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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스토리] 2. 나를 성장시켜준 아들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6살을 넘길 무렵이었다. 난 머릿속이 멍한 상태가 되어 한참 동안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곧 아들을 설득하려는 마음으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네가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생각한다면 엄마가 인정해줄게" 당시 난 아이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엄마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더니 잘못 알았다"고 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커밍아웃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에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커밍아웃 관련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커밍아웃을 준비한 과정과 커밍아웃할 때의 감정,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때 부모의 심정 변화와 상황들... 고민과 애환 그리고 감동이 가득한 우리들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 연재의 다른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성소수자 부모모임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글 | 지인(성소수자 부모모임)

아들의 커밍아웃

'해피보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아들은 항상 밝고 엄마를 웃게 해주곤 했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아들은 날 행복하게 해주려고 태어난 아이 같았다.

아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었다. 힘들어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그때만 해도 난 아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마음이 여리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6살을 넘길 무렵이었다. 아들이 친구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쓴 문자를 보게 되었다. 난 머릿속이 멍한 상태가 되어 한참 동안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곧 아들을 설득하려는 마음으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네가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생각한다면 엄마가 인정해줄게."

나는 아들에게 아직 어려서 성 정체성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남자 아이들과 친하고 싶은 마음에 동성애자로 착각한 것 같다고 했다. 아이의 친구 탓도 했다가, 어릴 때 얼마나 씩씩했는지 사진도 보여주고, 그래도 확신을 하는 아들에게 결국 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여기는 말을 하기까지 했다.

당시 난 아이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아이가 세상의 편견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걱정이었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엄마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더니 잘못 알았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도울 수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가족

그날 이후 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죄책감은 '내가 아들을 그렇게 키운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왔다. 엄마의 영향을 받고 여성에 동일시된 건 아닌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이를 힘들게 한 녀석들을 혼내주어야 했던 건 아닌지. 모두 무지에서 갖게 된 죄책감들이었다.

이후 난 동성애에 관한 영화와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동성애자의 경우 스스로 성적지향을 알게 되는 나이가 평균적으로 12살, 13살 정도이고 트랜스젠더는 6, 7세 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아들에게 언제부터 성 정체성을 알게 되었는지 물으니 초등학교 때부터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힘든 날들을 겪는지 알게 되었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율은 47%에 이르고 77%나 자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통계를 보았다. 자살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면서까지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려고 할까? 그래서 '이건 선택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성소수자의 심리적 어려움은 성 정체성 그 자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적대적 반응과 차별의 경험과 맞닿아있다. 그중에서도 성소수자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들의 거부이다. 가족에게 성 정체성을 이유로 강하게 존재를 부정당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살 시도율이 높다는 통계를 보았다.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가족이고, 가장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것도 가족인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누군가에게 끌린다는 감정은 부모가 강제로 바꾸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자명한데, 난 왜 그때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바보짓을 했을까? 스스로를 부정하고 힘들어했던 아이에게 그렇게 살면 불행할 거라고 저주를 퍼부었으니, 저 편견에 뭉쳐있는 동성애 혐오주의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었나? 난 자식을 믿어주지 않고 내 마음대로 조정하려 한 어리석은 엄마였던 것이다.

나는 동성애자로서의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나니 이번엔 또 다른 죄책감이 밀려왔다. 오랜 기간 아들이 혼자 괴롭게 보냈을 세월들을 생각하며 엄마로서 알아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내가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려는 마음에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말로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죄책감 때문에 앞으로도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 것 같다.

난 엄마로서 아이의 편에서 아이가 어떤 마음일지 한 번이라도 생각했어야 했다.

아들 곁에 서자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한 나의 인생

이러한 죄책감들로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던 나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성소수자의 부모들을 만났고 그곳에서 점차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었다. 나와 같은 상황의 부모님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항상 힘을 얻는다. 우리 아이와 어딘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그곳 회원들을 보면 친근감이 느껴지고,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희망도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나처럼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후 부모모임 정기모임에 달려오는 부모님들에게 위안을 주고, 커밍아웃을 준비 중이거나 커밍아웃 후 부모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성소수자 자녀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2014년에는 처음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했고, 작년부터는 퀴어문화축제 때 부스행사에 참가하여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퀴어퍼레이드는 그동안 위축되어 살아온 성소수자들이 그들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다. 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즐기고 힘을 주는 축제이다. 하지만 한국은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보수기독교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혐오의 피켓들을 들고 와서 방해한다.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참여했을 때,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부모님들은 악의에 찬 혐오선동 세력들의 민낯을 보고 더욱 전의를 다지게 되었다. 내 자녀가 겪는 차별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엔 1명, 작년엔 6명이었지만 올해엔 30명의 성소수자 가족들이 퍼레이드에 함께 동참했다. 앞으로도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우리 부모들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그동안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가이드북>과 부모들의 심층인터뷰를 담은 책 <나는 성소수자의 부모입니다>도 발간했다. 올해 5월에는 < 아시아 LGBT 부모모임 초청 포럼 >을 개최하여 다른 나라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을 접하게 됐다.

4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의 한인 성소수자 가족모임, 활동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일본과 8년이 된 중국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노력을 보며 한국의 부모모임이 나아갈 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에 든든함을 느꼈다. 난 중국 부모모임에서 오신 한 아버님의 "목숨 다하는 날까지 자식을 위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꾸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라는 발언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어디나 같구나.

1973년 '나는 더 이상 숨어있는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온 미국의 한 중학교 여교사 '진 맨포드'는 최초의 성소수자 가족모임인 PFLAG을 결성하였고, 당시 20명으로 시작한 PFLAG는 현재 지지자가 2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외국에서도 성소수자의 부모님들의 많은 노력들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 부모와 가족들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앞장 설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한국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역사는 몇 년 안 되지만 더욱 더 빨리 성장하지 않을까.

난 나의 부모님과 형제와 친구들에게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말했다. 우리 가족들은 아이가 차별받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를 지지하여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로부터의 차별과 혐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수많은 세월을 홀로 감당해냈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며 살아가려고 하는 용기 있는 아이들이다.

아들로 인해 나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눈뜨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던 나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해주었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아들은 결국 더 나아가 엄마를 성장시켜주었다. 난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내 아들이 자랑스럽다.

이러한 세상이 되었으면...

-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고 비성소수자와 성소수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

- 성소수자들이 더 이상 위축되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

- 성소수자 자녀들이 부모가 받아들여줄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커밍아웃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 성소수자의 가족들이 성소수자의 삶이 힘들거라는 생각으로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 성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혐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여 더 이상 성소수자들에게 상처 주는 것을 멈추는 날이 오기를.

- 성소수자 혐오를 일삼는 종교인들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들의 기본이념을 바탕으로 성소수자와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날이 오기를.

- 지금껏 수많은 성소수자들과 가족들에게 고통과 비극을 안겨준 혐오와 편견, 차별이 이제는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성소수자가 행복할 권리, 당신이 행복할 권리와 같습니다" - 성소수자 부모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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