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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프케이스가 신사를 완성한다

[esc] 권은주의 가방 속 사정

남자 가방 출시를 앞두고 몇 달째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남자의 가방만 쳐다봤다. 가방 멘 남자 찾기가, 길거리에서 이상형의 남자를 발견하기만큼 쉽지 않았다. 때론 멀리 떨어져 걷는 남자의 가방이 무슨 브랜드인지 보겠다고 평생 해본 적 없는 ‘남자 뒤밟기’를 했을 정도로.

이 여자가 나한테 관심 있나 의심하는 눈길을 감수하고, 남자들이 즐겨 메는 가방의 특징을 어렵게 조사했건만, 아쉽게도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99.999%의 남자들이 검정 또는 짙은 감색의 각 잡힌 백팩이나 크로스백을 착용하고 있었다. 브랜드 로고도 가까이 다가가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고 그마저도 눈에 띄지 않는 색상이어서, 가방을 모아 놓으면 자기 가방을 한눈에 찾을 수나 있을까 싶었다. 여자들의 가방이 전면을 가득 채우는 로고 플레이거나 특정 브랜드만의 패턴·디자인으로 개성(이라기보다 브랜드만의 개성)을 강조하는 제품이 많은 것과 어쩜 이렇게 다른지….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 갈 땐 주중·주말 할 것 없이 남자들의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자기 가방을 들고 있는 경우보다 여자친구나 아내의 가방을 대신 들고 있는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심지어 매장에서 남자 가방을 구매할 때도, 남자들 스스로 자신의 가방을 고르기보다는 남편이나 아들, 연인 등 ‘내 남자’를 위해 여자들이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를 사는 남자에게는 제 가방을 직접 고르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 따윈 없는 걸까?

이런 의문에 대해 내 주변 남자들은 ‘귀찮게 가방은 뭐하러’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나마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몇 안 되는 지인의 가방 속을 들여다보니 태블릿피시와 지갑 정도가 전부. 패션 좀 신경 쓴다는 다른 지인은 내용물에 비해 가방의 부피가 너무 큰 것 같아 작은 손가방을 장만했지만, “일수 가방이냐”며 놀리는 동성 친구들이나 곤란한 오해를 하는 이성 친구들의 시선 때문에 착용 하루 만에 장롱행이 되고 말았다는 소심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스마트폰으로 메일 확인은 물론 간단한 문서 수정과 발송까지 가능한 시대가 되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노트북 가방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발 빠른 패션업체들은 태양광으로 충전이 가능한 패널을 부착해 이동 시에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를 충전할 수 있는 백팩이나, 근거리 무선통신(NFC) 기술을 적용해 가방과 스마트폰을 연결해 착신 금지 설정이나 전화 수신 표시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스마트백’ 시리즈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카드 결제까지 가능해 지갑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가방이 끊임없이 출시되는 건, 그럼에도 신사에게 가방은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액세서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업적으로 슈트를 착용하는 일이 잦은 남자라면 제대로 된 브리프케이스 하나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실용성으로 따지자면 슈트 입는 남자도 점점 줄고 있지만 꼭 입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처럼, 브리프케이스 역시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라면 갖춰 드는 게 ‘신사의 품격’이랄까. 본래 변호사들이 사건 관련 서류를 보관하려고 가지고 다니던 서류가방, 브리프케이스는 슈트의 차림새를 완성시키는 ‘마침표’다.

김수현이나 김우빈이 드라마에서 슈트 위에 멨던 백팩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실생활에서는 백팩의 어깨끈이 재킷의 어깨와 진동 둘레 등을 눌러 본래의 형태를 망가뜨릴 수 있다. 특히 본인의 체격에 맞지 않게 크거나 작은 백팩, 어깨끈이 너무 짧거나 길게 늘어뜨려 멘 백팩은 진중해 보여야 할 슈트 차림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하자. 가방과 구두의 조합도 중요하다. 백팩에는 스니커즈로 편안하고 활동적인 느낌을 연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리프케이스도 비슷한 색상과 소재의 구두로 통일하는 것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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