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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보다 무서운 것

박근혜 정부 들어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경제는 난국이고, 정치는 파행이고, 사회는 혼란이고, 대외관계는 불안이다. 삼신할미도 포기한 '삼신 정부'란 말이 돌기도 했던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한 것 같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걱정스러운 게 외교안보다.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안전을 과연 이 정부에 맡겨도 좋은 것인지 모골이 송연할 때가 많다.

  • 배명복
  • 입력 2016.10.26 06:29
  • 수정 2017.10.27 14:12
ⓒ연합뉴스

병신년(丙申年)이 기어코 이름값을 하는 걸까. 120년 전 병신년에는 일국의 왕이 외국 공관으로 거소를 옮기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졌다. 그해 백성들은 "(국왕이 병신년에) 병신 됐네, 병신 됐네" 하며 고종과 조선의 한심한 처지에 혀를 찼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통 시끄러운 2016년 병신년도 개탄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박근혜 정부 들어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경제는 난국이고, 정치는 파행이고, 사회는 혼란이고, 대외관계는 불안이다. 외교는 굽신, 경제는 불신, 남북관계는 등신이어서 삼신할미도 포기한 '삼신 정부'란 말이 돌기도 했던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한 것 같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걱정스러운 게 외교안보다.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안전을 과연 이 정부에 맡겨도 좋은 것인지 모골이 송연할 때가 많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 이른바 '2+2' 회담과 이어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팀의 무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100% 신뢰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였다. 회담에 앞서 외교부와 국방부는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것처럼 떠벌렸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알맹이 없는 헛껍데기뿐이다.

외교부는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전술핵무기 공동관리 모델을 본뜬 '고위급 외교·국방 전략협의체(EDSCG)'를 설치키로 합의하는 값진 성과를 올렸다고 자랑했다. 양국의 외교·국방 고위 당국자가 참여하는 거시적 전략 협의 메커니즘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협의체 하나 만든다고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될 것 같았으면 그런 걱정은 진즉 사라졌어야 마땅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도 정부는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보장하는 상설기구로 '확장억제 정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면서 얼마나 요란하게 떠들었던가. 그때도 정부는 확장 억제와 관련해 미국이 동맹국과 상설협의기구를 만든 것은 나토 이후 처음이라고 강조했었다.

국방부는 국방부대로 미국이 가진 전략무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에 한·미가 합의할 것처럼 바람을 잡아 결과적으로 국민을 기만한 꼴이 됐다. SCM에 앞서 국방부는 전략폭격기나 전략핵잠수함, 항공모함 같은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 상공이나 인근 해상에 교대로 상시 배치하는 방식으로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담보하기로 했다고 언론에 사전 브리핑을 했고, 마감시간에 쫓긴 신문과 방송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그러나 회담 후 발표된 양국 국방장관 공동성명에서 상시 순환배치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다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한·미 양국 사정에 밝은 한 미국 소식통은 "한국 외교관과 군인들이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이번 소동은 한국 외교안보팀의 수준을 보여준 한 편의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미국이 가진 전략자산을 한반도나 그 인근에 상시 배치한다는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상 있을 수 없는 발상이란 지적이다. 전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미국이 왜 스스로 자기 발목을 한반도에 묶어두는 멍청한 짓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방어용 미사일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마당에 공격용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 배치하는 것은 쿠바에 러시아 핵미사일을 가져다 놓는 격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만 있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무리한 상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곳이 한국의 외교부이고, 국방부라는 것이다.

지난주 북한 외교당국자들과 북핵 문제를 담당했던 전직 미국 관리들 사이에 있었던 쿠알라룸푸르 비공식 대화에 대해서도 한국 외교부는 '무의미한 만남'이라고 깎아내리기 바쁘다. "북한과의 대화는 시간낭비"라는 박 대통령의 지침에 120% 충실하다 보니 외교의 본령마저 망각한 모양이다. 동맹만 쳐다보는 국방이 국방이 아니듯이 대화 없는 외교는 외교가 아니다.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조건에서 외교관과 군인만큼 중요한 직업은 없다. 국가관과 소명의식이 투철한 A급의 우수한 인재들이 이 직업을 맡고,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참다운 인재보다 눈치 빠르고 면피에 능한 기회주의자들이 출세하는 조직이 대한민국 외교부이고 국방부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외교안보에 쌓인 무능과 무책임의 적폐가 너무 크다. 이것이 북핵보다 무서운 진짜 위기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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