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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을 하는 당신이 읽어보면 좋을 시(詩) 4가지

혼밥과 혼술의 시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겨난 자연스런 현상이 식당과 술집의 풍경마저 점차 바꿔나가고 있다. 그러나 똑같이 '혼밥'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을 뿐, 식탁 앞에 앉은 각자의 표정과 사정이 모두 같지는 않다. 또 '혼밥'이란 말이 지금 생겨났다 해서 이전에 '혼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여기, '혼밥'이란 말이 있기 전부터 다양한 '혼밥'들의 흔적을 좆은 시들이 있다. 당신이 만약 '혼밥' 중이라면 여기 모은 이 시들을 살펴보기를. 단어 하나론 잡히지 않았을 당신의 마음이 이 중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1. 노인의 '혼밥'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큰 덩치로 분식점 메뉴 표를 가리고서/등 돌리고 라면 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몸에 한 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이 세상 모든 찬 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책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거룩한 식사', 황지우 저)

이 시가 지어진 연도는 1998년이다. 사실 '혼밥'이란 말이 있기 훨씬 전부터 노인의 식사는 으레 '혼밥'이었다. 나이가 들어 하나 둘 떠나가고 남겨진 자가 그나마 모아놓은 돈이 없어 파고다나 서울역으로 하릴없이 나갔을 때,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을 수 있기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찬 세상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 모습을 저자는 '찬 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혼밥을 '거룩한 식사'라고도 이름 지었다.

2. 일하는 자의 '혼밥'

"철골일 할 땐 약으로 가끔/함바에 가 돼지고기를 먹었다//소금장 된장 마늘도 듬뿍/상추 깻잎 쑥갓 파무침도 듬뿍/고추도 듬뿍 김치도 듬뿍/밥도 한 숟갈 고봉으로 얹어/입이 찢어지도록 넣어먹었다/제발 이 고단백이 자잘하게 퍼져/질긴 힘줄로 가기를/억센 피톨로 가기를/목 안에서 단내 나지 않는 평온한 아침으로 가기를/골병의 저녁을 지나 깨어나는 새벽으로 가기를 바라며/골고루 씹었다/나중엔 아구지가 아파 더 못 먹었다/..."(책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어떤 약’, 송경동 저)

철골일을 하는 사람이 혼자 함바집에 가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사라지는 기력을 그렇게라도 보충하려는 '몸부림'이 있음직하다. 일한 뒤 '골병의 저녁'을 제발 앓지 말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하고픈 이의 혼밥은 그래서 '어떤 약'이라 이름 지어졌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역시 밥이 보약이다.

3. '어쩌다' 홀로된 자의 '혼밥'

"어느 밤 어쩌다 우리 시처럼 밥을 논하게 되었는데...그때 한 시인 나이 예순에 난생처음 밥이라니......아내가 해놓고 나간 밥 차려 홀로 저녁을 먹게 된 것이 채 날 못 채운 한 달쯤이라 하였는데,...그 못할 짓이 참 쓸쓸이라 하였는데, 그때 한 시인 이봐요 이시영 씨 난 혼자되고 32년째 혼자 밥 먹어요 내 앞에서 무슨 엄살! 소년을 다독이는 누나의 어른 됨..."(책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詩가 밥 먹여주다', 김민정 저)

가까운 사람을 잃고 '어쩌다' 혼자가 된 사람이 32년째 '혼밥'을 하니 예순에 밥 혼자 못 먹겠다는 시인이 가소롭게 보일 만도 하다. 이 시크함에는 다른 수식어가 없다. 굳이 '혼밥'일 필요도 없이 그냥 밥. 그저 '밥'이다.

4. 달관한 자의 '혼밥'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쓸쓸한 저녁을 맞는다//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자라난 탓이다//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이 희여졌다/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책 '백석전집 : 선우사(膳友辭)', 백석 저)

제목 '선우사(膳友辭)'는 '반찬 친구들에게 바치는 말'이란 의미이다. 즉 자신이 먹는 흰밥과 가재미가 자신의 친구라는 말이다. 그들이 함께이니 혼자이되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혼밥'이되 '혼밥'이 아니다. 그들은 그럴 수 있도록 '욕심이 없이 희여졌다'. 그러니 혼밥을 하면 이런 시들을 읽는 것이 좋다. '희여져 버린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고 해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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