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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거대한 감옥 같아요

재판 받고 나왔어요. 검찰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네요. 귀를 의심했어요.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나네요. 조사를 받는 저에게 경찰은 왜 대통령 비방 그림을 그렸냐, 그림은 무슨 뜻이냐를 묻습니다. 죄명은 재물손괴인데, 그림 내용을 묻는 이유는 뭘까요? 대통령 풍자 그림이 아니었어도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아니, 이렇게 조사를 시작이나 했을까요?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풍자 안 하게 만들고, 집회 안 나가게 해주면 됩니다. 세상이 너무 웃기니까 웃기는 언어로 웃으면서 작업한 것뿐입니다.

  • 홍승희
  • 입력 2016.10.23 10:57
  • 수정 2017.10.24 14:12

재판 받고 나왔어요. 검찰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네요. 귀를 의심했어요.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나네요.

이번 검찰 구형도 여느 때처럼 벌금형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징역이라는 말에 놀랐던 것 같아요. 두렵지 않지만,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을지 혼란스러웠어요. 다행히 많은 분이 조언을 주셨습니다.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명심하고 담대하게 준비할게요.

재작년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퍼포먼스 했던 것은 일반교통방해죄, 시민과 경찰 그림, 대통령 풍자그림은 재물손괴죄로 총 세 건입니다. 퍼포먼스, 그래피티 작업과 재판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공유드립니다.

첫 번째 일반교통방해죄는 2014년 8월 15일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했던 퍼포먼스입니다. 세월호 노란리본을 상징하는 노란 천을 찢어 낚싯대에 매달고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바다 속에 있는 진실을 건져 올리겠다는 표현이고, 바람이 불 때마다 천이 나부끼고 종소리가 울리는 낚싯대입니다. 퍼포먼스는 "3000명과 공모해 도로를 불법 점거"한 것이라고 공소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하작가님의 여우비프로젝트라는 예술행진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직후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이 건은 벌금 300만원 가납명령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두 번째 재물손괴죄는 2015년 11월에 작업한 스텐실입니다. 국정교과서에 박정희 대통령 얼굴이 그려져 있는 풍자그림입니다. 물대포가 그 교과서를 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시민이 경찰의 눈에 들어간 최루액을 닦아주는 사진을 보고 만든 스텐실입니다. 두 그림 모두 홍대 부근 공사장 임시가벽에 작업했고, 이 가벽은 그림이 그려지고 하루 후 철거되었습니다. 이 건은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세 번째 재물손괴죄는 2015년 11월에 작업한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래피티입니다. 작년 민중 총궐기를 앞두고 순방을 가시는 대통령께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는 그림입니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 공사장 가벽에 했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곳은 그래피티 천지입니다. 그래서 저도 모자도 안 쓰고 편하게 작업했고요. 그런데 작업한 다음날 제 그림만 지워져있었습니다. 피해자(한진중공업 공사 관계자)가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이 피해자를 찾아가 "미관을 헤친다"는 진술을 받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 건도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을 병합한 게 이번 재판입니다.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한 검사가 누구인지는 공소장에 나와 있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세 사건 모두 검사가 달라서요. (알아보고 있습니다.) 현재 불구속 기소 상태고, 초범이 아니라서 더욱 이런 형량이 나온 것 같습니다.

조사를 받는 저에게 경찰은 왜 대통령 비방 그림을 그렸냐, 그림은 무슨 뜻이냐를 묻습니다. 죄명은 재물손괴인데, 그림 내용을 묻는 이유는 뭘까요? 대통령 풍자 그림이 아니었어도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아니, 이렇게 조사를 시작이나 했을까요?

설마 구형대로 나오진 않겠지요. 그러나 몇 개월이라도 실형을 살게 되면 인도로 출국도 할 수 없고, 공판 직후 그 자리에서 감옥에 가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풍자 안 하게 만들고, 집회 안 나가게 해주면 됩니다. 세상이 너무 웃기니까 웃기는 언어로 웃으면서 작업한 것뿐입니다. 아직도 뒤집어지지 않는 세상이 신기합니다.

최후변론으로 한 말입니다.

"세월호는 아직도 바닷 속에 있는데 제 손으로 그걸 인양할 수 없으니까 집회라도 나가고 그림이라도 그렸던 겁니다. 그래피티 작업은 홍대 5번출구 그래피티 공간에 했던 것이고, 그곳에는 온갖 욕설과 선정적인 그림들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제 그림만 지워졌고, 경찰은 피해자가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진술을 받아내고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견딜 수 없어서 했던 작업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집회에 나가고 예술작업도 할 것입니다."

선고공판은 11월 11일 오전 9시 50분에 서부지방법원 304호에서 있습니다. 사건번호는 일반교통방해 : 서울서부지법 2015고단2959 / 폭력행위등재물손괴죄 : 서울서부지법 2016고단632(병합)입니다. 그 전까지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탄원서 등에 대한 안내는 정리되는 대로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이곳은 거대한 감옥 같아요.

[업데이트] (11월 1일)

"예술, 집회, 표현의 자유 헌법 정신에 맞는 법원의 판결을 요청합니다."

11월 3일 자정까지 탄원서를 받고, 4일 법원 제출 예정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탄원서에 대한 서명을 해주시고, 서명과 함께 '하고 싶은 말'에서 한 줄 혹은 장문의 개별 탄원서를 써주시면 됩니다. 탄원서 초안은 문화연대 최준영 사무처장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많은 공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탄원서 링크 : https://goo.gl/forms/jrYGOM4pkavpUjrX2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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