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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명예를 회복하려면!

처음 정양의 입학비리 소식이 나왔을 때 이대가 피해자 코스프레라도 해주길 기대했었다. 겁박이 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말이다. 하지만 연결고리가 깊어 그렇게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제 명예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요지경에서 빠져나오는 결단이다. 관계가 무엇을 중심으로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한 사실을 제대로 밝히고 사과하면서 덤터기의 고리를 끊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변명과 방어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결단, 과정에 대한 실태 인정, 사과, 결과 수용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 권인숙
  • 입력 2016.10.19 08:33
  • 수정 2017.10.20 14:12
ⓒ연합뉴스

요즘 이화여대가 난리다. 비리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대학들의 추한 소식은 자주 들었지만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사립대학이 이런 추문에 얽힌 적이 있었나 싶다. 최순실씨의 딸 정양의 입학 시기에 맞추어 체육 특기생 입학 기준을 바꾼 것도 의혹을 살 만하고, 원서 마감 이후에 발생한 정양의 아시안게임 메달 성과를 반영해 합격시킨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출석을 하지 않는 정양에게 혜택이 큰, 국제대회 참가나 훈련 등을 위한 결석 시 학점 인정을 하는 학칙 개정도 이상한데 6월의 결의를 3월부터 소급적용까지 했다. 체육과학부 학생이 의류산업학과 계절학기 과목을 여러 개 이수한 것도 석연치 않고 학점도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았는데, 담당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천명한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과 관련한 이대의 주 관계자라니, 오비이락이란 말에 미안한 상황이다. 올해 실시된 9개의 교육부 주요 대학재정지원사업 중 이대가 8개 사업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한두 개만 선정돼도 감지덕지하는 다른 대학의 현실을 알기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도 정권 실세와 대학 집행부의 합작 내지는 결탁의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그동안 가장 인정받는 여성사학이고 여성계 인맥의 무서운 강자였던 이화여대가 이러한 추문에 얽혀 흔들리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이대와 관계가 있고 없고에 따라 관점이 나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대는 한국 여성리더십의 산실이었고 사회적 시선에서 교육기관다운 품위가 있었다. 젊은 여성이 '여대'라는 성별역할 제한이 없는 여성만의 공간에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고 자유로운 시각에서 판단하고 가능성을 키워온 과정은 여성리더십 형성에 소중했다. 한국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성장에 이대라는 울타리가 가지는 그 큰 의미도 폄하하기 힘들다. 이 명성이 박근혜 대통령의 근거도, 논리도, 영혼도 없고, 70년대에 고착된 경험치와 최측근 몇 명에 둘러싸여 휘두르는 사적 정치에 연결되어 원칙도 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정말 싫다. 여성이 중심이 된 공간이 부패와 타락의 요지경 속같이 보이는 것도 싫다. 적은 이해를 탐하느라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힘들게 쌓아온 명성과 권위를 크게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다.

처음 정양의 입학비리 소식이 나왔을 때 이대가 피해자 코스프레라도 해주길 기대했었다. 겁박이 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말이다. 하지만 연결고리가 깊어 그렇게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제 명예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요지경에서 빠져나오는 결단이다. 관계가 무엇을 중심으로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한 사실을 제대로 밝히고 사과하면서 덤터기의 고리를 끊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변명과 방어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결단, 과정에 대한 실태 인정, 사과, 결과 수용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이게 나라야?'라고 모두를 개탄하게 만드는 것은 권력비리가 발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 권력이 이렇게 큰 나라에서 측근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는 않다. 문제는 뻔뻔할 정도로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지난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다. 범죄와 추문이 드러나도 적반하장 식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원한을 품고 역공격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된 세상이다. 그래도 이대는 문제를 인정하고 반성과 사과를 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비정상이 정상이 된 이 사회 속에서는 엄청난 명예회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너무 이상적인 기대를 꿈꾸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무너진 명성을 떠나서라도 이대는 학생들이 지켜보는 교육기관이다. 학생들이 민감해하는 원칙이 일부 교수들에 의해 망가진 모습을 수습하지 않고 교육기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입학 기준, 출석점수와 학점, 학칙을 수용할 최소한의 신뢰가 무너졌는데 어떻게 교육기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번 사안은 지난여름 장기농성 사태를 부른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의 찬반과 같은 수준의 일이 아니다. 총장의 공권력 요청과 같은 실수보다도 훨씬 엄청나며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학점 관리에 부실함은 있었지만 입학 관련해서는 문제없었다는 17일의 발뺌 식 현 집행부의 발표를 실망스럽게 대하면서도 이대에 대한 마지막 바람을 놓을 수가 없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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