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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과 성격이라는 행운

재능의 도덕적 임의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노력까지 그의 공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마이클 조던이 '농구황제'가 된 까닭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실력을 연마한 덕분 아닌가? 그러한 노력의 대가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롤스는 "노력하려는 의지도 타고난 능력과 기술 그리고 선택 가능한 대안들에 영향을 받는 듯하다"며 "타고난 조건이 좋은 사람이 성실하게 노력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따라서 "노력하고 도전해서 소위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려는 의지조차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 유종일
  • 입력 2016.10.20 10:15
  • 수정 2017.10.21 14:12
ⓒASSOCIATED PRESS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7. 타고난 재능과 성격이라는 행운

우리는 앞에서 실력도 상당 부분 운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실력을 쌓고 발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기회와 여건이라는 행운이 상당한, 심지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동일한 기회와 여건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누구다 똑같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성공한 이들은 대개 특출한 재능을 가졌거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아무리 운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재능과 노력이라는 부분만큼은 성공한 사람의 공으로 온전히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John Rawls)는 다음과 같이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1) "우리는 사회에서 맨 처음 주어진 출발선은 당연히 내 몫이라고 말 할 자격이 없듯이, 내게 분배된 타고난 재능도 당연히 내 몫이라고 말 할 자격이 없다. 능력을 애써 갈고닦게 만드는 내 우월한 성격은 당연히 내 몫이라는 생각 역시 문제가 있다. 그러한 성격 형성에는 어렸을 때 좋은 가정과 사회 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영향은 우리 노력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이란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임의적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보상을 받기 위한 도덕적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롤스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나름 설득력 있는 관점임이 분명하다. 나아가 특정한 재능이 얼마나 높이 평가받고 보상받는가 하는 것은 사회에서 그 재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우연에 따라 결정되며, 재능 자체의 특성과는 무관하다. 예를 들어, 필자의 세대만 하더라도 예체능 분야의 재능에 대한 수요가 그리 크지 않아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아무리 실력을 키워도 커다란 보상을 누리지 못하였지만, 요즘에는 예체능 분야의 재능은 굉장한 가치를 지닌다. 더욱 극단적인 예로, 중세 시대에 여성이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분야에 주체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다면 보상을 받기는커녕 자칫 가혹한 운명을 맞아야 했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는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롤스의 관점을 설명하면서 심야 토크쇼로 유명한 미국의 코미디언 데이비드 레터맨을 예로 든다.2) 레터맨의 연 수입이 교사들의 평균 연봉의 700배가 넘는데, 레터맨이 이렇게 엄청난 보상을 누리는 것은 그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텔레비전 스타에게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 사회를 만난 행운 덕분이라는 것이다. '적극적 차별시정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따라 유색인종을 우대하는 바람에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실패한 한 백인 지망자의 소송 이야기는 롤스의 관점을 더욱 엄밀하게 해부하는 소재로 등장한다. 이 백인 지망자의 소송은 자신이 합격한 다른 지망자에 비해 입학할 자격을 더 갖추었다는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롤스의 관점에서 보면 입학허가는 도덕적 자격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인종적 배경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요구하는 특성을 지녔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인 것이다.

재능의 도덕적 임의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노력까지 그의 공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마이클 조던이 '농구황제'가 된 까닭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실력을 연마한 덕분 아닌가? 그러한 노력의 대가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롤스는 "노력하려는 의지도 타고난 능력과 기술 그리고 선택 가능한 대안들에 영향을 받는 듯하다"며 "타고난 조건이 좋은 사람이 성실하게 노력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따라서 "노력하고 도전해서 소위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려는 의지조차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노력의 정도가 상이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라면, 주어진 환경의 영향은 본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일탈행동을 하는 일이 많다면 이는 그들이 처한 조건, 즉 노력해서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고 일탈행동에 동참해야 동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어울리기 쉽다는 조건 아래서 나름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나아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성향이나 출생순서와 같이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 노력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샌델이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하버드대학 학생들에게 형제 중 첫째가 대개 동생보다 노동윤리가 더 강하고 성공도 더 많이 거둔다는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첫째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매번 75~80%가 손을 든다고 한다.

노력도 환경의 소산이라는 롤스의 주장이 결코 견강부회는 아니지만, 이를 너무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하나의 문제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이라는 고전적인 문제다. 개인의 노력이 완전히 태생과 환경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과연 자유의지가 설 땅은 어디에 있는가? 성격이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을 개선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소위 인격수양을 하는 것도 사실 아닌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얘기에 감동하는 것은 인생의 복잡한 변수들에 대한 무지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노력에 대한 극단적 롤스주의가 지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매우 실용적인 차원의 문제다. 타고난 재능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노력은 환경이나 성격 등 우연히 주어진 요소들을 감안하더라고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재능에 대한 보상은 기껏 오만이나 부추길 수 있지만, 노력을 개인의 공으로 인정해주고 보상해주는 것은 개인으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재능보다는 노력을 칭찬해줄 때 아이들의 도전정신이 고취된다는 실험결과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일례로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아이들에게 난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퍼즐을 풀게 하면서, 퍼즐을 푼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머리가 참 좋구나."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구나."라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퍼즐의 난도가 매우 높아지자 머리 좋다고 칭찬받은 아이들은 점점 지능의 한계에 도달한다는 공포를 느껴 좌절한 반면,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고 칭찬받은 아이들은 계속 노력하면서 끝까지 도전했다고 한다.3)

곰곰이 따져보면 노력마저도 온전히 개인의 공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변수는 완전히 운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고, 사회적 효용의 관점에서 볼 때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1)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Revised Edition, Belknap Press, 1999.

2)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3) 캐롤 드웩,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4. 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5. 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6.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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