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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어쩌면 그리 놀랍지 않은 이유

10월 13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선정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소식은 우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역사학자, 정치인, 철학자, 논픽션 작가 등이 노벨문학상을 탄 적은 있었지만, 가수가 이 상을 탄 것은 처음이니 말이다. '문장'이 아닌 '노래'가 문학의 범주에서 평가 받은 사건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일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잠시 '문학'이란 따옴표를 걷어내고 과거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어쩌면 우리는 돌고 돌아 다시 문학의 처음으로 되돌아왔을 뿐일지도 모른다.

1. 고대 그리스

"...5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책, 즉 파피루스를 재료로 한 두루마리 책이 문학 소통의 주요한 매체가 되었다. 이보다 기껏해야 300년 전에 글자가 단지 생산 활동에 도입되긴 했지만 아직 문학의 소통을 위해 쓰이지는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며 다만 '공연되는 현장'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전문학이 문자 기록으로 전환되면서-기원전 5세기부터 뚜렷이 드러나는데-상고기 전체를 통틀어 문학이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그제야 문학은 서책에 담겨 늘 눈앞에 펼쳐 볼 수 있는 실물로서 활발히 연구되었다. 문화사의 관점에서 이러한 전환 과정의 의미는 자못 심대하여 아마도 오늘날 불기 시작한 컴퓨터 시대로의 변화만이 거기에 견줄만할 것이다." (책 '희랍문학사', 마틴 호제 저)

고대 그리스에서 글자로 '문학'이란 것을 따로 기록했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부터다. 책에선 고대 그리스 문학의 시작을 기원전 8세기부터로 보니, 적어도 처음 300년 동안 '문학'이라는 것은 모두 '노래로 불려지는 것'들을 의미했다. 숱한 축제에서 영웅이나 신을 찬양하기 위한, 혹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노래들이 바로 '시'였고, 이 노래들을 악기 연주와 함께 부르고 연기하는 자들은 곧 '시인'이었던 셈이다. '서정시'를 뜻하는 말 ‘뤼릭(Lyrik)’ 또한 '칠현금과 어울려'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뤼리코스(Lyrikos’)에서 왔을 정도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영웅서사시의 대가 호메로스, 서정시의 대가 사포, 신들을 찬양했던 헤시오도스 등도 알고 보면 당대를 주름잡던 '콘서트 스타'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촛불의 밤'이 아닌 열광의 '락 콘서트장' 무대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밥 딜런이야말로 시인의 원초적 모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2. 고대 중국

"'시경(詩經)'은 기원전 12세기경부터 시작되는 중국 서주(西周)에서부터 춘추 초기까지 불렸던 노래 가사의 모음집이다. 내용은 궁중의 향연이나 제례에서 불리던 노래 가사나 민간에서 불리던 민요의 가사로...각국의 민요...조정의 음악...종묘 제사 때 연주하던 음악의 가사다."(책 '시경 강설', 이기동 역)

노래가 곧 '시(詩)'와 마찬가지였던 역사는 서양에만 있는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공자님이 편찬한 ‘시경(詩經)’은 처음엔 그저 ‘시(詩)’라고만 불렸는데, 이 안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애초에 노래였다. 동양 최초 시집은 곧 '가사집'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운율과 후렴구까지 맞춰 놓아 분명 입으로 불려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을 내용의 '시(詩)'들이 가득하다. 입에서 입으로 불려져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들이 최초의 '시(詩)'라면, 연주와 목소리가 있어야 마침내 온전해지는 밥 딜런의 노래들 또한 '시(詩)'로 불리는 게 크게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3. 조선

"판소리는 직업적인 소리꾼이 관중들 앞에서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말과 창을 번갈아가며 구연하는 한국의 전통 구비서사시다...판소리 사설은 서사문학으로서 주인공의 처지나 상황이 변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며, 이에 따라 청중들의 정서적 반응도 변화한다...그래서 명창이 되려면 작품의 문학적 이해와 이에 바탕을 둔 음악적 표현은 물론 연행자로서의 자질이 동시에 요구되었다...판소리는...문학과 음악과 연극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다."(책 '한국문학강의', 조동일 외 저)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조선에선 문학에 공연적 요소까지 더한 '종합예술'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판소리이다. 문학이 음악, 연극과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합쳐진 경우가 고대 그리스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판소리는 장르 구분 상 '구비서사시'와 '공연서사시'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유력한 견해가 그렇다. 이 내용은 책 '판소리 문학의 비평과 감상'(정충권 저)에 있다.). 서사시로 불리니 분명 문학적 요소를 띠고 있긴 한데, 언어적 표현만 뛰어나다고 완성되진 않는 문학, 음악적 표현력에 더해서 공연자로서의 '쇼맨십'까지 요구되는 문학. 이 묘한 중첩을 문학상을 탄 밥 딜런의 노래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목소리와 악기가 필요하면 문학이 아닌 것일까? 혹 가사와 연주를 따로 떼어내면 밥 딜런의 '문학성'과 '음악성'은 분리되는 것일까?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이 놀랄 일은 아니지만 당혹감을 주는 건, 돌고 돌아 다시 처음의 자리에 선 문학이 우리에게 잊혀졌던 문학의 정의를 다시 요구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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