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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내 성폭력 사태를 보며

조심스레 추측하건대 이 건에 대해서도 많은 유명 작가들은 입을 다물 것이다. 유난히 발 넓기로 유명한 박범신이니 다들 어느 정도 친분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 역시 소위 문단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 괜한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내가 써서 기고한 글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우리 사회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를 문제시하는 문제 사회'여서 누구나 자기 분야에선 몸을 사리게 마련이다.

  • 홍형진
  • 입력 2016.10.23 10:06
  • 수정 2017.10.24 14:12
ⓒ한겨레

난 문단에 관한 이야기를 가급적 삼가려는 편이다. 딱히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주류 문단으로 분류되는 매체에서 등단해 몇 편의 작품을 냈고 또 다음을 준비하고 있으나 사실 교류는 거의 없다. 친분 있는 문인도 몇 안 되고, 알고 지내는 이조차 그다지 만나지 않는다. 따라서 문단 내의 사정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칫하면 괜한 오해를 사기 십상이기도 하다. 지난해 신경숙 표절 스캔들 때 한마디 끼적인 걸로 확실히 느꼈다. 난 표절 자체에 대해선 일절 견해를 제시하지 않고, 2000년 전후의 문제 제기가 바로 묻히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간 점에 의아함을 피력했다. 한데 고작 그 정도만 썼음에도 여러 매체에서 즉각 기사화하며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그때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우리 내부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가는 그다지 없다. 솔직히 말해보자. 그 사안을 두고 공개적으로 말하려는 유명 작가가 오죽이나 없으면 나 같은 놈의 SNS에서 멘트를 따갔겠나? 당시 적절한 시점에 공개적으로 견해를 내놓은 유명 작가는 거의 없었다.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신경숙이 아니라 문단 권력을 에둘러 비판한 이만 몇몇 있을 뿐이었다. 세상만사에 끼어들어 자신만이 정의로운 양 (해당 분야에 별 전문성도 없으면서) 떠들어대는 작가는 수두룩하지만, 자신이 입을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에 칼을 들이대는 작가는 얼마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둘째, 입바른 소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겐 고깝게 여겨지게 마련이고 때때로 이는 음해에 가까운 왜곡을 낳는다. 당시 신경숙과 창비를 옹호하는 이들이 즐겨 거론한 논리가 바로 '문단 권력 같은 건 없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무리가 질투심 때문에 잘나가는 이를 음해하는 거다'였다. 그때 몇몇 대화창에서 내 이름이 거론되는 걸 봤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단지 의아함을 피력한 것조차 누군가에겐 찌질이 루저의 질투로 받아들여진다는 데서 환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해서 그냥 말을 말자는 주의다. 아는 것도 없는 데다 설령 무슨 말을 해봐야 곡해하고 멸시해댈 테니까. 그 일 이후 문단에 대해선 딱 한 번 끼적였다. 정확히는 문단이 아니라 문학공모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생각하는 부조리한 점 몇 가지를 간략히 담아 기고한 것 외엔 일절 쓰지 않았다.

이번에 불거진 성폭력 스캔들을 보며 적잖게 놀랐다. 하찮다면 하찮은 문학에서 위계가 파생했고, 그 위계를 무기로 삼아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행해왔고, 심지어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박범신의 해명 트윗을 보고서는 '감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조차 절로 던지게 됐다. 그의 글은 그동안 '감성'의 관점에서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아왔는데 그 트윗을 보면 '감성 업데이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하여 나로선 기이한 형용모순을 느꼈다.

조심스레 추측하건대 이 건에 대해서도 많은 유명 작가들은 입을 다물 것이다. 유난히 발 넓기로 유명한 박범신이니 다들 어느 정도 친분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 역시 소위 문단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 괜한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내가 써서 기고한 글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우리 사회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를 문제시하는 문제 사회'여서 누구나 자기 분야에선 몸을 사리게 마련이다.

작가 집단이 특별히 이중적이거나 나약해서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다 그렇다. 정치, 경제 등을 두고 열을 올리는 파워 블로거/페부커 등을 가만히 한번 살펴보라. '모두까기인형'처럼 구는 그들 대부분이 유독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침묵하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겁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문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생각과 의견을 개진하는 입장이어서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작가 집단 또한 우리 사회와 문화의 진부분집합이다.

정말이지 무어라 할 말이 없는 사안이다. 난 문단 사람들과 안 어울리니까, 라는 방패 뒤에 숨어 모른 척하는 것조차 비열하게 여겨질 만큼. 물의를 일으킨 누군가를 조리돌림하고 특정 집단을 비웃는 수준에서 그쳐선 안 될 일이다. 마치 포르노처럼 소모되기 좋은 사안이어서 잠시 들끓다 이내 식을 공산이 큰데 이번만큼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남자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저 부끄러울 수밖에.

#문단_내_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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