지서는 "귀하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특성을 갖게 된 행운아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때, 불합격자의 침통함을 달래고 합격자의 오만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3)

성공과 실패가 상당부분 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면, 불평등에 관한 생각도 이에 따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과도한 불평등마저도 능력과 기여에 따른 정당한 보상으로 포장하기 좋아한다. 하지만 자신의 운이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상태에서 운에 따라 결정되는 불평등의 정도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합리적인 사람들은 가급적 불평등이 작은 상태를 선호할 것이다. 이것이 존 롤스(John Rawls)가 그의 정의론을 펼치면서 사용한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추론이다. 롤스는 재능과 노력을 낭비를 초래한 것이 뻔한 절대평등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 '차등원칙'은 한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처한 사람의 복지수준을 최대화는 분배가 정의라는 것이다. "애초에 뛰어난 능력을 타고날 자격이 있거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러한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차이를 이용할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사회의 기본구조를 조정해, 우연한 차이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4)

롤스의 '차등원칙'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재산과 능력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운칠기삼'의 원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최소한의 윤리규범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1) 대표적으로 Michael Young,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870-2033: An Essay on Education and Inequality. London: Thames & Hudson, 1958.

2) Robert H. Frank, Success and Luck: Good Fortune and the Myth of Merit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

3)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4)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Revised Edition, Belknap Press, 1999.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4. 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5. 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6.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행운

7. 타고난 재능과 성격이라는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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